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지금 들어가시지요.”
요한이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사라와 유타나도 따라 일어났다.
“루브리아 님만 가시는 게 좋겠어요.
다른 분들 말씀은 안 드렸어요.”
“나는 의사로서 같이 들어가 보면 좋겠는데....”
탈레스 선생의 말이었다.
바디메오가 얼른 주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걱정 마세요.
아까 제가 드린 말씀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루브리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요한을 따라 혼자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은 선생님이 요즘 사람을 잘 안 만나시고 기도만 하세요.
아마 오래는 안 만나실 거예요.”
“아, 네. 알겠어요.”
밖에서 갑자기 들어와서 그런지 실내가 어두웠다.
조용히 요한을 따라 걸어가니 복도 끝에서 막다른 방에 이르렀다.
“선생님, 환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요한이 방문을 열어 주었고 루브리아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옷을 걸친 약간 검은 얼굴의 남자가 방 맞은편에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에 루브리아의 눈이 부셨다.
맑고 그윽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선생은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루브리아와 요한이 선생을 마주하고 앉았다.
예수 선생은 조금 피곤해 보였고, 생각보다 평범한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윗 왕의 자손이시지요.
제가 눈이 나빠지고 있는데 저를 불쌍히 여겨서 고쳐 주세요.”
루브리아가 아까 들은 대로 선생에게 천천히 말했다.
선생의 크고 투명한 눈이 그녀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우리가 모두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지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놀라웠다.
그 말을 듣고 예수 선생의 눈을 보니 맑은 눈물이 살며시 어리는 듯 보였다.
‘이분이 내 눈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 그가 나와 같은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고 느꼈다.
진심으로 나를 가엾게 여기고 있구나 하는 뜨거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나도 예수 선생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쪽이 안 좋은가요?”
“둘 다 나빠지고 있는데 왼쪽이 더 심합니다.”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브리아에게 오더니 오른 손바닥을 그녀의 눈에 지그시 대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선생이 손을 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이나요?”
“네, 보입니다.”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이 사람이 몹시 불쌍해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속으로 선생의 상처가 치유되기 빌었다.
예수 선생이 자리로 돌아가 앉은 후 입을 열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내 아버지를 본 사람입니다.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입니다.”
잠시 포근한 침묵이 흘렀다.
“제가 선생님을 또 만나게 되나요?”
선생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이 이번에는 한없이 거룩해 보였다.
루브리아는 한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슬퍼 보이며, 동시에 거룩할 수가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이때 옆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실까요?”
루브리아가 일어나 선생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그의 방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 마당으로 나오니 밝은 햇살이 그녀의 눈을 반갑게 맞이했다.
“눈이 다 나으셨나요?”
옆에서 요한이 물었고 마당 저쪽 식탁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글쎄요. 햇빛이 강해서 그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식탁에 와서 앉으니 모든 사람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다가온 탈레스 선생이 보이는 게 어떠냐고 다시 물었고 루브리아가 같은 대답을 했다.
선생이 그녀의 왼쪽 눈에 돋보기를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별 변동이 없는 듯하네요.
바다 색깔도 그대로 있고….”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바디메오가 요한에게 물었다.
“제가 아까 말한 대로 하셨나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살로메가 넌지시 말했다.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을 거예요.
예전에 나사렛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그때는 못 고친 사람들이 더 많았지요.”
야고보가 반박했다.
“빨간 눈 귀신을 먼저 내보내야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네요.”
바디메오의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예수 선생님이 눈에 손을 대실 때 마음이 평안하고 낫는 느낌이 들었어요.
좀 쉬면 곧 나을 것 같기도 해요.”
루브리아가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요한이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네, 선생님이 어쩌면 저희를 곧 떠나실지도 몰라요.”
“어머, 어디로 가시나요?”
요한 대신 살로메가 얼른 대답했다.
“아직 확실치 않아요.
유월절이 끝나면 일단 갈릴리로 돌아가시겠지요.”
루브리아의 눈이 당장 낫지 않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언니, 이제 들어가서 좀 쉬셔야지요.
그래야 눈에도 좋을 거예요.”
사라가 걱정스레 말했다.
“응, 그럴까?”
루브리아가 일어나며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살로메가 같이 일어나는 사라 옆으로 잽싸게 와서 귀에 대고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비용 건은 언제….”
“아, 그러지 않아도 마차를 타고 오다가 제가 깜박 잊고 안 가져온 것을 알았는데, 돌아가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오늘 못 가져왔어요.
내일 오전에 다시 올게요.”
“네, 며칠 내에 틀림없이 눈이 나을 거예요.
그럼 내일 꼭 오세요.”
루브리아가 밖에 있는 마차를 향해 걸어가며 눈을 들어 태양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노란 태양이 하얗게 보였다.
시야는 여전히 둘레가 검게 가려 있었다.
눈이 즉시 낫지 않아 실망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예수 선생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루브리아 일행이 마차를 타고 떠나자 바디메오의 목소리가 혼잣말처럼 들렸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늦은 오후 베다니의 마당에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