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낫세 변호사가 가야바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대제사장이 늦은 시간에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루고가 살해당하여 성공 보수는 받을 길이 없었다.
사실 성공은커녕, 의뢰인이 죽었으니 실패 중 가장 큰 실패였다.
문이 열리고 마고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변호사님,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의 손에 은전 한 개를 쥐여주었다.
“별관으로 바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하인 몇 명이 가야바의 집무실이 있는 별채까지 가는 길에 불을 밝히기 위한 횃불을 매달고 있었다.
그들을 감독하는 키가 큰 사람에게 마고가 말했다.
“변호사님께 인사드려야지.”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그녀는 마고의 아내인데 해방 노예로서 주방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웬만한 마당 일도 그녀의 책임이었다.
둥그런 얼굴에 길고 가는 눈이 날카로웠고 어깨는 남편보다 더 넓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둑어둑해서 잘 몰라봤어요.”
가낫세가 친절하게 대꾸했다.
“저 주책 영감이 제가 이렇게 화장도 안 했는데 인사를 시켜서 그래요.”
별관으로 들어갔더니 가야바가 무슨 서류를 보고 있었다.
“대제사장님, 부르셨습니까? 많이 놀라셨지요?”
“그래요. 어서 앉아요.”
그의 눈은 계속 서류를 향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사고로 제가 성공 보수를 받지 못해 오늘 빈손으로 왔습니다.”
가낫세가 미리 꺼림칙한 말을 해 버렸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오늘만 날인가요.”
가야바가 예리한 눈동자를 살짝 옆으로 한 번 돌린 후 계속 말했다.
“바라바 일로 불렀어요.
그놈이 잡히긴 잘 잡혔는데…. 내일 사형 언도문을 발표하기 위한 증인이 필요해요.”
가낫세가 즉시 알아들었다.
바라바가 루고를 죽였다고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다.
“바라바는 그동안의 행적만으로도 사형 언도가 가능하지 않나요?”
“그럴수도 있지만... 로마 백부장이 죽었는데 살인자가 있어야지요.”
“하지만 주위에 본 사람이 꽤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며 가낫세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며칠 내에 사형 집행되면 끝나는 거예요.
사실대로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 복잡해져요.
로마 백부장이 같은 백부장을 죽인 거니까 로마에서 조사가 나올 수도 있고....”
“네, 그렇긴 하지요.”
“같이 잡힌 바라바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놈들도 모두 사형 선고를 해야지.
집행은 빌라도가 안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안 풀어 주면 되니까.”
“네. 그날 밖에서 군중들이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많이 모였는데, 모두 사형 선고를 해서 정신들 좀 차리게 해야 합니다.”
“그래요. 이런 일은 신속하고 무자비한 엄벌로 다스렸다는 기록을 남겨야 해요.
군중들이 내 이름도 언급했다지요?”
“네, 송구합니다만, 일부 몰지각한 놈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나도 지금 대제사장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어떤 때는 영감님께 그만 쉬겠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소이다.
하지만 놈들이 물러나라면 더 그만둘 수 없지요.”
“지극히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가낫세 변호사가 고개를 숙였다.
유타나가 식당으로 내려가려 문을 여는데 맥슨 백부장이 서 있었다.
“탈레스 선생님이 오셔서 계속 조마조마하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깨어나셨나요?”
그의 얼굴이 그사이 말라보였다.
“네. 조금 전 깨어나셨어요.
들어가 보실래요? ”
“아닙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제우스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네요.
아까 제가 잠깐 들어갔었다는 건 말씀하지 마세요.
혹시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으니까요.”
“네, 알겠어요.”
“눈도 곧 완쾌되실 겁니다.
제가 계속 오늘 밤에도 기도할 거예요.”
“네, 고맙습니다.”
그가 방으로 돌아가자 유타나가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맥슨 백부장이에요. 아가씨가 깨어나셨는지 물어봤어요.”
“아, 난 누구와 그렇게 대화를 하나 했어.”
“네, 자기 때문에 아가씨가 놀라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굉장히 걱정했어요.”
“그랬구나. 휴, 놀라긴 놀랐지.
근데 오늘 베다니 사람들이 우리를 종일 기다렸겠네.
내일이라도 가 봐야 할 텐데….”
유타나가 탈레스 선생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하루 쉬시고 모레쯤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깨어나긴 하셨어도 너무 기력이 쇠하여서 잘못하다 또 쓰러질 수 있어요.”
“네... 지금 말을 좀 해서 그런지 약간 어지럽네요.”
“어서 다시 누우세요. 제가 빨리 식당에 가서 수프를 가지고 올게요.”
나가려는 유타나에게 선생이 가오리 물통을 가리켰다.
“복도에 일단 내놓고 식당 종업원께 부탁해서 가지고 내려가라고 합시다.”
“아, 오늘 식당에 특별메뉴가 추가되었네요.”
“아니요. 보관료를 줄 테니 이대로 앞으로 1주일만 보관을 시키세요.
만약의 경우에 또 놈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과 유타나가 씩씩하게 큰 물통을 무릎까지 들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헉’소리와 함께 유타나가 물통을 놓치면서 뒤로 벌렁 넘어졌다.
‘쿵’ 소리가 나며 물이 튀어 올라 유타나의 얼굴을 적셨다.
“어머나, 온몸이 찌릿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제가 살아 있는 건가요?”
흠뻑 젖은 까만 얼굴의 유타나가 선생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그럼요. 내가 손가락을 물에 대지 말라는 얘기를 안 했네요. 미안해요.”
“와, 이 번개 가오리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호호.”
루브리아도 힘없이 따라 웃었다.
가오리가 계속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선생이 마른 수건으로 물통 바깥을 조심스레 잘 닦았다.
유타나도 얼른 수건을 잡은 손으로 물통을 잡고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