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 밖으로 나온 사라가 탈레스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으세요?”
탈레스 선생이 길게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루고의 변호인이 재판장과 잘 아는 사이 같아요.
질문하는 내용이나 방향이 노골적으로 루고를 풀어 주려 하고 있습니다.”
“어머, 그렇게 쉽게 풀어 줄 수도 있나요?”
“네. 재판장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제가 증인으로 뭐 잘못 말한 것은 없나요?” 유타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잘했어요. 그러나 판단은 결국 재판장 마음이니까…”
모두 불안한 마음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오후 재판에 참석했다.
“오전 재판에 검사가 언급한, 피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무엇입니까?”
재판을 속개하며 가야바가 탈레스에게 물었다.
“피고가 열 살 무렵에 친했던 친구 이름인데, 피고의 인사기록카드는 물론이고, 아무도 그의 어린 시절에 그와 같은 친한 친구가 있던 것을 몰랐지요.
이것을 피고가 말함으로써 피고가 한 자백도 사실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이 뭡니까?”
“피코입니다.”
“피고는 피코라는 사람을 압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루고가 가야바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피고가 모르는 사람이라는데요?”
“피고가 피코를 모른다고,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피고가 어릴 때 제일 친했던 친구라며 피코의 이름을 적은 종이가 있습니다.
재판장님이 보시고 글씨가 피고가 쓴 것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가야바가 받아서 슬쩍 한번 보고는 피고의 변호사에게 주었다.
변호사는 그 쪽지를 루고에게 보여주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루고가 쪽지를 보더니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글쎄요. 제 글씨 같기도 합니다만, 마술에 걸리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탈레스 선생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피고는 어릴 때 친구인 피코를 전혀 모른다는 말입니까?”
“네. 전혀 모릅니다.”
“제가 이럴 줄 알고 사마리아에 사는 피코와 연락을 했어요.
피코는 피고를 잘 알뿐더러 피고가 어렸을 때 코피가 자주 났었다는 말도 피코가 했습니다.
만약 계속 모른다고 부인하면 다음 증인으로 부를 것입니다.”
루고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 그 피코 말이군요. 사마리아에 사는 피코는 압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 언뜻 기억을 못 했습니다.”
“이제 생각이 났군요. 이상입니다.”
루고의 변호사가 바로 일어나 피고인 변론을 하기 원했고 가야바가 고개를 끄떡였다.
“루고 백부장은 10여 년간 근위대에 근무하면서 한 번도 징벌을 받은 적 없지요?”
“네. 없습니다.”
“상을 받은 적은 있나요?”
“네. 백부장 들 중 근무성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주는 검은 독수리상을 받았습니다.”
“루고 백부장은 아단의 유서를 그의 형 무단이 보여줄 때 글씨체가 아단의 것인지 알았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무단도 동생이 쓴 글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단은 왜 자살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보기보다 마음이 여렸고, 자기가 감시하던 사무엘이 갑자기 살해당하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으면 아단은 이미 승진을 했을 텐데, 그것도 못 하게 되니 심한 우울증으로 순간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내부적으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여 괴로워했습니다. 아단은 사마리아인입니다.”
변호사는 루고에게 유리한 질문을 계속했고 재판장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므로 재판장님, 루고 백부장의 억울한 처지를 고려하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피고는 어릴 때 제일 친했던 친구의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가 나중에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구속 재판이 되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습니다.”
탈레스 선생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야바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몇 번 껌벅거린 후 말했다.
“피고 루고의 혐의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피고의 진술 번복이 있었으므로 재판은 구속재판을 유지합니다.
판결은 다음 재판으로 연기하겠습니다. 피고는 퇴장하세요.”
루고는 눈썹을 찡그리며 경호원이 포승줄을 끄는 대로 따라 나갔다.
재판이 끝나고 사라 일행은 다시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휴, 잘못하다가 루고가 풀려날 뻔했지요?”
사라가 탈레스 선생께 물었다.
“네. 그랬지요.”
“저도 풀려나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나 몰라요.
선생님이 사마리아의 피코에 대한 말씀을 안 하셨으면 풀려났을 거예요.
언제 그렇게 피코에게까지 연락을 하셨어요? 대단하세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 그럼 아까 법정에서 하신 말씀은?”
“상황이 다급해서 그렇게 말했는데 루고가 넘어간 겁니다.”
“호호, 그러셨군요. 루고가 어려서 코피가 자주 난 건 어떻게 아셨나요?”
“루고 같이 생긴 얼굴은 코가 약한 형태라 코피가 자주 납니다.
그날 최면 걸었을 때도 코피가 났었지요.”
“여하튼 시간을 좀 벌었는데 다음 재판까지 이런 상태라면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겠네요.”
이때 “아, 여기들 계셨군요.”라는 소리가 사라의 뒤에서 들리며 누가 아는 척을 하고 다가왔다.
탈레스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례를 했고 사라도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루고의 변호사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