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리아는 이틀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다.
사라와 유타나가 그녀의 침상 옆에 앉아서 팔다리를 주물렀지만, 효과가 없었다.
신음소리도 없이 그냥 잠만 자는 모습이었다.
탈레스 선생이 사라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항구가 어디지요?”
느닷없이 항구를 묻는 선생의 얼굴이 사라의 재판 때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아마 욥바 항구 아닐까요?”
사라가 유타나에게 확인의 눈길을 보냈다.
“네, 욥바가 제일 가까워요. 왜 갑자기 항구를?”
“만약 아가씨가 내일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내일 욥바를 다녀와야겠어요.
맥슨 백부장의 마차를 타고 빨리 다녀오면 오후에 올 수 있겠지요.
지금 아가씨의 상태는 보기보다 심각해요.
이런 상태로 며칠 계속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어머, 그래요? 겉으로는 편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라의 목소리가 커졌고 탈레스가 다시 물었다.
“욥바 항구에 수산시장이 있겠지요?”
“네. 근데 내일이 안식일이라 모두 문을 닫을 텐데요….”
“아, 그렇지... 그래도 어디 여는 곳이 있겠지요.
꼭 찾아야 할 것이 있는데….”
“거기 그리스 거주민 동네에 가면 여는 곳이 있을 거예요. 무얼 찾으시는데요?”
유타나의 질문에 선생이 루브리아의 얼굴만 걱정스럽게 보았다.
“그럼 내일 베다니에도 못 가시겠네요?”
유타나가 또 물었다.
“그럼요. 우선 생명을 건지고 눈도 고쳐야지요.”
탈레스 선생의 침울한 목소리와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유타나님, 여기 계신가요? 호텔 종업원입니다”
유타나가 문을 여니 카운터의 종업원이 서 있었다.
“혹시 로벤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며칠 전 로비에서 바라바의 안부를 전해 준 젊은이의 이름이었다.
“네. 아는데요.”
“그 사람이 유타나 님을 꼭 만나야 한다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방 안에서 들은 사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 곧 내려간다고 전해 주세요.”
종업원이 금방 안 가고 한 마디 더했다.
“유타나님이 어디 계신 지 한참 찾았어요.”
사라가 나오며 얼른 1데나리온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식당 안 조용한 자리에서 기다리게 하겠습니다.
지금 로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화하시기 어려워요.”
종업원이 돌아간 후 두 사람도 겉옷을 챙겨입고 곧 내려갔다.
그의 말대로 유월절이 1주일도 안 남아서 호텔 로비는 앉을 자리가 전혀 없었다.
식당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벤이 바라바의 말을 급히 전해주었고 사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독수리 깃발을 다시 찾아서 빨리 돌려줘야 한다니…. 일이 참 이상하게 되었네요.
누보가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요.
아, 헤스론 오빠는 피를 많이 흘렸는데 잘 치료 받았나요?”
“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대요. 조금 전 의식을 회복하신 것 같아요.
실례지만 헤스론 님의 동생이세요?”
“아니요. 친동생은 아니에요.”
“아, 네. 저는 이번에 헤스론 님이 싸우시는 것을 보고 너무 감탄하고 존경하게 되었어요.
아, 참. 그리고 이 목도리도 바라바 님이 나오실 때까지 가지고 계시래요.”
로벤이 안 주머니에서 꺼내는 목도리가 사라의 눈에 익었다.
아칸의 부인을 만나고 누보와 카잔은 유리의 집으로 다시 왔다.
“유리 씨 말대로 그렇게 했어요.
오늘 저녁에 가서 알아본다고 했으니까 내일은 무슨 결과가 나오겠지요.”
“잘했어요. 과일 좀 드세요. 우리도 오다가 가게에 들러서 먹을 것 좀 사 왔어요.
앞으로 며칠은 더 여기서 편안히 살아야지요. 아무도 없으니까.”
유리가 오렌지와 무화과를 누보의 앞에 놓았다.
“고마워요. 근데 양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목이 마르네요. 물 좀 주세요.”
레나가 얼른 부엌에 나가 물을 두 잔 떠 와서 카잔에게도 주었다.
“카잔 님 고향은 사마리아라고 들었는데 우리 때문에 자꾸 가는 게 연기되시네요.”
“괜찮아요. 이번 일만 끝내고 가면 돼요.
고향의 우물물이 그새 마르지는 않겠지요.”
“고향이 사마리아의 세겜인가요?”
“아니, 레나 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제가 이래 봬도 갈릴리 최고의 점성술사 레나입니다. 호호.”
카잔은 물론 누보와 유리도 놀란 얼굴로 레나를 바라보았다.
“그 유명한 야곱의 우물이 세겜에 있잖아요.
그래서 안 거지요. 그렇다고 엉터리 점성술사는 아니에요.”
“아, 지난번에 카잔 님이 그 우물물을 모세의 황금 성배에 넣어 마시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하셨지요?”
질문하는 누보의 얼굴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냥 그런 소문이 있다고 했지. 내가 먹어본 건 아니니까. 하하.”
“네, 여하튼 그 황금 성배에 뭔가 있긴 있겠지요.
그리고 원래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은 곳도 세겜 지역에 있는 그리심 산 중턱이었다면서요?”
“그래. 그리심 산이지. 선지자들의 문헌에도 그렇게 나오니까.”
“그럼 왜 예루살렘이 유일하게 거룩한 도시가 되었나요?”
“음, 그 대답을 하려면 역사 이야기를 좀 해 줘야겠네.”
카잔이 입안의 오렌지를 꿀꺽 삼키고 이어 나갔다.
“세겜은 다윗 왕 이전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모여서 여호와를 예배하고 왕위식을 거행한 곳이었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중심지였으니까….
그런데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싸우면서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되지.”
“그랬지요. 르호보암이 남 유대 왕족이던가요?”
유리가 물었다.
“응, 그리고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지.
이것이 지금부터 약 천년 전인데 이때부터 이 두 지역은 서로 반목하고 살육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돼요.
약 200년이 지난 후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패망시키고 그 지역을 사마리아로 명하게 되지.”
“그러니까 사마리아가 예전의 북이스라엘이군요.”
“그래요. 근데 앗수르 사람들이 메데와 페르시아지역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혼혈 정책을 시행한 후, 그 지역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남 유대 사람들은 이방인의 더러운 피가 섞였다며 사마리아인들을 노예보다 더 경멸하기 시작했지요.”
“아, 시작은 같은 땅의 같은 민족이었는데 불행한 일이네요.”
유리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200화까지 주요 등장 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