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재판이 모두 7건인데 아침 10시에 시작합니다.
어제 모였던 경비대원들을 9시까지 모두 재판소 앞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우르소가 아침 일찍 재판소를 다녀와서 마나헴에게 보고했다.
“어느 재판이 그놈 재판인지 이름만 봐서는 모르겠지?”
우르소가 대답을 못했고, 그가 글을 못 읽는 것이 생각났다.
재판 건수와 시작 시간은 숫자니까 자신 있게 알아 온 것이다.
드디어 오늘 곰같이 생긴 놈을 잡고 잘하면 바라바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곰은 우르소와 내가 같이 상대해서 먼저 제압한다.
다른 두 명은 경비대원 5명이 충분히 잡을 것이다.
마나헴이 구체적인 체포 작전을 우르소와 상의하고 있는데 로마 군인이 그를 찾아왔다.
“성전 경비대장서리 마나헴 님이시지요?”
비교적 젊은 로마 백부장이었다.
‘서리’ 라는 말은 생략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누구십니까?”
“저는 칼로스 천부장을 모시고 있는 백부장 알렉스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곧 천부장님께 연락드리려 했어요.”
마나헴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오늘 아침에 성전 경비대원 50명 차출을 요청하는 공문입니다.”
알렉스가 서류 한 장을 마나헴에게 내밀었다.
<경비대원 차출 지시서>
- 이 공문을 보는 즉시 성전 경비대장(서리) 마나헴은 알렉스 백부장에게 경비대원 50명을 차출해 줄 것
차출 기간은 앞으로 3일이고 필요한 경우 1회에 한해 연장 가능
이 기간에 생기는 경비대원의 부상에 따르는 비용은 로마 총독 부속실에서 지원해 줌
다만 알렉스 백부장의 지시를 어기는 대원은 즉결 처벌 가능함
총독 각하를 대신하여, 천부장 칼로스 -
칼로스의 반지 인장이 찍혀 있는 지시공문이었다.
“천부장님께서 어제 다 말씀을 하셨다며 즉각 인솔 지휘를 지시하셨습니다.”
알렉스의 회색 눈동자가 마나헴의 눈동자와 부딪쳤다.
“네. 그럼요. 어제 말씀 들었지요.
그런데 50명이 다 필요하신가요? 우선 30명으로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그건 안 됩니다. 우리가 조사할 장소가 모두 열 군데인데 5명씩 한 조로 오늘 모두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주로 여관을 조사할 건가요?”
“그렇습니다.”
“꼭 오늘 해야 하나요?”
“네. 천부장님 지시사항입니다. 만약 안 된다면 지시 불복종으로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해 드려야지요. 근데 지금은 좀 이른 시간이라 오후부터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안됩니다. 근무 시작이 9시니까 10시에는 안토니오 요새로 보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알렉스가 나간 후 마나헴이 한마디 했다.
“그놈 참 되게 뻣뻣하네.”
“어차피 산헤드린 재판소에는 안 올 거 아닙니까?”
머리를 굴린 우르소의 질문이었다.
“그래도 경비대원이 그 근처에 깔릴 수도 있으니까…우리가 빨리 일을 끝내야 할 텐데…”
마나헴이 지팡이에 넣어 둔 작은 단도를 꺼내 손가락으로 퍼런 날을 만져보았다.
사이프러스 열매
루브리아가 어제 파티에서 먹은 음식을 적으며 탈레스 선생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 먹은 것도 잘 생각이 안 나네요.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재판은 11시니까 아직 시간 있지요?”
“네, 충분합니다. 루고에 대한 불구속 재판 동의서도 준비했습니다.”
“그럼 루고가 풀려나서 재판을 계속 받게 되는 건가요?”
사라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사라 씨가 구속되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요.
눈이 많이 따끔거리나요?”
“네. 조금 그런데요.”
사라가 눈을 힘들게 떠 보이자, 그녀의 눈이 이제 루브리아보다 더 빨갰다.
“사람에 따라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어요.
며칠 간은 두 분 다 더운 수건은 눈에 대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라가 대답하자 유타나가 끼어들었다.
“맥슨 백부장이 어제 다시 저에게 확인했어요.
오늘 오후 베다니에 다녀와서 짐을 꾸리고 내일은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요.”
“응, 그래야지.”
루브리아가 가볍게 대답하며 어제 먹은 음식 목록을 선생에게 보여주었다.
<백포도주, 랍스터, 토마토 수프, 흰살 생선(이름 모름), 양상추 샐러드, 무교병, 붉은 포도주, 양 정강이찜, 찐 달걀, 파세리, 디저트>
“랍스터가 상한 냄새는 안 났지요?”
“그럼요. 모두 싱싱하고 맛있었어요.
술을 좀 많이 마시긴 했지만, 그전에도 가끔 그 정도 마신 적은 있어요.”
“식사 도중 무슨 기분 나쁘거나 걱정되는 일은 혹시 없었나요?”
“네…. 신경 쓰이는 일이 있긴 있었어요.”
“그래서 술이 급체했나 보네요.
이 중에 사라 님이 어제 먹은 음식이 있나요?”
선생이 사라에게 목록을 보여 주었다.
“저는 어제 술도 전혀 안 마셨고 이 중에는 무교병밖에 먹은 게 없는데요.”
“무교병이 그럴 리는 없고…. 파티에서 디저트는 뭘 드셨나요?”
루브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음, 디저트는 사이프러스 열매와 로마에서 수입한 알사탕이었어요.”
“혹시 바짝 말린 사이프러스 열매였나요?”
루브리아가 고개를 끄떡이자 사라가 외쳤다.
“아, 저도 어제 선생님과 식당에서 만나서 그거 먹었어요.”
“그게 원인 같네요.
히포크라테스 선생의 책에 보면 ‘사이프러스 열매 말린 것은 민들레 꽃가루처럼 눈에 들어가면 눈을 충혈되게 한다’라고 쓰여 있어요.”
“아, 그렇군요. 그걸 손으로 집어 먹은 다음 손이 눈에 닿은 거네요.
어머, 무서워라. 어제 옥수수 수프 가지고 올라오면서 몇 개 가지고 올까 했었는데….”
“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선생이 루브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눈이 이래서 오늘 베다니에 가서 예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람들과 악수만 안 하면 될 겁니다. 오후에는 좀 나아질 거예요.”
루브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청동거울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