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가 황급히 칼을 손에서 떨어뜨리니 루고의 얼굴이 만족한 웃음으로 덮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얼굴이 곧바로 놀라움과 고통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사라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주위 사람들도 루고의 왼쪽 가슴에, 뒤에서 찌른 하얀 창끝이 한 뼘 정도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루고의 몸이 천천히 무릎부터 무너져 내렸고, 바로 뒤에 맥슨 백부장이 그림자처럼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루브리아가 정신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재판소 정문 쪽에서 누가 크게 외쳤다.
돌아보니 알렉스 백부장을 선두로 완전 무장한 안토니아 수비대 군인들이 창을 들고 우루루 들어왔고, 그중 10여 명은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뒤이어 천부장 복장을 한 칼로스가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들어왔다.
“누가 바라바인가?”
옆에 있는 헤제키아에게 물었다.
“저기 수염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바라바를 한눈에 알아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라바가 손으로 수염을 떼어 내며 말했다.
“내가 바라바요. 무기를 모두 버릴 테니 여자들과 다친 사람은 즉시 내보내 주시오.”
“알겠소.”
칼로스가 대답하자 바라바가 동료들에게 머리를 끄덕였고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마나헴이 얼른 칼로스에게 다가갔다.
“천부장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가야바 대제사장의 연락을 받았소.”
“아, 네. 저도 지금 막 바라바를 잡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천부장이 대꾸를 안 했다.
“우리 성전 경호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이놈들과 싸우느라 여러 사람이 다쳤습니다.
우선 여기 있는 이 사람부터 병원으로 좀 옮겨주세요.”
마나헴이 목을 다쳐 바닥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우르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칼로스가 고개를 끄떡이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수비대원이 우르소를 들고 나갔다.
잠시 후 바라바와 동료들이 모두 포승줄로 묶였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온 알렉스가 말했다.
“사망자 한 사람, 부상자 네 사람인데 부상자는 모두 법원 경호원들입니다.”
“저 여자 두 명은 누구인가?”
“재판에 온 사람들 같습니다만, 일단 감금하고 조사를 하겠습니다.”
알렉스의 대답에 맥슨이 천부장에게 와서 루브리아에 대한 신분을 밝혔다.
“그래요? 그럼 내가 어제 왕비님의 파티에서 만난 분인데…”
칼로스가 정신을 읽고 사라의 품에 누워 있는 루브리아에게 다가갔다.
“실례지만 얼굴 망사를 잠시만 들어보세요.”
사라가 눈가의 망사를 살짝 올렸다.
“어제 뵌 분이 맞네. 빨리 병원으로 모시도록 해요.”
맥슨과 탈레스 선생이 루브리아를 들것에 싣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뒤를 따르던 사라가 묶여 있는 바라바의 앞을 지나며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바라바가 사라의 얼굴을 외면하며 모르는 척했다.
재판소 밖으로 나오니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가야바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지금 일어난 일들이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도 어지러웠지만 쓰러질 수는 없었다.
아리마대 요셉이 니고데모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자살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후 숨을 집어넣어 창조된 인간의 자발적 행위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살한 사람도 신의 허락으로 이루어진 일이겠지요.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참 싫어요.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지만, 자유의지를 준 것도 신의 뜻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인간은 무조건 죄인이다.’라는 생각은 자유의지의 의미를 생각하면 적합치 않은 것 같습니다.”
“네, 요셉 님 말씀을 들으니 그런 면이 있네요.
하지만 자유의지의 한계와 구분이 애매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편하고 즐거운 일은 자유의지로 꼭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모두 피하는 것도 자유의지에 포함시키면 어떻게 되나요?”
“바로 그런 자유의지가, 신 앞에 서는 인간을 심판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겠지요.
아니면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는 방법이 없어요.
모두 미리 결정된 대로 되었을 뿐이니까요.”
“네, 여하튼 이런 문제들을 앞으로 같이 상의하여, 서로 이해의 광장을 넓히자는 의미에서 로고스 클럽이 만들어진 겁니다.
요셉 님도 꼭 참석하셔서 좋은 말씀 나눠주세요.”
“네, 언제 창립총회가 열릴 건가요?”
“지금 에세네파에서 적절한 분을 찾는 대로 가능한 빨리 모일 생각입니다. 누구 없을까요?”
“한 사람이 생각나긴 하는데….”
요셉이 잠시 머뭇거렸다.
“예수 선생을 따라다니는 요안나라는 여자분이 있어요.”
“아, 그분 저도 알아요. 헤롯 왕궁의 회계관 구사님 부인이지요.”
“잘 아시는군요. 그분이 에세네파예요.”
“아, 그렇군요. 남편이 허락할까요?”
“네, 문제없을 거예요.
요안나 님은 여자지만 남편의 부와 권력보다는 거룩한 진리의 길을 따르기로 했고 구사님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어요.
니고데모 님이 로고스 클럽의 취지를 설명하면 적극 찬동할 거예요.
지금 예수 선생의 모임에도 경제적으로 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선생을 따르는 여성들의 새로운 역할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할이라면 어떤 의미인가요?”
“이 땅의 소외되고 고난받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뒤치다꺼리만 할 게 아니라, 선생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거지요.
그렇다고 그동안 하던 가사 일이나 설거지를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남성들이 미처 못 보고 모르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소원하고 있어요.
“아, 네. 요안나 님을 빨리 만나보겠습니다.”
니고데모는 지난번에 우연히 그녀의 마차에 탄 것이 우연이 아닌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