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깃발을 비누로 깨끗이 빨고 식당으로 돌아온 사라가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사라 님, 지금 그리심산을 넘어도 오늘 일찍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는 늦었어요.”
카잔의 말이 이어졌다.
“또 만에 하나 산을 넘다 강도라도 나오면 더 큰일이고요.”
그 말을 들으니 사라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로벤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앉았다.
“오늘 안에만 들어가면 되니까 안전하게 동쪽 계곡으로 빠져서 요르단강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가세요.
얍복강 줄기를 만난 후 조금 더 내려가면 서쪽으로 여리고성이 나와요. 거기서 예루살렘까지는 순례객이 많으니까 쉽게 갈 수 있을 거예요.”
“카잔 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그렇게 하세요, 사라 님.”
누보도 얼른 거들었다. 사라가 작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네, 알겠어요. 아이들이 깃발을 가져갔던 것이 이렇게 돌아가라고 그런 것 같네요.”
“맞아요. 아까 그냥 가셨으면 오늘이 안식일도 아니고 산적들도 일을 했을 거예요.
실은 저와 네리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로벤이 즐거운 표정으로 사라에게 말하고 앞에 놓인 음식을 계속 먹었다.
“그래요. 어차피 늦은 거니까 식사도 조금 하고 가지요.”
“네, 잘 생각하셨어요.”
누보가 음식들을 사라 앞에다 밀어 놓은 후 여로함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트라교 입교식은 언제 하나요?”
“매주 수요일이니까 내일이네요.
그리고 예배는 일요일 오전에 봐요.
그러니까 내일 입교식에 나가고 이번 일요일 예배 때 오반을 찾으면 되겠어요.”
“한 번도 손가락에서 피를 떨어뜨려 본 적이 없는데….”
“그럼 다른 방법으로 하세요.”
“양을 사서 미트라교 여신도와 결혼하는 거요?”
“네, 양을 먼저 사고 결혼은 한 달 안에 해도 돼요.”
“아니요. 천만에요. 내 피를 뽑아야지요.
근데 어떤 여자들인가요?”
누보가 유리를 슬쩍 보았다.
“입교식을 위한 여신도들은 12살부터 16살까지의 처녀들이고 대개는 어려운 집의 딸들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열성적인 신도들을 결혼시킴으로써 외부의 능력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정책이지요.”
“사마리아 지역은 예전부터 바알신을 섬기던 부족이 많아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유리가 여로함에게 물었다.
“네, 모세가 쓴 기록을 보면 그런 말이 있지요.
미트라교가 페르시아에서 생긴 종교지만, 바알 신앙을 흡수해서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은 어린 소녀를 바친다고 해요.
황소로 상징되는 미트라신 앞에서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고함을 지르며 춤을 추다가, 자기 몸을 칼로 베는 의식을 치른 제사장이, 묶여 있는 소녀의 배를 가른다네요.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어떤 소녀가 희생되나요?”
“신탁을 하는 소녀인데 11살이 넘으면 신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희생 제물로 바쳐지게 돼요.”
여로함의 말에 카잔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마리아에는 열성당 조직이 없나요?”
누보가 다시 여로함에게 물었다.
“갈릴리 유다가 폭동을 일으키던 30년 전에는 여기에도 큰 조직이 있었대요.
로마군이 들어와 이천 명 넘는 단원을 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 후에는 아마 여기 조직도 완전히 무너졌겠지요.”
“오반을 찾으면 세겜에서 열성당 조직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을 거예요, 사라 님.”
옥수수 수프를 먹고 있는 사라에게 누보가 계속 말했다.
“제가 여기서 자리를 잡아 놓을 테니까 나중에 바라바 님도 한번 같이 모시고 오세요.
나발은 갈릴리 지역, 저는 사마리아 지역을 맡고 바라바 님이 전체 유대 열성당 단장이 되시면 좋겠어요.”
누보가 자신의 야심을 은근히 내비치었지만, 사라가 별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계속 여기서 살 생각이에요?”
유리의 질문이었다.
“그거야 유리 씨와 상의해서 결정해야지요.
그러니까 제 말은 오반을 잡은 후 다 같이 상의해 보자는 거지요.”
음식은 마지막으로 꿀을 바른 대추가 디저트로 나왔다.
“이 꿀은 옛날 요나단이 먹고 눈이 맑아진 세겜의 땅벌 꿀입니다.
여기 특산물이니까 드셔보세요.”
두스가 접시를 내려놓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아,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먹었던 꿀이군요.”
사라는 지금쯤 루브리아 언니의 눈이 치료가되었을지 궁금했다.
“이 꿀 디저트는 제가 좀 싸 갈게요.
우리도 가면서 좀 먹고, 또 누구 줄 사람도 있어서요.”
“아, 그러세요? 제가 서비스로 조금 더 가지고 오겠습니다.”
두스가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누보의 어머니가 작은 소리로 아들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사라라는 처녀는 인물도 좋고 음전하구나.”
누보가 들은 척도 않고 카잔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시몬이라는 사람이 혹시 미트라교 출신 아닐까요?
어쩌면 카잔 님이 옛날에 알던 사람일 수도 있어요.
내일 우리는 변장을 하고 가는 게 좋겠어요.”
누보의 생각이 그럴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