변호사 가낫세가 계속 말했다.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기 어려운 경우에 재판장은 상식에 가까운 편의 손을 들어 줍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시지요?”
“사실과 진실보다 상식이 앞서면 재판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많겠습니다.”
바라바의 억양이 자신이 듣기에도 비꼬는 듯이 들렸다.
“유감스럽지만, 억울한 경우가 많을 겁니다.
특히 선의로 한 행위가 상식과 일치되지 않는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제가 변호사로서 직접 겪은 사건을 예로 들지요.
엠마오에서 온천장을 하는 어느 분이 직원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주인에게 돈을 꾸어간 온천장 직원이 돈을 갚지 못하자, 거꾸로 주인을 고소한 거지요.
주인이 이미 자기의 돈을 돌려받고 또 달란다면서요.”
“아, 완전히 적반하장이군요.”
“이 주인은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차용증도 안 받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독촉도 안 하고 5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빌려 간 사람이 전혀 갚을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 이제 형편이 웬만하면 돈을 좀 갚으라고 했더니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는 겁니다.
이 부자 주인이 선한 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주위에 널리 알려져 있었음에도, 재판 결과는 판사가 상식적 질문을 하나 한 후 바로 직원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나요?”
“그 부자에게 던진 질문은 '왜 5년 동안 직원을 고소하지 않았냐'는 것이었지요.
나는 그 부자의 변호사로서, 이분이 다른 사람들도 차용증 없이 돈을 빌려주었고, 심지어 못 갚는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일도 많았다는 설명을 했지요.
판사는 그의 선의를 인정하지 않고 상식에 어긋난다며 우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 판사는 누가 자기 돈을 빌린 후 한 달만 기간을 넘겨도 고소를 했겠지요.
그래서 선의로 한 일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외면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네, 그런 말씀이시군요. 그럼 어떤 판사가 바람직한가요?”
“재판에서는 상식보다 양식을 갖춘 재판관이 필요하지요.
재판을 상식선에서만 끝내려는 이유는 사건은 많고 일일이 살펴보기가 귀찮아서입니다.
제가 말을 하다 보니 초면에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까 이 재판에 대해 서로 원만히 타협하는 방안을 언급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네, 만약 사라 님이 루고 피고인의 불구속 재판에 동의하시면, 우리도 이 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무고로 맞고소를 하지 않겠습니다.”
“무고로 맞고소요?”
“네, 지난번 사라 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무고로 고소를 한 후 피의자 루고가 무죄가 되면 사라 님이 구속이 됩니다.
그러면 서로 피해가 커지고 일이 점점 더 힘들게 되겠지요.
이런 사태가 발생치 않도록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는 겁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사라와 상의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라바 님께서 중간에서 일이 잘 풀리도록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마 탈레스 님께서 다음 재판 날짜에 대한 연기 신청을 하실 겁니다.
재판장께 우리도 이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지금 상황에서 그냥 재판이 열리면 결과가 뻔하니까, 유능한 검사라면 일단 시간을 더 벌려고 하겠지요.
한 번 이상 연기해 드리기는 어렵고, 가능한 빨리 불구속 재판 동의서를 저에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낫세는 사무실 주소를 남기고 일어섰다.
가게 문 앞까지 그를 배웅하고 들어온 바라바는 마음이 심란했다.
아셀 당수가 체포되고 루고 재판도 이렇게 어려워지고 있다.
변호사가 나가자 바라바가 곧 바로 사라의 집으로 갔다.
“바라바 오빠, 오랜만이야.”
“그래, 할 말도 좀 있고 해서 일찍 왔어.”
“할 말 없어도 벌써 왔어야지. 루고 재판 다녀온 게 언젠데.”
사라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버리겠다는 시늉을 했다.
“미안, 하하. 미안해.”
“또 이러면 다음에는 각오해. 호호.”
사라가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화장기 없는 풋풋한 얼굴이 하얀 강아지 같았다.
“응, 알았어. 앞으로 조심할게.
조금 전 가게로 가낫세 변호사가 왔었어.”
“어, 그 사람 루고의 변호사인데 왜 오빠를 만나러 왔을까?”
바라바는 가낫세가 한 말을 사라에게 자세히 해주었다.
“음, 상식과 비상식이라, 그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지면 안 되잖아?”
“응, 그렇지. 근데 만약 루고가 무죄가 되면 네가 무고로 구속된다는 것은 단순한 협박 같지는 않더라.”
“그럴 수도 있나 봐. 그래도 지금 불구속 재판 동의서 써주는 건 탈레스 선생님이 반대해.
뭔가 준비하는 게 있으신 것 같아.
일단 다음 재판 날짜 연기 신청을 한다고 하셨어.”
과연 가낫세 변호사의 말이 맞구나 생각하는데 미사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바라바 님, 제가 조금 일찍 왔어요.
이거 두 분이 무슨 말씀을 하는 데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루고 재판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아침에 뵙고 헤어진 후 아셀 님 소식 듣고 걱정했어요. 별일 없으셨죠?”
사라가 상냥하게 말했다.
“네, 실은 아침에 우리 집에서 근위대 병사가 나를 기다렸는데 운 좋게 빠져나왔어요.”
사라를 안 만났으면 잡힐 뻔했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어머, 큰일 날 뻔하셨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셀 님에게 누가 면회는 갔나요?” 바라바가 물었다.
“아마 내일은 지나야 면회가 될 거예요.
내 생각에 고문은 안 당하실 텐데, 곧 풀려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언제 풀려나실까요?”
“적어도 유월절은 지나야 되겠지요. 만약 그전에 우리가 시위를 하면 더 나오시기 힘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