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에도 모세가 썼다고 볼 수 없는 글들이 또 있지만, 실은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요.
모세라는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모세는 인간이고 인간은 완벽하지 않음으로 그의 글도 완벽할 수 없는 거지요.
또 모세 이후에 다른 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모세의 글에 첨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안 돼요.”
“이 안에서나 아무 문제가 아니지, 나가서 그런 이야기 하면 바로 돌덩이에 맞아 죽어요.”
요남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요리조리 돌을 피하는 시늉을 했다.
“모세 5경도 그렇지만, 다른 선지자의 글들도 어느 한 대목을 달랑 뽑아서 그것만 가지고 앞뒤의 문맥을 생각지 않는 경우도 많지요.
욥기에 나오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도 많이 들어 봤지요?”
이삭이 바라바에게 말했으나 대답은 요남이 했다.
“네, 주위에서 식당을 새로 열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주는 덕담 아닌가요?”
“그렇지. 장래 크게 잘 되라는 뜻이지.
그런데 이 말은 욥의 세 친구 중 한 사람인 빌닷이 욥의 재난을 보고 ‘이것은 순전히 욥의 죄 때문인데 그 죄를 회개해야 만이 지금 어려운 형편이 나중에 잘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글의 한 대목이에요.
그러니까 전체적인 내용은 ‘회개’가 중심인데 ‘사업의 번창’으로 잘못 쓰이고 있지요.”
“네, 그렇군요.”
“요즘은 재미있는 격려의 의미로 가볍게 말하지만, 욥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맥락을 알 수 있어요.”
“욥에 대한 글은 잘 이해가 안 돼요. 땅을 돌아 여기저기 다니던 사탄이 어느 날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에게 끔찍한 재난을 겪게 하는 것인데, 그것을 허락하는 하나님은 욥이 불쌍하지 않았나요?”
요남의 질문에 이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욥기는 옛날이야기 같지만, 누가 쓴지 모르고 생각보다 어려워.”
“욥기는 욥이 쓴 게 아닌가요?”
“응, 아닐 거야.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로 끝나니까…”
“아, 그런 말이 있군요. 모세보다 20년 더 살았네요.
여하튼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몸에는 손대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요남아, 1년 중에 죄수들이 언제 제일 많이 죽는지 아니?”
잠자코 듣고 있던 살몬이 물었다.
“음,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인가요?”
“아니, 매년 유월절 다음 주에 사망자가 많이 생겨….
‘특사 망상’이라는 증상이 있는데 유월절 특사나 가석방에 본인이 포함될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는 것이지.
이런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석방이 안 되는 실망감이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거야.”
“아이고, 사실은 저도 지금 속으로 특사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너는 지네 구이를 많이 먹어서 특사 안 돼도 괜찮을 거야. 하하.
이상하게 매년 유월절 후에 건강하던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골골하는 사람들은 괜찮더라고...
그래서 그들의 공통점이 뭐였는지 간수들에게 알아보랬더니 대부분 특사 석방을 확신하던 사람들이더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요남이 일어서더니 구석에서 손바닥만한 나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굵은 지네를 두 마리 꺼내며 바라바를 바라보았다.
바라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온종일 루브리아의 얼굴만 바라보며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유타나의 눈에 루브리아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는 듯했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깨어나려나 보다 생각하여 ‘아가씨’하고 불러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유타나는 조금 전 움직였던 루브리아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다시 미세하게 움직였다.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거의 이틀째 물도 못 마신 실신 상태라 깨어나도 금방 회복이 될지 걱정이었다.
유타나도 방에서 꼼짝 않고 아침부터 포도 몇 알로 오후까지 버티고 있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탈레스 선생이 빨리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맥슨 백부장이 복도에 서 있었다.
“어제 말씀하신 바라바에 대해 좀 알아보았어요.”
“아, 네….”
“아직 처형자 명단에는 없고 지금 안토니아 탑 지하 감옥에 갇혀 있네요.
거기서 근무하는 제 동료가 얼굴을 보고 왔는데 건강해 보였답니다.”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젊고 늠름한 맥슨의 얼굴은 언제봐도 믿음직했다.
“아무래도 내일까지는 돌아갈 수 없을 듯해서 로무스 대장님께 여기 사정을 전해 드리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어머, 그러셨어요? 대장님이 굉장히 걱정하실 텐데요.”
“네. 자세한 말씀은 안 드리고 눈 치료를 받는 데 며칠 더 걸릴 것 같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아, 잘하셨어요.”
“아가씨는 좀 어떠신가요? 잠깐 얼굴을 좀 봬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유타나가 뒤로 물러나면서 문을 크게 열었다.
살며시 들어온 맥슨이 침대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 선 채로, 창백한 얼굴의 루브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었다.
그의 맑은 눈이 무언가 안타까운 자국을 남기는 듯 보였다.
“조금 전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셨어요.
탈레스 선생님이 오시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
“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곧 오시겠지요.”
맥슨이 돌아서 문을 나서며 다시 말했다.
“제가 창을 배운 이후, 처음으로 창을 배운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위급한 순간에 그러실 수밖에 없었어요.”
“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잘 안 되네요.
로무스 대장님과 로마에 계신 아버님께도 면목이 없고요.”
“아, 맥슨 위원님께서 우리 아가씨를 아시나요?”
“그럼요. 아가씨가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예뻐하셨지요.
여하튼 저는 아가씨의 회복을 제우스신께 간곡히 빌고 있습니다.”
맥슨이 나간 후 유타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그가 한 말을 생각해 봤다.
그의 선량한 눈동자에 비친, 아가씨를 바라보던 안타까움이 떠오르며 맥슨의 마음을 비로소 조금 알 듯싶었다.
사실 맥슨 백부장은 아가씨와 여러모로 상당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