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야, 요즘같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고 살지.
사람은 그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일에 절제하고 율법대로 사는 것이 바른길이다.”
그런 말씀을 하는 아버지는 에세네파보다는 바리새파의 신앙을 대변하시는 것 같았다.
“네, 그렇긴 하지만, 어떤 때는 잘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어요.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 중 구덩이에 양이 빠져도 스스로 나오게 해야지 꺼내주면 안 되잖아요.
이런 건 좀 지나친 규정 아닐까요?”
“안식일 규정 중 좀 이상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작은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전체적인 뜻을 생각해야지.
그리고 지금 네가 말한 그 규정은 마침 원로 회의에서 개정할 계획이라 하더라.”
“어떻게 개정하나요?”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널빤지를 대 주어서 양이 스스로 나오게 하는 건 허락한다고 한다.
그나저나 요즘 사라는 가끔 만나고 있니? 사무엘 님이 돌아가신 후 어찌 지내나 걱정이구나.”
은근히 사라를 며느릿감으로 생각하셨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그녀의 안부를 물으셨다.
“네. 요즘 좀 뜸했네요.
사무엘 님 재판 때문에 예루살렘에 다녀왔을 텐데 연락이 없어요.
사라는 아마 곧 로마에 공부하러 갈 것 같아요.”
“어, 그래? 혼자 가나?”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음, 여하튼 너는 싸움이나 재판 같은 데 끼지 말고 무엇보다 안락한 가정을 이루고 살 생각을 해라.”
바라바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아몬이 가게로 들어왔다.
요셉에게 꾸뻑 인사한 아몬이 따로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잠깐 가게 밖에서 아셀의 체포 소식을 들은 바라바는 얼마 전 루브리아가 보낸 편지가 생각이 났다.
근위대에서 새로운 열성당 지도부의 면모를 파악했다고 했는데도, 미처 아셀 님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못 한 것이다.
바라바는 자책감이 들었지만 아몬이 무사한 것이 큰 다행이었다.
“미사엘 님은 괜찮은가?”
“응, 내가 그러지 않아도 걱정돼서 지금 먼저 다녀오는 길이야.
마침 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만나서 얘기해 주고 조심하라고 당부했어.”
아몬은 저녁에 모두 사라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는 말을 하고, 자기도 집에서 짐을 정리해 나올 준비를 해야겠다며 서둘러 바라바와 헤어졌다.
다시 가게로 들어온 바라바를 보고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니? 아몬이 얼굴이 별로 안 좋던데?”
바라바가 대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며 왕궁 경호원 한 사람이 들어 왔다.
순간적으로 긴장했으나 얼굴을 보니 전에 여기 왔던 헤로디아 왕비의 경호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바라바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네. 왕비님께서 별궁으로 들어오시랍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석청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호원은 언제나처럼 간단히 할 말만 하고 나갔다.
“왕비 님이 석청 맛을 아나 보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비너스 흉상을 팔았을 때 석청을 드린다고 하고 아직 못 가지고 갔네요.”
“아, 그래. 그때 가격을 넉넉히 받았는데 좀 많이 갖다 드려라.”
“네. 그래야겠네요.”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부르는 것은 헤로디아 왕비가 아셀 당수가 잡힌 것을 벌써 알고 할 말이 있어서인 것 같았다.
“헤롯 왕이 로마에서 임명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대인이니까 우리가 덜 힘든 거다.
다른 나라들처럼 로마에서 직접 장관을 파견하면 현지 주민들과 마찰이 더 커질 수 있지.”
바라바는 아버지의 무사 안일한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네, 그래도 헤롯 왕이 더 적극적으로 유대민족의 번영과 자유를 위해 로마와 외교적인 타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헤롯이 그 자리에 있은 지 30년인데 로마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었겠니?
네 말은 이상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20여 년 전 갈릴리의 시몬을 필두로 유대독립을 위한 무력 투쟁이 수차례 있었지만, 결과는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어떤 때는 십자가가 무려 2천 개나 세워졌었는데 정말 끔찍했었지…
지금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면서 계속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결과는 뻔할 거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바라바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릴까 봐 더 강하게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그냥 기도만 계속하는 것은 너무 답답하지 않나요?”
“나도 예전에 그런 말을 자주 했었지.
한번 잘 생각해 봐라. 사람들은 행동이 없는 기도나 믿음을 비난하지만, 사실 행동이 더 쉬울 때도 많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 꼭 무슨 행동을 해야 더 효과가 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는 대신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자기의 믿음이나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네, 그러고 보니 행동이 쉬울 때도 있네요.”
“그래, 올바른 믿음과 기도가 우선 돼야 하고, 이것이 기본이 되면 행동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행동은 올바른 믿음의 그림자다. 그래서 믿음이 먼저지.”
“네 알겠어요. 그리고 저는 우리가 하는 기도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루브리아의 눈이 잘 낫지 않는 것이 걱정되어 한 말이다.
“나는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
실제로 기도의 놀라운 응답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를, 행동하지 않기 위한 핑계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네. 그런 것 같아요. 기도한다는 말 뒤에 숨는 거지요.”
“그래.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음 단계를 보여주신다고 믿는다.”
바라바는 아셀 당수 체포 다음 단계를 걱정하면서, 헤로디아 왕비에게 드릴 석청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