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가 카잔의 이모가 가져온 달걀까지 모두 맛있게 먹은 후 말했다.
“포티나 님, 야곱의 우물물을 모세의 황금 성배에 넣어 마시면 모든 병이 낫고 영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생이라면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나요?”
“네, 에녹이나 엘리사처럼요.
혹시 그 사람들도 그 물을 마신 거 아닌가요?”
“글쎄요, 엘리사 선지자는 세겜에서 활동하셨지요.
하지만 그 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미트라교에서 황금 성배를 가지고 있다니 야곱의 우물물만 한 통 떠 놓았다가 얼른 부어서 마셔보면 좋겠는데....”
누보가 헝겊으로 감싼 손가락을 보며 말했다.
“모세의 황금 성배에 야곱의 우물물을 넣어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영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모든 사람의 눈이 포티나의 입술로 향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내가 남이 되면 돼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남이 다 내가 되면, 남이 모두 죽을 때까지 내가 사는 거니까요.”
“어떻게 남이 다 내가 되나요?”
“우리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 돼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카잔이 입을 열었다.
“예수 선생이 하신 말씀이군요!”
“네, 아시네요.”
“그럼요. 그런 말씀을 할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요.”
“네, 그래요. 그분이 주시는 말씀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우물물이지요.”
누보가 유리를 쳐다본 후 말했다.
“그래도 황금 성배를 한 번 보고 싶어요.”
“아마 곧 볼 수 있을 거예요.
시몬 교주가 사마리아 미트라교 출범 15주년에 그리심 성전에서 황금 성배를 모두에게 공개한다고 해요.”
말없이 듣고 있던 여로함의 말이었다.
“아, 그래요? 그게 언제인가요?”
“아마 내달 중순일 거예요. 확실한 건 잘 모르겠어요.”
“와, 얼마 안 남았네요. 그 전에 야곱의 우물물을 좀 떠 놔야겠네.”
신이 난 누보에게 유리가 말했다.
“우선 오반부터 잡고 황금 성배는 생각하도록 해요.”
“아, 그래야지요.”
말없이 달걀을 다 먹은 이모가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카잔은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촌장님도 만나야지.
모레 신입 교인 교육 전까지 여기 다시 오면 되겠지.
다른 분들도 모시고 싶은데 집이 너무 작아서 죄송해요.”
그녀가 카잔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네, 그렇게 하세요, 카잔 삼촌.
그동안 저희 때문에 너무 힘드셨는데 하루라도 편히 쉬다 오세요.
모레 아침에 여기서 만나기로 해요.”
유리가 엉거주춤 일어나는 카잔에게 이모의 말을 따르도록 권했다.
“아, 그럼 그렇게 할까?
무슨 일 있으면 여로함이 이모 집을 아니까 연락해요.”
“네, 카잔 형님, 그럼 잘 쉬고 오세요.
다음에 또 봬요, 포티나 님”
누보가 인사를 했고 그들이 일어난 탁자에 먹지 않은 달걀이 한 개 남아 있었다.
“제사장들은 다 모였지?”
안나스 제사장이 아들 요나단에게 물었다.
“네, 거의 다 왔습니다.”
유다의 사제단은 24조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원로급만 모여도 100명은 족히 되었다.
안나스는 가야바를 대신 하여 일 년에 두세 차례 그들을 모아 놓고 훈시했다.
제사장의 임무를 망각하고 제사보다 희생제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세 율법에 어긋난 방법으로 의식을 치르는 사람도 많았다.
산헤드린 대회의실로 안나스가 입장하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했다.
단상에 올라가 근엄하게 주위를 돌아본 후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유월절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특히 역사상 가장 많은 순례객이 모였고, 그들의 희생제물을 흠향하실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수고를 기다리십니다.
그동안 간혹 온전하고 흠이 없는 제물을 드리지 못하고 집에서 가져온 흠 있는 양이나 비둘기를 바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번 유월절은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성전 안 이방인의 뜰에서, 등록된 상인들에게 제물을 사도록 하면 안전하겠습니다.”
안나스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가 그토록 원해 왔던 대제사장 예복 ‘에봇’을 로마에서 찾아올 것입니다.
이번에 헤로디아 왕비께서 순전히 그 일로 로마를 방문하십니다.”
제사장들이 큰 박수로 화답했다.
“이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제사장이 앞줄에 앉아 있다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안나스 제사장 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 평생소원이 곧 이루어지겠습니다.
우리 대제사장 의복인 에봇을 찾아오는 것은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 못지 않은 쾌거입니다.
안나스 제사장 님께 하나님의 가호가 영원하시기를 빕니다.”
제사장들의 큰 박수가 다시 한 번 길게 이어졌다.
“고맙습니다. 제사장 님도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일부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리는 방법과 순서를 잘 몰라 실수하곤 하는데 이 자리를 빌어 요나단 제사장이 나와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요나단이 앞으로 나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요나단입니다. 여기 모이신 제사장 님들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께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번제를 드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를 올리는 순서는 제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번제를 드리는 자가 할 일은 가져온 제물에 안수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에 뿌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를 드리는 자가 다시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후 머리를 베고 기름을 발라냅니다.
이후 제사장은 제단과 불 위에 나무를 잘라 늘어 놓은 후 고기를 올려놓습니다.
그 사이 번제의 주인이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잘 씻어 오면 제사장께서 그 전부를 불로 태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번제를 드리는 자와 제사장의 역할 분담이 매우 중요합니다.
간혹 제물을 제사장이 죽이거나 정강이를 물로 씻지 않은 채 태우곤 하는데, 그렇게 되는 일이 없도록 잘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나단이 조금 더 설명하고 모임을 일찍 끝냈다.
모두 한창 바쁜 때였다.
요나단이 회의실을 나오며 아버지께 물었다.
“지난번 말씀하신 나사렛 예수는 언제 잡을 건가요?”
“응, 곧 잡게 될 거야.
오늘은 예루살렘에 오지도 않는다더군.”
지나가는 말처럼 안나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