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는 무슨 일이 났는데 루브리아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가 의아해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제의 근위대장인 세야누스가 축출되었어요.”
“세야누스가 누군데요?”
“티베리우스 황제가 연로하여 카프리 섬에 은거하시면서 ,실질적인 모든 로마의 일들을 오랫동안 그에게 위임했는데,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나 갑자기 체포되었어요.
소문에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적발되었다고 하네요.”
바라바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로마가 온통 난리가 났나 봐요.
그동안 세야누스와 친한 사람들이 줄줄이 숙청당하고 있어요.
제가 선을 보려고 했던 도미니우스 집안도 피해를 볼 것 같다는데, 안되기는 했지만 당분간 선보러 로마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눈도 예수 선생이 곧 와서 고치면 되니까요.”
루브리아는 로마에 선보러 가는 것이 무산되어서 특별히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예수 선생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네, 로마에 안 가게 돼서 참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예수 선생이 여기 들리지 않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고 하네요.”
루브리아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으나 곧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말씀 하시러 오셨군요. 뭐 예루살렘에 가서 만나면 되겠지요.
이런 기회에 구경도 하고요. 로마여행 대신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네요. 호호.”
“네, 언제쯤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네, 바라바 님이 그분의 제자도 잘 아신다니까 문제없겠지요.”
“네, 그래도 여기서 좀 편하게 빨리 치료를 받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바라바 님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그보다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빌라도 총독도 지금 아주 불안해 하고 있대요.
세야누스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는데 결국 자기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생각하나 봐요.”
“아, 그렇군요. 헤롯 왕도 신경이 쓰이겠군요.”
“그렇겠지요. 그러나 티베리우스 황제가 건재하는 한 헤롯 왕은 큰 변화는 없을 거예요.”
바라바는 로마 사정을 잘 아는 루브리아에게 얼마 전 열성당 운영위원회에서 상의 되었던 안건들을 말해주며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성전세 문제와 여행 자유화, 둘 다 그리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거예요.
로마 입장에서는 재정 확보도 중요하고 명절에 큰 소요사태도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이런 일은 헤롯왕과 빌라도 총독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 황제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단계마다 어려움이 있겠지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바라바는 빌라도의 영내에 있는 독수리 문양 깃발을 탈취하려는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고 또 상황에 따라 로무스 대장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 고마워요. 앞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상의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이런 큰일을 할 때는 바라바 님 신변 안전이 늘 걱정돼요.
지난번에도 갑자기 그랬었고, 늘 조마조마해요.”
“이번에는 제가 전면에 나서지 않아서 별문제 없을 거예요.
“음, 사실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해 봤어요.
루고 백부장을 조사하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꼈어요.
사람마다 겉으로 봐서는 눈, 코, 입이 있어서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마음은 서로 저만치씩 떨어져 있는 바위들 같아요.”
바라바가 계속 듣고 있고 루브리아는 포도주 잔을 비우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바라바 님을 생각하면 더욱 귀하고 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 심정 이해하시죠?”
“그럼요, 지난번 식사하면서 선을 보러 로마에 가신다고 들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바라바는 식탁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예수 선생님을 몹시 기다린 것은 물론 제 눈을 치료하기 위해서지만, 바라바 님과 같이 그분을 만나 눈이 나으면, 그다음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나는 눈도 나았고 바라바 님이 있어서, 선보러 로마에 안 가겠다고요.”
바라바는 루브리아의 마음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식탁 위로 루브리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루브리아가 계속 말했다.
“제 눈이 다 나으면 우리 로마에 갔다가 나중에 카프리섬으로 가요.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거기 바다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지내기 편안하대요.”
바라바는 루브리아가 내 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미움과 전쟁이 없는 곳에서 살아요.
바라바 님이 여기서 독립운동을 해서 마카비 장군 같이 돼도, 평생을 피를 보며 사는 것은 싫어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조용히 사는 게 저의 소망이에요.”
간곡하게 말하는 루브리아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촉촉해졌다.
“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정말 고마워요.”
“음,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쫓아서 전장에서 자랐어요.
사람들이 서로 생각이나 믿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상대방을 죽이고, 또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 되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들의 명분이 아무리 위대하고 거룩해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기네들의 이익과 탐욕으로 움직이고 있지요.
같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작은 사랑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자기와 입장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일 수 있겠어요?
동물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도, 과연 신이 그 비둘기나 양의 피를 대신 받아야 꼭 죄를 사하여 주실까요?
살아있는 생명은 다 살고 싶어 하는데, 이 본성을 신이 만드신 것이라면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동물들의 생명도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신의 용서와 속죄가 이렇게 생명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루브리아가 평소의 생각을 길게 말했다.
“좋은 말씀이에요.
우리가 개개인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 이런 생각들을 나누며 의견 교환을 하는데, 어떤 단체나 종교적 모임이 되면 이러한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네, 그 단체나 모임의 집단 이기주의에 반대하여, 더 크게 마음을 넓히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루브리아의 말이 끝나자 바라바가 살짝 한숨을 쉰 후 입을 열었다.
“그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내부에서 배신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잘못된 법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바라바는 만약 자기가 이 땅을 떠나서 조용히 산다고 발표하면, 자신도 열성당 내부에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