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사람들이 갑자기 난 지진으로 한꺼번에 몇백 명씩 죽는 걸까요?”
사라는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확실히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그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기억이 났다.
“지진이 나서 죽은 사람은 모두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은밀한 죄를 지었을까요?
또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여럿이 죽는 일도 있는데, 그중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앙심 좋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사라야, 지진이 나거나 풍랑을 만나 죽는 사람이 모두 죄인은 아니다.
지금도 어떤 종파에서는 그런 일들에 대해 신의 분노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여, 회개가 부족하다는 말들을 하는데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하기 어렵지.”
“그럼, 그런 일들은 왜 일어날까요?”
“음, 그 질문 자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침묵할 수 밖에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있겠지.”
“어떤 부분인가요?”
“너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선악의 문제이다.
‘왜 저렇게 착한 사람이 큰 고통을 받고 나쁜 사람이 더 잘 사나?’
또 ‘하나님은 왜 의로운 사람이 받는 고난을 지켜만 보고 계신가?’ 라는 의문이 당연히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이, 도덕적 선과 악의 행위에 그대로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세상은 선 자체를 사랑하거나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자발적 선은 없고, 보상을 바라는 선만 있겠지.
이런 계산적인 선만 행할 때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선이 진정한 선일 수 있을까?”
“아, 네. 아니겠네요.”
“그래서 가끔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선과 보상이 그리고 악과 징벌이 정비례하게 눈에 보인다면, 강요된 선 외에는 인간이 할 것이 없을 테고 그게 낙원은 아닌 것 같아.
역설적이지만, 참된 선한 행위는 이렇게 부조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만 가능하고 그 안에 순수한 기쁨이 있다고 볼 수 있지.”
“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돼요.”
“그래서 신을 믿는 문제도 그 결과가 확실히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다행인지도 몰라.”
아버지와 대화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확실히 기억이 나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그리웠다.
사라는 이런 대화를 글로 잘 정리한 후 아침 산책을 나왔다.
뒷문을 나오는데 누가 골목으로 막 돌아서는 뒷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눈에 익은 모습인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서 동네 회당 옆에 있는 공원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와 자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곳이다.
이른 아침 공기가 차갑게 뺨을 스쳤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무화과나무 사이에서 새들도 막 잠이 깼는지 아침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아버지와 앉았던 벤치에는 낙엽이 간밤에 더 많이 떨어져 있었고, 어떤 사람이 벌써 앉아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가려는데 누가 뒤에서 불렀다.
“사라 님!” 뒤를 돌아다보니 미사엘이 서 있었다.
“어머, 미사엘 님. 이 시간에 여기 웬일이세요?”
“아침 산책을 하다 이 공원에 왔는데, 사무엘 님과 몇 번 앉아서 말씀을 듣던 벤치가 보여 앉아 있었어요.”
“아, 그럼 조금 전 앉아 계시던 분이 미사엘 님이셨군요.”
“네, 사라 아가씨 집도 한 바퀴 돌아 봤어요.
인사를 할까 하다가 너무 일러 그냥 왔는데 사라 님이 곧 공원으로 나오셨네요. 하하.”
“그러셨군요. 반갑습니다.”
“네, 저도요. 재판은 잘 끝나셨지요?”
“아니에요. 오랜만에 뵈었는데 잠깐 벤치에 앉으실까요? 설명도 드릴 겸.”
사라는 벤치에 미사엘과 같이 앉았다.
옆에 앉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고 미사엘이어서 좀 묘한 느낌이었지만, 재판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아, 그렇게 되었군요. 다음 재판 준비를 잘하셔야겠네요.”
“네. 그래서 걱정이에요.”
“그럼 로마에 가신다는 건 재판 결과를 봐야 알겠네요?”
미사엘의 입에서 불쑥 바라바에게 들은 말이 나왔다.
은연중 잘 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미사엘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지난번 바라바 님을 통해 사라 님에 대한 제 마음을 전해 드렸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혹시 언짢으셨다면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에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셔도 돼요.
저는 그전에 벌써 로마에 가서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니까요.
오히려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려야지요.”
회당 예배가 끝났는지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 사이에 종소리가 잠시 머물며 사라질 동안 낙엽이 한 잎 흘러내렸다.
어색한 침묵이 느껴지는 순간 사라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으니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지금 미사엘 님 자리에 앉으셔서 파란 하늘을 보며 저에게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러셨군요. 저도 몇 번 여기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갈까 하다가 잠깐 사무엘 님이 앉으셨던 이 자리에 앉아 봤지요.”
“그렇게 아버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제가 입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 열성당이 계획하는 일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요.”
“곧 대규모 집회를 하실 거지요?”
“그렇습니다. 한 달 후에 헤롯 별궁 앞에서 할 겁니다.
시위를 시작 하면 곧 바라바 님이 우리 측 요구사항을 전달하여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되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하다 보니까, 사무엘 님 대신 따님께 이런 말은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하하.”
“미사엘 님이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예요.”
“저희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시위도 그때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준비하고 있지요.
만약 로마에 가시는 게 오래 연기되거나 변경이 된다면 이런저런 말씀을 오늘처럼 가끔 나누고 싶네요.
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미사엘의 오른손이 사라의 왼손으로 향하는 듯보였다.
“네. 오늘 저도 반갑고 즐거웠어요. 그럼 조심해 가세요.”
미사엘이 손을 급히 거두었고 사라가 먼저 벤치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바라보는 미사엘의 눈길을 느끼며, 사라는 공원의 무화과 잎 사이 파란 하늘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