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천양지차는 서로의 의견이 좌우로 나뉘어있지 않습니다.
4.3사건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 YOU TUBE 두 개를, 특별한 의미 없이 위아래로 배열하였습니다.
위: 아그래-역사이야기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HzZPlfTEK7c
1) 1947년 3/1절 제주도 기념식에서 경찰기마대의 말발굽이 어린아이를 치어서 분노한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 가니 경찰이 발포하여 6명 사망.
2) 토벌대장 김익렬 중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평화적으로 처리하고자 제주 남로당 대표 김달삼과 대화를 하고 있었으나 조병옥의 반대로 해임 됨.
3) 당시 남한 집권층은 평화협정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고, 군대대신 경찰과 서북 청년단을 제주도로 내려 보냈으나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 함.
4) 1948 5 10 선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 당선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제주도는 선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음. 이후 산에서 해안지역으로 이주하라는 지시에 불응하거나 지시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 모두 폭도로 몰렸음.
5) 4.3보고서에 의하면 4.3사건의 사망자 2만5천~3만 중 78%가 토벌대에 의해 13%가 남로당에 의해 살해되었음.
아래: 역 TV
https://www.youtube.com/watch?v=qxV-7CG8gxg&t=780s
1)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도 인구 30만 중 6-7만이 남로당 가입으로 추산.
2) 무장봉기 자체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폭동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음.
3)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불복하여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의 주동들도 남로당원이였고, 그들이 발표한 인민위원회의 6개항을 보면 남로당의 목표를 잘 알 수 있음.
4) 만약 당시 남로당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6 25전쟁 때 남한은 자체 붕괴되었을 것임.
5) 문재인 대통령은 4.3추념식에
참석하여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아무리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서라지만,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것은 잘못된 일이고 사죄해야 마땅함.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에 억울한 수많은 희생자가 있다고 해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등의 행위가 호도되어 민중항쟁 운운하면 안됨.
6) 이후 4.3사건의 주동자인 김달삼은 이북으로 탈출했고 사망후 혁명 열사묘에 묻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