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루브리아가 와 있다고 시녀장이 알렸다.
“왕비님, 여행 잘 다녀오셨지요?”
며칠 안 보는 사이에 루브리아의 얼굴이 많이 여위었다.
“그럼 난 잘 다녀왔지. 근데 루브리아는 그동안 어디 아팠었나?”
루브리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음, 그러니까 로마 백부장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바라바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단 말이지?
여하튼 가족도 아닌 여자를 구하려고 감히 가야바의 재판정에서 싸우다니 바라바답네. 호호.
여하튼 깃발을 가져와서 천만다행이야.”
“네, 빌라도 총독께서 특사를 해 주실 거예요.”
“그래? 과연 그럴까?”
헤로디아의 말에 루브리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곧 로마로 떠나는데 루브리아도 같이 가면 좋겠어.”
“아, 저도 내주 수요일 날 아버지가 로마로 출발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음, 그렇구나. 실은 나는 카프리섬에 먼저 갈 거야.”
왕비가 향긋한 민들레 꽃잎 차를 한 모금 따라 마신 후 루브리아의 잔에도 가득 부어 주었다.
“루브리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해.
이 일은 루브리아는 물론 헤롯 왕실의 운명과도 관계되는 일이야.”
루브리아를 바라보는 왕비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내가 카프리섬을 가는 이유는 티베리우스 황제 폐하를 만나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상의할 것이 있어서야.
우선 빌라도 총독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고 해.
벌써 이 땅에 5년이나 있었는데 성정이 포악하고 우리와 잘 협조가 안 돼.
본인도 기회만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거야.”
머릿속은 다시 바라바의 걱정으로 가득한 루브리아의 눈이 계속 왕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어.”
왕비가 숨을 한 번 고른 후 계속 말했다.
“루브리아가 잘 아는 칼리굴라가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그 부인이 애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어....
배 속의 아이도 함께….”
“어머, 그러셨어요? 전혀 몰랐어요. 너무 안되셨네요.”
“지금 황제는 후임을 칼리굴라로 거의 결정하신 듯해.
만약 그렇다면 그와 결혼하는 여자는 황후가 되고 그 자손이 다음 황제가 되겠지.
그 선택권도 티베리우스 황제가 쥐고 있어.
나하고 이번에 같이 가서 황제께 인사를 드리면서 루브리아를 다음 황후로 추천하려고 해.”
“저를요?”
루브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응, 물론 루브리아는 시저나 아우구스투스의 피가 섞여 있지는 않지만, 이번 세야누스 사태에서 보듯이 황실을 기망하는 무관들의 야욕을 억제하려면 로무스 장군처럼 로마시 근위대장도 좋은 대안이 될 거야.”
앞에 놓여 있는 민들레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루브리아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는 루브리아가 칼리굴라를 나에게 소개해 주는 거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으니까 가능하겠지?”
“아, 네. 로마에 오면 꼭 찾아오라고는 하셨어요.”
“물론 그냥 인사만 하려고 만나는 건 아니야.
백 달란트의 금괴를 준비해 놨어.”
“아, 네….”
루브리아는 갑자기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서 당장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내가 지금 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지?”
헤로디아가 얼굴을 가까이 대며 루브리아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네, 그럼요. 그런데…”
“그런데 뭐?”
왕비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사실은 제가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얼른 없었던 일로 하는 게 그 사람을 위해서도 좋을 거야.”
헤로디아의 날카로운 눈매가 살짝 올라갔다.
로벤이 다녀간 후 감방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바라바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느꼈다.
사라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며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녀를 움직인 것도 역시 하나님이시리라.
“이제 특사는 언제 하게 되나요?”
요남이 싱글거리며 살몬에게 물었다.
“빠르면 내일, 아니면 모레 금요일에 할 거야.
유월절 특사에 포함해서 빨리 되는 거지.
타이밍이 아주 좋아요.”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바라바가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너무 잘 되셨어요.
저도 나가게 되면 곧 바라바 님을 찾아갈게요.
꼭 좀 열성당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요남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음, 왜 그렇게 열성당에 들어오고 싶어 하나?”
얼른 대답을 안 하던 요남이 잠시 후 입을 떼었다.
“복수하기 위해서예요.”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 줘야 하고요.
제 고향이 사마리아인 건 아시지요?”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꿈에 나온 애인이 실은 강제 수용소에 잡혀 있어요.
저도 같이 잡혔었는데 저만 탈주에 성공했지요.”
“아, 그럼 전에 있었다는 곳이 감옥이 아니고 강제 수용소였구먼.”
살몬의 말이었다.
“네, 그래요. 제 고향은 여러 해 흉년이 들어 너무 먹고 살기가 어려웠어요.
할 수 없이 그리심 산에 들어가 주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사람들의 마차를 습격하여 생활을 해나갔어요.”
“그러니까 산에서 강도질을 한 거구먼.”
살몬이 또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던졌다.
“네, 그렇지만 사람의 목숨을 해친 적은 없어요.
그래서 후회도 많이 했지만요.”
요남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계속 이어 나갔다.
“어느 날 로마 백부장이 탄 마차를 털어서 꽤 수입이 짭짤했어요.
동료들은 그 백부장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제가 반대해서 풀어 주었지요.
그놈이 한 달쯤 후 토벌대 300명을 이끌고 나타나서 우리 거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여러 사람을 죽이고 우리를 강제 수용소로 끌고 갔어요.
어머니는 그 안에서 3달 만에 고된 노동을 못 이겨 돌아가셨어요.
너무 배고프고 힘들고 일이 밀리면 항상 채찍으로 맞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어요.
지네 잡아먹는 것도 거기서 배웠어요.”
“그 강제 수용소가 카이사레아 근처 계곡에 있는 카멜 수용소인가?”
살몬이 물었다.
“네, 맞아요. 아시네요.”
“유대 땅에 노예 수용소가 세 군데 있는데 가장 악명 높은 곳이지.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 봤어. 흠…. 근데 그 얘기를 이제야 하는구먼….”
요남의 고개가 숙여지고 손으로 눈물을 닦는 듯 얼굴을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