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앉아도 될까요?”
“네, 앉으세요.” 사라가 자리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아까 재판에서 검사님과 증인의 날카로운 공격에 저희가 아주 혼이 났습니다. 하하.”
“천만에요. 저희는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저희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탈레스 선생이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판 끝나고 사람을 시켜 어디로 가시는지 알아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낫세입니다.”
“아, 가낫세 변호사님이시군요. 저는 탈레스라고 합니다.”
탈레스 선생이 사라와 유타나도 소개했다.
“제가 뵙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보셔서 좀 아셨겠지만 재판이라는 것은 사실이 밝혀지기보다는, 피차 시간 낭비만 되고 또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인 저는 재판을 많이 하고 오래 끌수록 수입이 더 생기지만, 다른 사건도 많고 그래서 이번 일은 서로 화해함으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온 것입니다.”
“화해라는 의미는 고소를 취하해 달라는 뜻인가요?” 탈레스 선생이 물었다.
“네, 그래 주시면 제일 좋겠지만, 어려우시면 우선 루고 백부장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해도 좋다는 동의서만 한 장 써 주셔도 화해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저희가 응하지 않으면요?”
“그러시면 우리도 원고 측을 무고죄로 맞고소하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재판 결과가 피고의 무죄로 판결이 나면, 원고인 사라 님이 구속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 양해하고 타협하자는 거지요.”
사라가 곧바로 가낫세에게 말했다.
“변호사 님이 제 입장이라면 그러실 수 있을까요?
저는 아버지가 루고 백부장의 사주로, 아단을 통해서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루고 백부장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변호사 님은 최면에 대해 전혀 모르시나요?”
“사실은 좀 압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사라 님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끝까지 싸우면 사라 님도 구속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마나헴을 응징한 보고를 바라바에게 한 후 탁자 위로 묵직한 은전 포대를 나발이 올려놓았다.
“이번에 헤스론과 나발이 정말 한 건 했구나.”
“나는 뭐 별로 한 거 없어. 빨랫방망이만 한번 들었다 내렸지.
다 나발이 처음부터 계획을 잘 세워서 한 거야.”
“그래, 나발이 수고 많았다. 이 정도 은전이면 당분간 활동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수고한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조금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나발의 말이 끝나자 헤스론이 거들었다.
“그래. 누보가 고생했지.”
“네. 그리고 레나와 유리 모녀도 우리 편이 되서 애썼어요.”
“그랬구나. 그 점성술 모녀 말이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 호텔에서 만난 것도 이번 작전의 일환이었구나. 하하.”
바라바가 그때를 기억하고 웃었다.
“유리와 누보는 이번 일뿐만 아니고 독수리 깃발 탈취 작전에도 개입되어 있어요.
좀 더 진전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나발이 은전 포대를 옮기며 말했다.
“아, 그래. 얼마 전 미사엘 님을 만났을 때 궁금해하셔서 나발이 작전을 세우고 있다고 했지.
오늘 아몬과 같이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오시네?”
바라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몬과 미사엘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모두 오랜만입니다.”
미사엘이 밝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네, 안녕하세요? 미사엘 님.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그래요. 이제 꽤 춥네요. 사라 님은 예루살렘에서 아직 안 돌아왔지요?
주인 없는 집에 모이니 좀 미안하네요.”
“네. 아마 내일 저녁이나 되야 올 겁니다.”
“재판은 잘 되고 있겠지?” 아몬이 바라바에게 물었다.
“뭐 별문제 없겠지. 탈레스 선생이 같이 가셨으니까.”
“오늘 좀 만나자고 한 것은 미사엘 님이 며칠 전 아셀 님과 나눈 이야기를 좀 상의하기 위해서이네.
미사엘 님, 말씀하시지요.”
아몬이 옆에 있는 미사엘에게 발언을 권했다.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아셀 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을 먼저 서신으로 전달하여 헤롯 왕과 협의하는 것은 절대 반대고, 반드시 민중 집회를 동시에 혹은 먼저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요구사항 서신의 서명도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바라바가 미사엘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은 아셀 님이 이미 민중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집회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면 힘을 합쳐서 잘 되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동시에 요구사항을 헤롯 궁에 제출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설득을 잘해서 집회를 안 하고 서류제출로 일이 잘 처리된다면 제일 좋을 텐데 좀 아쉽고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장담할 수는 없는 문제고 아셀 님의 생각도 이해가 됩니다.”
바라바는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헤로디아 왕비에게 미리 상황을 설명해 주고 상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다간 자신이 배신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하튼 집회는 아몬 님과 제가 아셀 님을 도와 같이해야 할 것이고, 헤롯 왕께 보내는 요구사항 문서에는 누가 대표로 서명을 해야 할까요?”
미사엘이 바라바를 보며 바라바가 좋겠다는 뜻으로 묻는 것 같았다.
“저는 바라바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셀 님도 대강 그렇게 알고 있고요.”
아몬이 말했고,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네, 그럼 제가 하는 것으로 하지요.
시위 날짜를 알려주시면 같은 날 서류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이어 나발이 입을 열었다.
“바라바 형님, 대규모 시위 전에 저희가 깃발을 탈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만 성사되면 우리가 빌라도 총독의 약점을 잡은 거니까 그 후의 시위는 어떻게 하든 우리에게 큰 위험 부담은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런 일들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열성당에 비밀사업부를 만들어서 별도로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나발의 생각이 좋은 것 같은데 누가 비밀사업부를 맡아서 하나?”
듣고만 있던 헤스론이 말했다.
“아무래도 나발이 적임일 것 같네.”
“맡겨 주시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또 이번 일을 같이하는 누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열성 당원으로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위 왼쪽부터 바라바, 헤스론, 나발, 누보, 레나, 유리, 미사엘, 아몬, 아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