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오전은 감옥도 조용했다.
밖에 서는 보초 숫자도 반이고 사형집행이 없는 날이다.
계속 하품을 하며 잠이 덜 깬 얼굴로 요남이 살몬에게 말했다.
“여기 들어와서 감옥에 갇힌 꿈을 한 번도 안 꿨는데 어젯밤에 꾸었어요.”
“무슨 꿈인데?”
“꿈속의 꿈이었어요.
고향 세겜 마을에 가니까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계신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아직 고향에 계시는구나.
늦기 전에 참 잘 돌아왔다’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하는데 두 분 다 나를 못 알아보세요.”
“흐흐, 그러니까 꿈이지.”
“그런데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거예요.
멀리서도 내가 오는 걸 알아봤다고 하면서요…”
“하, 그때는 좋았겠네.”
“네, 그럼요. 애인에게 물어봤지요.
왜 부모님이 나를 못 알아보시냐고….
그녀가 이게 꿈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깜짝 놀라는 순간 다시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거예요.
근데 그 감옥은 여기가 아니었어요.
세겜의 그리심산 성전 감옥의 독방이었어요.”
“거기 독방도 아무나 못 가는데…”
“그다음이 무서웠어요.
갑자기 문이 열리며 꿈에도 보기 싫은 십자가 처형 팀장 롱기누스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날이 내 처형 날이라고 하면서요.”
“꿈에도 보기 싫은 롱기누스를 드디어 꿈에서 만났네. 흐흐...”
“네, 그때 내 애인이 또 나타나서 롱기누스에게 이게 꿈이라고 말하니 그가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그 순간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깨어보니 꿈이었어요.”
요남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살몬이 말했다.
“그래, 지금 여기도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아직 깨어나질 못하고 있을 뿐이지….”
밖에서 밤새 근무하던 보초병이 교대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식구통이 열리고 물과 검은 빵 8조각이 들어왔다.
“살몬 님, 오늘은 안식일이라 이것밖에 못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천만에, 이것도 자네들 먹는 건데 우리를 주면 어떡하나.”
“아닙니다. 우리는 집에서 많이 먹고 왔습니다.
뭐 따로 필요한 것은 없으신가요?”
“음, 여기 새로 온 분에게 모포 새것 하나 가져다드리게.
낡기도 했고 기분도 그렇고 하니까….”
바라바가 덮은 모포는 며칠 전 처형당한 사람이 덮던 모포였다.
살몬의 말을 듣고 보니까 얼른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다.
바라바는 딱딱하고 쓴 빵을 침으로 적시며 천천히 먹었다.
이때 갑자기 감방문이 철커덕 열리고 한 사람이 불쑥 들어왔다.
그를 보던 요남이 먹던 빵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살몬도 당황하며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니, 롱기누스 백부장님이 여기는 웬일이세요?
오늘은 안식일인데….”
“제 친한 친구가 잘 아는 분이 이 방에 계시다고 해서 인사차 왔습니다.”
그는 바라바를 향해 웃는 낯으로 계속 말했다.
“바라바 님이시지요? 여기서 만나서 반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튼 말씀 많이 들었어요.
모든 일이 잘 풀리시기 바랍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아, 이건 다른 뜻이 아니고, 계시는 동안 혹시 독방으로 가신다면 옮겨드리겠습니다.”
“아, 네... 주위에 누가 저를 잘 아시는지요?”
“로무스 대장님의 부관인 맥슨 백부장 아시지요? 어제저녁에 다녀 갔어요.”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맥슨'이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루브리아가 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요남이 다시 빵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롱기누스가 공손히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어휴, 놀래라. 저 보기 싫은 얼굴이 다시 나타나서 제 꿈이 바로 맞는 줄 알았어요.”
“그래, 나도 네가 꿈 얘기를 한 후라 안식일이긴 하지만 긴장되더라.
간수장 몇 년을 하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지.”
“그럼요. 살몬 형님. 안식일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던 ‘만나’도 하루 쉬었는데…”
요남이 빵을 더 열심히 씹어 삼켰고 살몬이 바라바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부장이 바라바라고 하던데 혹시 열성당의 바라바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바라바를 향했다.
“아, 역시 그러시군요. 보통 분은 아닌 줄 알았지만, 바라바 님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그럼 바라바는 본명인가요?”
“아니요. 호적상 본명은 예수입니다.
바라바는 저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고요.”
“생각보다 젊으시고 무섭게 생기지도 않으셨네요. 하하.”
요남의 웃음이 분위기를 부드럽게했다.
듣고만 있던 이삭이 끼어들었다.
“바라바도 대단하지만, 본명인 예수도 요즘 뜨는 이름이네요.
내가 듣기로는 세례요한이 죽은 후 그의 제자가 반 정도는 그쪽으로 갔다던데…. 나사렛 예수를 만나 본 적이 있나요?”
“아직 없습니다. 이번에 무슨 일로 만날 수도 있었는데 이젠 당분간 어렵겠지요.”
“나도 나가면 한 번 만나 볼 생각입니다.
우리 산헤드린의 젊은 의원 중 니고데모가 그분을 잘 아는데 상당히 높이 평가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요.”
요남이 얼른 다시 끼어들었다.
“저는 나사렛 예수보다 바라바 님께 더 관심이 많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제 꾼 꿈이 좋은 꿈인 것 같아요.
근데 걱정이네요. 이렇게 잡히시면 안 되는데….”
“아닌게 아니라 신분을 알고 보니까 산헤드린 의회의 재심청구는 어렵겠어요.
곧 판결문이 오겠지만 보나 마나 국가 내란 주동자로 몰 거예요.
가야바가 주심인 재판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증인도 필요 없지요?”
살몬이 이삭의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산헤드린 차원은 떠난 것 같네. 빌라도 총독에게 탄원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 오늘쯤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텐데...”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소리가 들리지만, 바라바는 오히려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루브리아가 누군가를 시켜 연락을 해 온 것은 벌써 루브리아의 눈이 완치되고, 로벤에게 목도리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리라.
아마 그녀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최악의 사태는 막아 줄 것이다.
바라바의 손이 빵 그릇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