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교식을 마치고 샤론여관 식당으로 돌아온 세 사람의 넷째 손가락은 모두 하얀 헝겊이 감겨 있었다.
두스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여기 빨리 나오는 음식이 뭐 있나요?”
“옥수수 수프와 밀전병은 금방 나옵니다.”
“우선 그것부터 주세요.
아, 삶은 달걀도 금방 안 되나요?”
“닭이 모이를 안 주었더니 알을 안 낳아서 며칠 전 우리가 다 잡아먹었어요.
시장에 가서 금방 사 올게요.”
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레 이달의 신입 교인 교육을 한다는데 오반도 오지 않을까요?”
“온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지요.
이번에 우리도 변장을 해야겠어요.”
유리가 카잔을 보며 말했다.
“음, 그게 좋겠네.
두 사람이 확인을 해 주면 여로함과 내가 기회를 봐서 잡아야지.
놈이 우리 얼굴은 전혀 모르니까.”
“네,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해요.
지난번 마나헴의 탁자 밑에서 가지고 온 돈도 벌써 반 이상 썼어요.”
유리가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야지요. 근데 아까 이세벨이 황금 성배에 담겼던 물이라고 하면서, 물 한 컵을 피를 모은 단지에 부었는데 그게 사실일까요?”
누보가 카잔에게 물었다.
“글쎄, 모세의 황금 성배를 본 적이 없어서… 보여줘도 알 수가 없겠지만.”
“지금 손가락 안 아프지요? 카잔 아저씨.”
여로함이 물었다.
“응, 전혀 안 아픈데, 왜?”
“그게 성수를 섞어 마셔서 그런 거래요.”
누보가 손가락을 살짝 만져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좀 아픈데…. 그리고 피를 흘려서 그런지 배도 고프고…”
그 말을 들은 듯 두스가 주방에서 나와 옥수수 수프와 밀전병 빵을 식탁 위에 놓았다.
수프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누보가 물었다.
“아까 이세벨 부교주가 한 말 중에 모두 차별 없이 같은 조상이고 같은 자손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어요. 여로함님은 아시나요?”
유리도 궁금해했다.
“네, 미트라교 내에서는 피를 섞은 후 교단 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혼교를 합니다.
즉 한 여신도가 여러 남자 신도와 살을 섞으니까 거기서 나온 자식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모르지요.
또 남자 신도들도 여러 어린아이들이 자기 아이일 수 있으니까 모두 사랑으로 대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많은 사람이 부모와 자식 같은 연대감이 생겨서 지상 낙원을 이룩하자는 거지요.
실지 이세벨이 나은 아이 3명은 5명의 아버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는 셋이고 아버지는 5명이네요. 어머니는 한 명이고….”
“네, 어떤 남자 신도는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어린아이가 10명도 넘게 있어요.”
“어머니는 한 사람에, 여러 아버지와 여러 아이들이 겹쳐서 한 가정을 이루네요.
일종의 모계사회군요.
과연 그런 제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
유리가 밀전병을 한 입 먹으며 카잔에게 물었다.
“음, ‘저 남자가 내 아버지일 수도 있고 저 아이가 내 아이일지도 모른다’ 라는 건데… 경험을 안 해 봐서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지만, 좀 복잡할 것 같아.
나는 어려서 확실한 아버지에게도 별로 효도를 안 했는데…. 긴가민가한 사람에게 부정을 느낄 수 있을까?”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요.
나는 그런 짓은 안 할 것 같아요.”
누보의 말이 끝나자 두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달걀 나왔습니다.”
두스가 달걀을 식탁에 놓자마자 모두 모락모락 김이 나는 껍질을 까고 보니 찍어 먹을 소금이 없었다.
“소금은요?”
“소금은 따로 계산하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빨리 가지고 오세요.”
누보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하는데 식당 입구에 여자 손님 두 명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두스가 소금을 가지러 들어가던 발걸음을 돌려 손님을 맞았다.
“아, 저기 있네.”
그중 나이 든 여인이 카잔을 보고 말하며 다가왔다.
“카잔아, 고향에 왔으면 이모 집부터 와야지.
네가 여기에 있다고 여로함에게 들었다.”
“아, 이모, 죄송해요.
내일쯤 갈려고 했어요. 여기 앉으세요.”
“수염을 기르니 더 멋있구나.”
카잔이 웃으며 누보와 유리에게 이모를 소개했다.
“저 총각은 나 때문에 달걀을 계속 손에 들고 있네.
어서 먹어요.
참, 우리가 가져온 달걀도 꺼내서 같이 먹어야지.”
이모가 바구니에서 달걀과 소금을 꺼내어 식탁 위에 놓았다.
누보가 냉큼 소금을 찍어 먹으며 소금을 막 가져온 두스에게 말했다.
“소금 취소요.”
“아, 여기서 이렇게 가져온 음식 드시면 안 되는데…”
두스가 난처한 듯 말했다.
“자, 총각도 달걀 한 개 먹어요.”
이모가 얼른 달걀 한 개를 두스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럼 하나만 더 주세요. 제 동생도 나중에 주려고요.”
두스에게 달걀 한 개를 더 주며 이모가 카잔을 바라보았다.
“카잔아, 이 분은 포티나 님이시다.”
이모가 옆에 앉은 중년의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세상 풍파를 많이 겪은 얼굴이지만, 젊은 시절의 미모가 남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포티나입니다. 사마리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가 주위를 돌아보며 정중히 인사했다.
“아,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 선생을 만나신 분이지요?”
카잔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 저도 들은 기억이 나요. 그 남편이….”
남편이 다섯 명이었다는 얘기를 하려다 누보가 급히 멈추었다.
언뜻 생각하니 미트라교와 비슷한 듯도 했다.
“네, 그러지 않아도 여기 오면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카잔의 말에 포티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네, 반갑습니다. 세 분 모두 오늘 미트라교에 가입하셨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누보가 놀랬다.
역시 뭔가 대단한 여인같이 보였다.
“모두 손가락에 붕대가 감겨 있네요. 호호.”
카잔이 간단히 미트라교에 가입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포티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