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민족의 안타까운 역사지요.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약 150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바벨론이 남 유대를 무너뜨려서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요.
영원할 것 같던 바벨론도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무너지고, 유대 포로들이 70년 만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을 전적으로 배제했어요.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세겜의 그리심 산에 자기네 성전을 따로 건축하지요.
이것이 지금부터 약 400년 전이에요.”
“당시는 알렉산더 대왕 때 아닌가요?”
누보가 물었다.
“응, 그리심 산 성전은 알렉산더 대왕의 허락을 받고 건축이 시작되었어.
그래서 성전이 두 군데로 나누어지게 된 거지.
이렇게 200여 년을 서로 적대시하며 다른 나라처럼 살다가, 그리스의 힘이 약해지자 유대 사람들이 세겜을 쳐들어가서, 그리심 성전을 거의 다 파괴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럼 그때부터 두 지역이 더욱 험악한 사이가 되었겠네요.”
“그렇지. 사마리아인들도 그곳을 지나는 유대인들을 살해하게 되고, 이에 대한 유대인의 보복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지금까지 150년 넘게 이어왔지.”
“그 말씀을 들으니 지난번에 들었던 어느 목수가 정말 대단했군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던 예수 말이지?”
“네. 그뿐이 아니라 예루살렘만이 거룩한 성전이 아니고 어디서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했으니, 그 여자가 듣고 깜짝 놀랐겠어요.”
“놀랐겠지. 그 세겜의 수가성 여인의 이름이 포티나인데 우리 이모가 잘 아시니까 나중에 한 번 만나보려고 해.”
“그 여자가 무슨 문제가 있는 여자라고 했던가요?”
“응,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아서 다섯 번인가 남편이 바뀌었지.”
“아, 예수라는 분이 그 여자가 남편이 다섯 명이었다는 걸 묘하게 맞추었다지요?”
“응, 그랬나 봐.”
잠자코 듣고 있던 유리가 카잔에게 물었다.
“혹시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 사마리아인에 대한 반감이 좀 덜하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에서는 갈릴리 사람도 거의 이방인 취급을 하고 지역적으로도 사마리아보다 더 북 쪽에 있으니까요.”
“그런 면도 있었겠지. 근데 수가성 마을의 촌장도 대단해요.
예수뿐 아니라 그 제자들까지 며칠씩 마을에 묶게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니까요.”
“어머, 그런 일까지 있었군요.”
“아마 지금쯤 그 동네를 중심으로 예수의 생각과 가르침이 은연중 퍼지고 있을 거야.”
누보가 마지막 오렌지 껍질을 까면서 말했다.
“그 우물물을 담을 모세의 황금 성배도 그리심 산에 있다고 하셨지요?”
“응, 폐허가 된 성전을 개조하여 미트라교 신전이 은밀히 들어섰는데 최근에 성배가 그 신전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어.”
“저는 아무래도 황금 성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에 은전을 찾은 후에 우리 황금 성배도 찾으러 갈까요?”
“일단 은전부터 찾고 생각해 봐요.”
유리가 은근히 핀잔을 주는 말투로 누보를 살짝 흘겨보았다.
누보의 고개가 숙어지고 카잔과 레나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사라는 상아색 목도리가 루브리아 언니의 것과 똑같은 걸 안 순간, 왜 그녀가 수건 대신 목도리로 눈을 덮었는지도 알았다.
사라의 가슴이 쓰려왔다.
“사라 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아가씨 드리세요.”
그녀는 유타나가 건네주는 목도리를 받았다.
손가락으로 바라바 오빠의 따스한 체온이 전달되었다.
비록 나를 생각하는 따스함은 아니지만, 당장 두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아파 왔다.
한 사람은 의식 불명이라 생명이 위태롭고, 또 한 사람은 감옥에 갇혀 5일 안에 깃발을 가져와야 살 수 있다.
사라가 생각을 굳히고 로벤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거지요?”
“네. 오늘은 벌써 늦었고 마차도 준비가 안 되었어요.”
“나도 내일 갈릴리로 같이 갈게요. 유타나 님 마차를 좀 빌려주세요.
그 마차로 가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지금 여기 있어도 루브리아 언니에게는 아무 도움도 못 되지만, 깃발을 가져오는 일은 도울 수 있어요.
나중에 루브리아 언니가 아시더라도 이해하실 거예요.”
“생각해 보니 그게 좋겠네요.
여기는 어차피 탈레스 선생님과 제가 있으니까요….”
유타나가 얼른 동의했다.
“네. 루브리아 언니는 선생님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의식을 회복시키시겠지요.
그러면 유타나 님이 베다니에 모시고 가서 눈 치료를 받도록 하세요.
저는 여하튼 내주 수요일 전에 깃발을 가지고 올게요.”
로벤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그러시면 저도 가는 길이 심심치 않고 좋지요.
이 서신도 좀 보세요. 바라바 님이 저에게 써 주신 편지에요.”
글을 읽으며 사라의 눈이 커졌다.
“어머! 나발이 탈출했군요.”
“네, 그런가 봐요.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사라가 혼잣말을 했다.
“실례지만 눈이 좀 빨가시네요. 괜찮으세요?”
로벤의 말에 탈레스 선생이 만든 눈약을 온종일 넣지 않은 것을 알았다.
“네, 난 괜찮아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로비에서 기다릴게요.
아프신 분이 있어서 올라가 봐야겠어요.”
사라의 말에 로벤이 꾸벅 인사를 하며 일어났다.
로비에는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았고 방에 올라가니 선생이 루브리아의 눈에 눈약을 넣고 있었다.
“어머, 깨어나셨나요?”
“아닙니다. 그냥 눈약만 넣은 거예요.”
사라가 선생에게 내일 일찍 갈릴리에 가서 늦어도 수요일까지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네, 알겠어요. 나도 내일 아침 욥바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환자가 있는 방의 공기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