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님이 돌아오셨어요. 내일 오전에 들어오시라고 하셨어요.”
유타나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침대에 누워 있던 루브리아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앉았다.
“응, 내일 아침 일찍 들어갈 준비해.
내일이 수요일인데 사라는 언제 오려나….”
“아 참, 내일 베다니에 가시기로 했잖아요.”
“베다니는 오후에 가야지.
예수 선생은 온종일 거기 계실 거야.”
노크 소리가 들리고 탈레스 선생이 취침 전 루브리아의 눈 검사를 하러 들어왔다.
시력에 별 변동은 없는 듯하지만, 아직 빨간눈 증상이 남아 있다.
루브리아가 내일 계획을 알려주며 선생에게 말했다.
“예수 선생을 만나서 병이 나으려면 그들의 신 여호와를 믿어야 한다는데 지금부터 믿어도 될까요?”
탈레스 선생이 대답을 망설이자 유타나가 옆에서 말했다.
“그럼요. 아마 내일 선생을 만나는 순간만 믿으셔도 될 거예요.”
“음, 글쎄….제가 그동안 읽어본 유대 민족의 역사서를 보면 마음속으로 잘 믿어지지 않던데요.”
루브리아가 탈레스 선생을 바라보았다.
“저는 믿음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종교적 믿음도 부모 자식 간의 믿음과 같다고 생각해요.
성전이나 회당에서는 자꾸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안 믿으시면 아무 의미가 없지요.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믿어야 해결돼요.
부모가 나를 믿어야 내가 독립적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듯이…”
“선생님은 무신론자라고 하시면서 종교적 믿음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셨나 봐요.”
“무신론자가 어떤 면에서는 더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유타나가 갑자기 생각난 듯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 올라오면서 맥슨 백부장을 만났어요.
로무스 대장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면서, 다음주 수요일에 로마로 떠나야 하니까 아무리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돌아오라고 하셨대요.”
“아, 그렇구나…. 이제 유대 땅에 있을 시간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일찍 쉬세요.”
탈레스 선생이 나가려고 방문을 막 여는데 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지금 막 도착했어요.”
“사라 왔구나. 깃발은?”
사라는 깃발 대신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가지고 왔어요.
같이 간 대원이 내일 아침에 칼로스 천부장에게 전달해 줄 거예요.”
“정말 잘됐네. 사라가 바라바 님의 목숨을 살렸어.”
루브리아가 침대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사라를 안아주며 계속 말했다.
“나도 이제 살 것 같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일이 무서웠는데…”
“언니 눈은 다 나았지요?”
사라가 루브리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타나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아, 그 번개 가오리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이제 깃발도 가져 왔으니까 내일 베다니에 가셔서 눈만 치료하면 되겠어요.”
“응, 그래. 급히 오느라 저녁도 못 했지?”
“이거 같이 드세요. 사마리아 땅꿀로 만든 무화과 디저트에요.
옛날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눈이 안 좋을 때 이걸 먹고 눈이 밝아졌대요.”
사라가 바구니를 열어 디저트를 꺼냈다.
“아, 이런 것까지 어떻게 신경을 썼어.
많이 먹어야겠다.”
모두 방안의 작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순하고 향기로운 꿀 냄새가 퍼졌고 루브리아의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피었다.
“근데 이거 많이 드시면 내일 치료 받고 나아도 왜 나았는지 모를 수 있겠네요.”
유타나가 접시를 가져와서 디저트를 탈레스 선생에게 주며 말했다.
“그래도 낫기만 하면 됩니다.
이건 귀한 거니까 루브리아 님 많이 드세요.
나는 저녁을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조금만 드셔 보세요.
선생님 눈도 제 눈 들여다보시느라고 힘드셨잖아요.
제가 지금 한 입 먹어보니까 벌써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에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유타나가 루브리아에게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일이 잘 될 테니 모레쯤 지난번 식당에 맡겨 놓은 전기가오리찜을 해 먹으면 좋겠어요.”
“유타나가 그동안 그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근데 나를 도와준 가오리를 잡먹기보단 욥바에 가서 바다에 넣어주는 게 어떨까?
어차피 며칠 후에는 욥바를 거쳐 돌아가야 하니까.”
“아, 언제 가실 건가요?”
사라가 물었다.
“아버지가 수요일에 로마로 출발하시니까 우리는 늦어도 여기서 일요일에 떠나서 월요일에는 도착해야 해.
사라도 같이 로마로 갈 거지?”
사라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저는 아무래도 정리할 일도 있고 이번에는 같이 못 갈 것 같아요.”
“아, 그래. 여하튼 언제든지 올 수 있으면 와.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선생님, 이번 돌아가는 길에 팔미라에 들려서 얼마 전에 지어진 신전을 보고 가려고 하는데 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루브리아가 탈레스를 보며 말했다.
다드몰 근처가 팔미라
“다메섹 북쪽에 있는 팔미라 바알 신전 말씀이지요?
몇 년 전에 한 번 가 봤습니다.”
“팔미라는 예전부터 오아시스가 많아서 사막의 진주로 불린다고 들었어요.
신전도 구경할 만 하지요?”
“네, 그럼요. 페니키아인들의 건축 양식을 공부하기 좋은 신전이지요.
그리스 양식과 페르시아 문화를 혼합한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중간에는 매끈한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지만 바깥 벽은 화려한 페르시아 돌 장식으로 되어있어요.”
“네. 바알신은 비를 내려 땅을 비옥하게 하는 신이지요?
예전부터 북이스라엘서도 바알신을 많이 섬겼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지은 지 10여 년밖에 안 되었으니까 페니키아 쪽에는 아직도 비의 신으로서 상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을 겁니다.”
사라가 디저트를 맛있게 먹으며 선생에게 물었다.
“제가 오면서 사마리아를 거쳐 왔는데 거기는 아직도 바알신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고 해요.
700여 년 전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사제를 450명이나 죽였다는데 아직도 다메섹 지역에는 신전을 새로 짓고 있군요.”
“앞으로 유대 민족이 그쪽을 점령하면 또 무너뜨릴 수 있겠지요.
*몇백 년 후가 될지는 몰라도….어쩌면 바알신을 안 믿는 다른 민족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선생의 목소리가 예언자처럼 들렸다.
사라가 가지고 온 디저트가 거의 없어지고 편안한 밤이 깊어 갔다.
*팔미라 신전 중 벨 신전 등은 2015년 5월 IS(이슬람 국가)에 의해서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