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을 훔쳐 달아난 오반이 사마리아의 세겜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유리가 카잔에게 물었다.
“세겜이 여기서 반나절이면 가지요?”
“응, 빠른 마차면 그럴 수 있지.”
“오반 덕분에 세겜 구경 좀 해 볼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명랑했다.
“세겜에 가서 어떻게 오반을 찾으려고?”
“미트라교로 들어가야지요.
카잔 님도 거기서 딸을 찾아야 되니까 우리가 다같이 힘을 합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요.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 보자고요.”
누보가 얼른 찬성하며 카잔을 보았다.
“유리 씨가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담대하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는 것보다는 미트라교의 위치와 내부사정을 좀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어.”
“그래, 유리야. 내 생각에도 그러는 게 좋겠다.”
“응, 어머니. 물론 당장 가자는 건 아니야.
원칙을 그렇게 정하자는 거지요.
우리 모두 힘을 모아서 카잔 님 딸도 찾고 오반 놈도 찾고 그러다 보면 그리심 성전의 황금 성배도 찾을지 누가 알아요. 호호.”
“맞아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누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미트라교가 어떤 종교라고 하셨지요?”
레나의 질문이 카잔을 향했다.
“원래는 태양신을 믿는 종교로서 1500년 전에 페르시아에서 생겼는데 중간에 조로아스터교와 섞이면서 변형 발전해 왔지요.
페르시아 왕족들은 유일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믿었는데 당시 지배계층인 귀족들은 미트라교를 더 신봉하면서 태양신보다는 전쟁의 신으로 위상이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유럽으로 전파되고 군인이나 무장세력들에게 널리 교세가 퍼지고 있나 봐요.”
“그렇군요. 저도 조로아스터교는 들어 봤어요.
왜 그 종교가 사마리아에 들어왔을까요?”
“음, 아마 지금 사마리아의 정세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그곳은 옛날 북이스라엘의 대부분을 차지한 큰 땅인데 민중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단히 불안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지요.
유대와는 물론 원수처럼 지내고 로마의 통치도 한발 벗어나 있어요.
이런 공백을 틈타서 방황하는 민심을 미트라교가 파고든 건데….
그들의 최종 목표는 어쩌면 독립 국가를 세우는 건지도 모르지요.”
“아, 정말 그럴 수 있겠네요.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가능해요.”
레나가 감탄한 듯 말했고 누보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에 제가 숨겨 놓은 깃발은 카잔 형님이 아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잘 옮겨 놓았겠지요?”
“응, 그럼. 나발이 잡혔을 때 혹시 몰라서 그렇게 했지.
내 친척인데 믿을만 하고 일 처리를 잘해.”
“아, 근데 사마리아에도 누군가 유명한 축귀사가 있다고 들었어요?”
“응, 귀신 쫓아내는 것을 전문으로 하여 사람들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있어. 사람들이 몇천 명씩 모인다고 하던데….”
“어머, 재미있겠다. 우리 거기도 가봐요. 카잔 삼촌. 호호.”
유리가 카잔에게 삼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빌라도는 그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던 가야바 대제사장을 비롯한 관리들 앞에서 엄숙히 입을 열었다.
“로마는 세상의 모든 신을 포용하고 예루살렘까지 오는 모든 길을 열었습니다.
해적이 들끓던 바다와 도적이 날뛰던 땅들을 해방시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질서와 평화를 구축했습니다.
이런 위대란 업적을 이루신 티베리우스 황제 폐하의 은덕을 찬양하는 바입니다.
이번 유월절에도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이 이러한 뜻을 예루살렘 모든 백성에게 잘 전달해 주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가야바가 먼저 손뼉을 쳤고 힘찬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한때는 헤롯 대왕의 성채였고 궁전이었던 안토니아 탑에 빌라도의 거처가 있었다.
간단한 연설을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가며 빌라도가 가야바를 불렀다.
“대제사장님, 이번에도 작년처럼 질서 유지에 별문제 없겠지요?”
“네, 총독 각하, 철저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백만 명이 넘게 모이는데 군중심리를 늘 잘 살펴보세요.
이런 때일수록 엉뚱한 사람이 영웅이 되려고 나타나기 쉬우니까요.”
“네, 그럼요.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다 신병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살찐 목을 끄덕이며 가야바가 자신 있게 말했다.
“헤롯 왕께서는 빌립 왕 문상을 하러 가셨다지요?”
“네, 총독 각하를 영접 못 하는 실례를 이해해 달라고, 전하께서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당연히 가셔야지요. 이삼일 안에는 오시겠지요?”
“가이사랴 빌립보가 갈릴리에서도 한참 북쪽으로 가야 하니까 더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요. 사마리아는 또 돌아가야 하니까 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네, 그리고 총독 각하. 요즘 어수선한 소문이 있는데 나바테아 왕국에서 군사들을 국경에 집결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혹시 아시고 계시나요?”
가야바의 목소리가 끝에서 조금 흔들렸다.
“나도 그런 첩보를 듣고 있소이다.
실은 안디옥에 계시는 비텔리우스 총독 각하께 몇 주 전에 보고서를 올렸지요.”
“아, 그러시군요. 진짜로 쳐들어올까요?”
“그 나라 왕은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거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감히 못 쳐들어올 겁니다.
로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다행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요?”
“음, 만약 유대 땅에서 큰 내란 사태가 일어나거나 지도층이 분열되면 기회를 노려서 모험을 할 수도 있겠지요.
나바테아 왕국은 아라비아 사람들이라 은밀히 페르시아의 조정을 받을 수도 있어요.”
“네. 여하튼 총독 각하께서 굳건히 지켜 주시는 한 안심하고 있겠습니다.”
가야바는 빌라도의 말을 안나스에게 전하기 위해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