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본 사람들이 모두 형을 믿은 것도 아니고, 믿음이 있다고 모두 치료된 것도 아니지.”
야고보가 요한에게 설명을 보탰다.
“거라사 주민들은 표적을 보고도 형을 배척했고, 나사렛에서는 낫고 싶은 환자들을 고칠 수 없었으니까....”
다음날이 휴일이라 베다니 시몬의 집은 저녁을 먹은 후 삼삼오오 마당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네, 그렇긴 하지만 엘리아셀 같은 사람들은 순전히 이적을 보기 위해서 따라다녀요.
첫날은 식당 종업원들까지 동원하여 성전에 나왔는데 오늘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구레네 시몬같이 꾸준히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
“네, 처음에는 선생님을 세례 요한 같은 예언자로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다윗 가문의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엘리아셀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네, 며칠 전 그 사람이 베드로 님께 묘한 질문을 했어요.”
요한이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계속 말했다.
“변화산 사건이 은근히 소문이 나서 엘리아셀도 들었나 봐요.”
“예수 형이 높은 산에 올라가 몸이 변하고 옷에서 광채가 난 사건 말이지?”
“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곧 하늘에서 구름이 덮치며 우리가 듣기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베드로 님이 그 자리에 초막을 세 개 세우고 싶다고까지 했거든요.”
“응, 그런데?”
“엘리아셀이 베드로 님에게 묻기를 ‘예수 선생이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면 왜 다윗이나 솔로몬이 나오지 않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왔냐고 했어요.
베드로 님이 대답을 못 하자 그가 실망하는 눈치였지요.”
“글쎄,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네.”
“제가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다윗왕보다 모세에 더 가까운 듯싶어요.
다윗왕은 통일 국가를 세웠지만, 그 나라는 솔로몬왕 사후에 나뉘고 말았어요.
반면에 모세는 애굽에서 신음하던 유대인들을 자유와 희망의 나라로 이끌었지요.
이런 말은 야고보 형님께 처음 하는 거예요.”
“아, 그러니까 모세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
그러니 다윗왕처럼 새로운 나라를 당장 세우는 지도자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거고….”
“네, 그렇지요. ‘모세’라는 이름이 애굽 말로 구원자라는 뜻이래요.”
“다윗왕보다는 모세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그러면 누구를 구원해 주는 건가?”
야고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요한도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은 천대받고 가난한 갈릴리 사람들이겠지요.
또 갈릴리 남쪽 이스르엘 평야의 곡창 지대에서 뼈 빠지게 일하면서, 집도 가족도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 얼마나 많아요.”
“음, 그래. 그동안 빈부격차가 점점 커져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너무 피폐해졌어.
우리는 목수 일을 해서 그나마 생계에 지장은 없었지만, 형은 어려서부터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 아파했지.”
“네, 그런 따스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과 바로 통해서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형이 이제 우리 유대 민족 전체를 로마의 점령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어.
기대가 점점 너무 커진 거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의 구원은 어쩌면 범위가 더 클지도 몰라요.
히브리 민족의 ‘히브리’라는 말도 어떤 지역을 뜻하는 게 아니고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의미하니까요.”
“범위가 더 크다면 사마리아 사람이나 로마 사람까지 포함할까?”
“네, 거기에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겠지요.
떠도는 사람들은 다 히브리 민족이니까요.”
“응, 맞아. 형은 예전부터 가족보다 자기를 따르는 어려운 사람들을 더 가족같이 생각했어.
어떤 때는 섭섭할 정도였지.”
“여기서 두 분이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그렇게 하시나요?”
수산나가 다가와 잘 익은 오렌지를 한 개씩 건네주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수산나 님도 앉아서 같이 드세요.”
야고보가 말했다.
“네, 그런 말씀 안 하시면 어떡하나 했어요. 호호.”
저녁해가 지면서 구름 밑이 붉게 물들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그녀가 요한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얼마 전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상하게 그 말씀이 계속 제 가슴에 남아 있어요.
요한 님께 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수산나가 안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천천히 읽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아,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참 좋네요. 저도 지금 처음 들었어요.”
“어머, 요한 님이 못 들은 말씀도 있네요.
여하튼 이 말씀에 따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려면 짐을 내려놓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선생님은 자신의 멍에를 지라고 하세요.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요한이 수산나에게 쪽지를 달라고 하여 한참을 들여다본 후 입을 열었다.
“글쎄요. 우선 우리들이 평소에 지고 있는 짐이나 멍에는 자존심, 내일을 위한 돈, 남보다 앞서려는 경쟁심 같은 건데 선생님의 멍에는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요한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수산나의 둥그런 얼굴이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 지고 있는 멍에는 어떤 멍에길래 쉽고 가볍다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멍에를 메고 무엇을 배우는 걸까요?”
요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후 야고보와 수산나를 돌아보았다.
야고보가 천천히 말했다.
“형의 멍에는 ‘사랑의 멍에’겠지.
그리고 그 멍에를 메고 우리가 배우는 것은 온유와 겸손 아닐까?
멍에가 전혀 없는 것보다 이 멍에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더 쉬게 한다는 의미 같아.”
수산나가 감탄하는 얼굴로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베다니의 저녁은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