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게 탈레스 선생이 돌아왔다.
호텔 종업원 세 명이 어린애 침대만 한 큰 물통을 끙끙거리고 방안으로 들여놨다.
루브리아 아가씨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는 말을 하니 선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물통 뚜껑을 여니 바닷물 냄새가 확 풍기고 그 안에 커다란 물체가 어른거렸다.
연한 고동색의 마름모 몸통에 창같이 긴 꼬리를 가진 가오리 한 마리가 모래 바닥에 붙어 있었다.
크기가 솥뚜껑만 했다.
“아니, 웬 가오리를 가지고 오셨어요?
살아 있는 거지요?”
유타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건을 여러 장 물에 적셔서 길게 끈으로 연결되게 묶어 주세요.”
루브리아의 맥을 짚어본 선생이 얇은 손수건 한 장을 물에 적셔 그녀의 이마 위에 덮었다.
“수건 열 장 정도면 될까요?”
“가오리 통에서 루브리아 아가씨까지 올 수 있으면 돼요.”
“물이 충분치 않은데 통속의 바닷물을 적셔도 될까요?”
“음, 가오리가 놀라지 않게 표면에서 살살 떠요.”
수건을 12장 정도 이으니 길이가 얼추 되었다.
방에 있는 수건은 거의 다 나왔다.
유타나가 은컵으로 바닷물을 뜨려고 하자 선생이 유리컵을 주었다.
처음 뜰 때 가오리가 살짝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녀가 더욱 조심스럽게 바닷물을 떠서 길게 묶은 수건에 적시기 시작했다.
선생이 수건의 한끝에 동전을 달아서 물속의 가오리 몸통 한 뼘 정도 옆으로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다른 한 끝은 루브리아의 이마에 덮은 하얀 손수건 위에 올려놓았다.
밧줄처럼 길게 묶은 수건을 다 적시고 연결이 끝나자 선생이 긴 나무막대기를 들고 물통으로 다가갔다.
“침대 옆으로 가서 아가씨의 얼굴과 손가락을 잘 보고 있어요.”
“네, 알겠어요.”
그녀가 침대 옆으로 가자 선생이 막대기를 물속으로 쑥 집어넣어 가오리의 등을 쿡 찔렀다.
깜짝 놀란 가오리가 꼬리를 크게 위로 치켜들며 몸통을 뒤틀었다.
바닷물이 첨벙 튀며 탈레스의 왼쪽 눈으로 들어갔다.
따끔한 소금기가 느껴졌지만, 질끈 감은 채 오른 눈으로 유타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막대기로 찌르지 않고 살살 꼬리를 건드려 보았다.
가오리가 꼬리를 좌우로 가늘게 흔들기 시작했고 계속 건드리니 그 움직임이 빨라졌다.
유타나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지만, 변화가 없었다.
선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물통을 침대 가까이 밀어 옮기려 했다.
유타나가 얼른 물통의 반대쪽을 잡고 끌었다.
수건의 숫자를 반으로 줄여서 다시 양쪽 끝을 연결했다.
물도 다시 더 흠뻑 뿌렸다.
가오리가 꼬리를 더 빨리 흔들었다.
“아가씨의 눈썹이 움직였어요.”
유타나가 외쳤다.
잠시 후 루브리아의 입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 물 좀….”
“물을 드려도 되나요?”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물을 몇 모금 마신 루브리아가 침대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유타나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루브리아가 물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바닷물 냄새가 나는데 저 통 안에 바로 그 물고기가 있나 봐?”
“네, 아가씨. 선생님이 욥바 항구에서 괴물 가오리를 가지고 오셨어요.”
“괴물 가오리가 아니고 번개 가오리입니다.
바닷가에서 저놈을 만지면 너무 강한 충격으로 죽을 수도 있지요.
환자가 실신해서 하루 이상 깨어나지 못하면 이렇게 치료하라는 방법이 히포크라테스 선생의 책에 나와 있습니다.”
“어머, 세상에 그런 물고기도 다 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라는 어디 갔나요?”
유타나가 안토니아 감옥에 있는 바라바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수요일까지 꼭 와야 하는데 걱정이네.”
“우선 다른 생각 마시고 좀 더 안정을 취하세요.
제가 식당에 내려가서 옥수수 수프를 가지고 오겠어요.”
유타나가 자리에서 성큼 일어났다.
베다니의 마리아가 옥합을 깨어서 예수 선생의 발에 향유를 붓고,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닦을 때 막달라 마리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두 명의 마리아만이 선생의 뜻을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저 비싼 향유를 다 부어 버렸어!’
누군가 불만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글쎄 말이야. 저걸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300데나리온은 될걸.’
‘저 여자가 어째 좀 이상하다 했더니 별 방법을 다 쓰네.’
수군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런 소리를 들은 예수 선생의 마음은 아팠다.
벌써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암시했건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예수 본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고급 백향목 향기가 은은히 집 전체로 퍼질 때 선생이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을 나무라지 말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겁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울음을 참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도 무슨 소리인지 묻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다가올 유월절 잔치와 예루살렘 입성에 들떠 있었다.
유다는 드디어 선생이 자기에게 신호를 보낸 것으로 확신했다.
어제 쓴 편지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선생이 답신을 했고 들을 귀 있는 사람에게 들린 것이다.
예언대로 모든 것이 끝까지 이루어지고 선생을 배신하는 역할만 정해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쓰라렸다.
스가랴 선지자가 기록한 대로 되려면, 오늘 쏟아부은 향유 가격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값으로 선생을 배신해야 한다.
“혹시 지난번 만났던 눈을 고치려는 여인들에게 무슨 소식 못 들었지요?”
요한이 어느새 옆에 와서 유다에게 물었다.
“못 들었어요. 참, 그 사람들 왜 안 오지요?”
“네,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변호사에게 중도금을 줘야 하는데 오늘도 오지 않으면 큰일이네요.”
그러고 보니 선생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사자는 생각도 선생의 뜻을 정확히 몰랐을 때 추진했던 일이다.
이제 다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안 온 것을 보면 눈이 그새 나았거나 어디가 더 아픈지도 모르지요.”
유다의 말에 요한이 다시 물었다.
“내주에는 선생님이 매일 예루살렘에 가시겠지요?”
“네, 그런데 수요일 하루는 여기서 쉬실 거 같아요.
타고 가실 나귀를 준비 중인데 그날은 나귀 빌리는 값을 계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 그럼 그 여인들이 수요일 날 오면 되겠네요.”
요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그렇지요.”
대답하는 유다의 코에는 아직도 향유 냄새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