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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308화 ★ 노예가 없으면 때는 누가 미나

wy 0 2024.07.24

왕비가 책에서 눈을 떼고 루브리아를 바라보았다.

 

루브리아, 오늘 아침은 더 아름다워 보이네.”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선실에서 헤로디아는 늙어가는 여인의 주름을 진한 화장으로 감추었다.

루브리아 헤로디아 collage.png

 

감사합니다. 왕비님도 30대 같으세요.”

 

그게 문제야. 작년만 해도 사람들이 20대 같다고 했었지.

 

30대 같으면 20대라고 하고 40대 같아 보여야 30대라고 하니까. 호호.”

 

루브리아가 아니에요. 왕비님은 정말 30대 같으세요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그래도 나는 마음만큼은 아직도 30대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지금 이런 여행도 하는 거겠지.”

 

헤로디아의 연한 갈색빛을 띤 눈이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 필로라는 사람은 정말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

 

왕비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필로 선생 책인가요?”

 

, 루브리아도 그 사람을 아는구나.

 

해외 유대인 중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학에 가장 정통하다는 사람인데, 이제 좀 지나친 주장을 하기 시작했네.”

 

뭐라고 했는데요?”

 

루브리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왕비가 책을 다시 펴서 읽어주었다.

 

<노예제도는 오래전 이집트 문명에 그 뿌리가 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사람은 300년 전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어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노예에 적합하기에 노예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로디아가 천천히 읽으며 얼굴을 들어 루브리아를 쳐다본 후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글을 쓰는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창조되었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불의와 탐욕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며, 힘없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는 노예제도는 근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구나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노예로 고통받았던 우리 유대인들은 그런 면에서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 그러니까 노예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인데 말이 안 돼.

 

노예가 없으면 당장 목욕할 때 때는 누가 밀어주겠어.”

 

왕비가 동의를 구하듯이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때를 박박 미는 건 오히려 피부에 안 좋다고 해요라는 말을 루브리아는 입에서 삼켰다.

 

필로 선생이 책을 너무 많이 쓰더니 요즘은 좀 이상해진 것 같아.

 

노예들은 7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주어서 쉬게 하면 충분한 거야.

 

지금 이 배도 갑판 아래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노예들 덕분에 훨씬 빨리 갈 수 있어.

 

앞으로 3~4일 안에 카프리섬에 도착할 것 같아.”

 

,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네요.”

 

, 카프리섬에서 황제 폐하를 만나고 빨리 로마에 가서 폼페이우스 극장 옆에 있는 대형 목욕탕에 가야지.

 

루브리아는 거기 안 가봤지?”

 

, 저는 아직.”

 

이번에 나하고 같이 가야 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폼페이우스 목욕탕은 널따란 공원 한가운데 있는데 주위를 빙 둘러싸며 숙박객들을 위한 방이 늘어서 있지.

 

욕탕 건물만 해도 온탕, 냉탕, 열탕이 따로 있고 각각 작은 욕실이 딸려 있는데 한꺼번에 천 명이 목욕할 수 있어.”

 

, 대단하네요. 입장료는 비싼가요?”

 

거기는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지.

 

귀족들과 기사 계급만 입장이 가능해.

 

루브리아는 내 손님으로 나와 같이 입장할 수 있지.

 

물론 로무스 장군의 딸이니까 회원자격은 충분하지만.”

 

, 그렇군요. 저는 카이사레아 온천 목욕탕도 참 좋던데요.

 

거품도 나오고요.”

 

, 사실 온천물로만 보면 좋은 곳이지.

 

육각형으로 된 회색 대리석 욕조도 로마식을 본떠서 잘 만들었고.

 

하지만 규모나 서비스 면에서 로마 목욕탕을 따라갈 수 없어요.

 

거기서는 먼저 증기를 내뿜는 뜨거운 열탕에 들어가 땀을 흠뻑 낸 후 간단히 미지근한 물에 샤워한 다음 따스하고 건조한 방에 들어가지.

 

그 방으로 잘 숙달된 노예가 들어와 온몸에 올리브유를 칠하고 때 미는 도구인 까칠한 수건으로 피부를 밀며 마사지를 해주는데 원하는 사람은 진흙 마사지도 받을 수 있어.

 

마사지가 끝나면 넓은 온탕으로 가서 적당히 헤엄을 치지.

 

그리고 나와서 잠깐 열탕에 다시 들어간 후 이번에는 냉탕에 들어가는 거야.

 

이때 피부가 탄력이 생기며 매끈해지는 것 같아.”

 

, 저도 수영하고 나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져요.”

 

, 이 냉탕도 웬만한 수영장만큼 크니까 수영 시합도 할 수 있지.

 

그리고 따스한 물에 샤워한 후 온몸에 향내 나는 야자씨 기름을 노예가 가볍게 발라주면 목욕을 끝내게 돼.

 

그러니까 거의 하루 종일 있으면서 몸만 씻는 게 아니라 운동도 하고 피부도 단련하는 체육시설 같은 곳이야.

 

중간에 배가 고프면 숙박 시설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여러 나라 음식을 즐길 수 있고 넓은 잔디밭에서 가족끼리 요리도 할 수 있어."

 

아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갈 수 있는 사교장도 되겠네요.”

 

맞아. 사귀고 싶은 원로원 의원이나 장군들을 초청해서 같이 수영복만 입고 종일 같이 있다 보면 금방 친해지기도 하지.

 

나도 예전에는 자주 초청받았었지.

 

젊고 잘생긴 의원들이 내 몸매를 감상하려고. 호호.”

 

가끔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겠네요.”

 

, 그렇기는 하지만 여자들끼리는 절대로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좋아.

 

화장을 안 한 얼굴을 보니까 확실치 않아서 잘못하다 실례가 되지.

 

설령 맞더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서로 놀라게 되니까 모르는 척하는 게 예의지. 호호.”

 

호호. 맞아요. 왕비님은 정말 인기가 많으셨겠어요.”

 

“30년 전이지만 시리아 총독을 하던 퀴리누스, 원로원 의원 맥슨, 지금 시리아 총독인 페트로니우스도 서로 나를 초대하려고 했어.

 

그래서 지금도 페트로니우스 총독은 나하고 가까운 사이지.”

 

시녀장이 들어와서 진흙 마사지 준비가 다 되었다고 보고했다.

 

왕비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했다.

 

로마 목욕탕에 한 가지 없는 것이 바로 이 사해의 진흙이야.

 

70년 전에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애용한 유황 진흙.

 

그녀는 알려진 것만큼 미인은 아니었어.

 

머리가 뛰어나고 몸매는 이뻤겠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당대의 두 영웅을 차례로 유혹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었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헤롯 대왕과는 아주 사이가 나빴지.

 

그녀가 카이사르에게 예루살렘 지역을 달라고 졸랐거든.

 

그래도 나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지금 나도 황제께 빌립 왕의 땅을 달라고 가고 있잖아.”

 

오늘따라 말을 많이 하는 헤로디아의 얼굴에 긴장감이 엿보였다.

 

, 그럼 진흙 마사지하러 갈까?”

 

왕비가 분홍색 잠옷을 벗고 큰 흰색 타월로 몸을 감쌌다. 

 

그녀의 벗은 몸은 루브리아가 보기에도 아직 3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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