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고의 변호사가 가야바 재판장과 눈을 마주치며 계속 말했다.
“유대 사회에서 제사장의 권위를 침범하는, 마술이나 점성술 등은 근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피고 루고는 억울하게 마술사에게 당해서 지금 여기 묶여 있는 것입니다.”
가야바가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피고가 살해했다는 근위대 병사 아단은 평상시 피고가 동생처럼 돌봐준 사람이었고, 최근에 근위대장께 승진도 건의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증언해 줄 증인이 와 있는데 증인석에 나와서 증언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야바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피고인 측 증인, 증인석으로 나오세요.”
사라의 뒤에서 누가 일어나 앞으로 나와 증인석에 앉았다.
아단의 형 무단이었다.
사라는 그에게 친절했던 것이 너무 후회되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아래만 보고 있었다.
“증인은 일어나서 선서하세요.”
가야바가 무단을 일으켜 세우고, 증인은 사실만을 말하며 만일 거짓 증거 하면 하늘의 큰 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선서를 시켰다.
무단이 선서를 끝내고 앉자 판사의 증인에 대한 간단한 인정 신문과 함께 질문이 시작되었다.
“증인은 얼마 전 죽은 아단의 친형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단과 같은 집에서 살았나요?
“네.”
“그러면 최근 아단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무단의 대답이 조금씩 작아지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자 가야바가 주의를 주었다.
“증인은 좀 더 큰소리로 여기를 보고 대답하세요.”
무단이 고개를 들었다.
“증인이 생각하기에 아단은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무단이 조금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에 방청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유서에 ‘너무 사는 것이 괴롭다’라고 쓰여 있어서…”
“글씨는 동생 아단의 것이 확실한가요?”
“네, 그렇습니다.”
“동생 아단을 곧 승진시켜 주겠다는 피고 루고의 말을 증인이 직접 들었나요?”
“직접은 못 듣고 동생을 통해 여러 번 들었습니다.”
가야바의 질문은 재판장의 질문이 아니라 피고의 변호사로서 물어볼 만한 말들이었다.
“네, 증인 수고했습니다. 자리로 들어가세요.
그럼 이제부터 고소인을 대신하여 검사께서 피고인 심문을 해주세요.”
재판장이 탈레스 선생을 보며 말했다.
탈레스가 일어나 가야바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루고를 보며 질문을 시작했다.
“피고는 신체 건강한 분이지요?”
“네.”
루고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마술사들은 환자의 아픈 몸을 고쳐 준다고 하고 돈을 받습니다.
피고는 어디 아픈 곳도 없는데 왜 마술에 걸렸다고 했습니까?”
“아프지는 않았지만, 마술에 걸려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향내를 맡은 후 기절하여 깨어 보니 몸이 묶여 있었습니다.”
“누가 마술을 걸었습니까?”
“지금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루고의 대답을 듣고 탈레스 선생이 서류 하나를 재판장에게 제출했다.
“이 서류는 제가 마술사가 아니라, 집안 대대로 의사로서 환자를 고치는 일을 했다는 로마 의사협회 증명서입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헤롯 대왕의 주치의도 하셨습니다.
제가 피고인에게 했던 일은 마술이 아니라 최면을 걸어 피고의 숨겨진 마음을 알아내는 일이었습니다.
피고는 마술이 아니라 최면에 걸린 거지요?”
“이의 있습니다.”
루고의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검사는 최면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쓰면서 피고를 혼동시키고 있습니다.
본인이 의사라면 약을 써야지 왜 사악한 방법을 씁니까.
그게 바로 마술의 일종입니다. 피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마술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석에서 재판의 진행을 보고 있는 사라는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실과 진실이 명쾌하게 드러나기보다는, 말 잘하고 세게 우기는 사람이 이기는 게 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바가 탈레스에게 계속 질문하라고 했다.
“피고는 내가 마술을 썼다고 주장하는데, 마술을 써서 무엇을 했나요?”
“그건 모릅니다. 제가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까요.”
“네. 피고는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맞습니다.
마음속에 숨겨진 과거가 최면에 의해 그대로 나타났으니까요.
재판장 님, 저희 측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가야바가 유타나를 나오라고 했고 그녀도 증인선서를 한 후 증인석에 앉았다.
피고 측 변호사가 질문하기 시작했다.
“증인은 소위 최면이라는 마술에 걸린 피고가 '본인이 아단을 시켜서 사무엘을 살해했으며, 나중에 아단까지 죽였다'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증인은 유대인이 아니지요?”
루고의 변호사가 물었다.
“네. 저는 유대인은 아닙니다만, 해방 노예로서 곧 로마시민권을 받게 될 예정입니다.”
가야바가 옆에 서 있는 부심과 귓속말을 잠시 속삭인 후, 해방 노예는 증인 자격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루고의 변호사가 계속 질문했다.
“증인은 탈레스가 의사인데 왜 최면이라는 마술을 썼다고 생각합니까?”
“최면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들이 간혹 쓰는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고가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피고의 동의도 없이 최면을 썼다는 것은 피고가 범인이라고 함부로 판단한 것 아닌가요?”
변호사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아닙니다. 살해 장소에서 피웠던 향내와 같은 냄새가 피고에게 나서 그런 것입니다.”
“냄새가 같다고 범인으로 몰면 안 되지요.
같은 향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걱정했던 대로 분위기가 별로 좋게 돌아가는 성싶지 않았다.
“재판장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탈레스 선생의 말에 가야바가 고개를 끄떡였다.
“최면에 걸리면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도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진술도 사실로 인정이 되는 것인데, 피고는 그날 피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을 말했습니다.”
가야바 재판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그 일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되었으므로 정회하고 오후에 재판을 속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