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게 청소부로 취직하라는 제안을 한 나발이 계속 말했다.
“제가 좀 더 설명을 할게요.
누보는 벌써 알고 있었지만, 실은 제가 유대 독립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조금만 더 우리 계획을 밀고 나가면 독립도 머지않았습니다.”
엄숙한 어조로 말을 하는 나발이, 유리의 눈에는 유대민족의 독립운동을 지휘하는 늠름한 장군같이 보였다.
“아, 그래서 엄마가 나발 님이 장군이 되실 거라 했었군요.”
“저도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요.” 누보가 신나는 목소리로 거들었다.
“그렇군요. 무슨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게요.
청소부로 취직을 해서 어찌하면 되나요?”
“고맙습니다. 유리 님이 도와주시니 벌써 반은 성공한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좀 더 계획을 수립한 후 알려 줄게요.”
“네, 그러세요.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까 좀 문제가 있네요.”
“무슨 문제인데요?”
“거기서 청소부로 취직하여 무슨 일을 하려면, 자세히는 모르지만,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제가 가게를 오래 비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음, 보름 정도 비우기도 어려울까요?’
“네. 지금 저의 행동반경을 감시당하고 있어요.”
나발이 무의식적으로 전후좌우를 살펴봤다.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나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나발 님을 누가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나요?”
유리의 질문이었다.
“그건 아닌데요….”
잠시 어색한 시간이 지난 후 유리가 작심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말씀드린 마나헴이라는 분이 저와 결혼하자고 하세요.”
나발과 누보의 눈이 마주쳤다.
“저는 결혼하기 싫어요. 그분과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요.
그런데 제가 어디를 잠깐만 다녀와도 경호원이 보고를 해요.
그러니 며칠을 비우기도 상당히 어려울 거예요.”
“네. 아마 내 주에 올 것 같아요. 결혼을 내달 초로 서두르고 있어요.”
“그런 사정이 있으시군요. 유리 님이 워낙 미인이시라….”
“호호, 감사합니다. 여하튼 저는 다른 방법이 없으면 결혼 전에 도망이라도 갈 거예요.”
“아니 세상에, 마나헴이 그런 억지를 쓰면 안 되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으니까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누보가 말을 하다 슬쩍 나발을 바라본 후 계속 말했다.
제 사정을 다 말씀드렸으니까 나발 님이 잘 생각하셔서 계획을 세워주세요.”
“유리 님이 정말 도망이라도 갈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일을 전개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는데 누보가 사정조로 말했다.
“나도 할 일을 하나 줘.”
“걱정 마. 네가 할 일도 있어. 그리스 말 좀 할 수 있지?”
“응, 인사말 정도지만, 알아듣기는 하지.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배웠으니까”
“그래, 우리 반드시 이번 일을 성공시킨다.”
위엄있게 말하는 나발의 모습이 유대 장군 같았다.
바라바는 사라를 만나러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루브리아가 한 말, ‘같이 카프리 섬에 가서 평화롭게 살자’라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이러한 행복을 놓칠 수는 없다.
루브리아의 눈을 고친 후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사라의 앞날인데 아무래도 미사엘이 지난번에 말한 이야기, 사라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그녀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라는 집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의 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글이 있어서 오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오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호호”
미사엘에 대한 말을 하려고 온 바라바는 그녀에게 또 미안했다.
기적의 약효는 변덕 많고 의심 많은 우리에게 그리 오래가지 않고, 더 큰 기적을 요구하게 된다.
즉 기적이라는 증거에 의존한 믿음은 신앙이라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기적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단순한 우연으로 해석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 우리가 여기 사는 것은 기적인가 우연인가?
까마득한 과거의 역사 속에서 걸어 나와, 지금 우리가 서로 만나 웃고 악수하는 것은 기적인가 우연인가?
아니, 무엇보다 지금 우리의 심장이 쉬지 않고 뛰고, 자면서도 숨을 계속 쉬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이 짧은 순간의 생명을 우리가 느끼고 감사하는 것이 기적이라면, 그런 기적으로 우리의 믿음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과 아직 어린 우리 자식들의 심장도 이렇게 뛰었고 뛰고 있다.
‘기적의 믿음’보다 ‘믿음의 기적’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언제 쓰신 글인가?”
“몇 년 전 같은데 원래는 이것보다 긴 글을 간추려 본 거야.”
“음, 나도 가끔 생각했었던 문제였지....”
바라바의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운 것을 사라가 눈치챘다.
그는 지금 무엇보다 루브리아의 눈이 고쳐지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
만약 낫지 않는다면 어찌 될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루브리아의 눈을 고치고 카프리 섬으로 같이 가야 한다.
“오빠 좀 우울해 보이네. 무슨 걱정이 있어?”
“응... 우리가 기다리던 예수 선생이 예루살렘으로 바로 가셨어.
루브리아 님의 눈이 걱정이야.
빨리 만나서 고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리고 너에게 해줄 말도 좀 있어.”
바라바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사라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