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성전을 다녀온 예수 선생의 옷을 깨끗이 빨고 있었다.
선생은 생각보다 일찍 베다니로 돌아왔다.
요한 님에 의하면 처음에는 바리새파나 서기관들을 통렬히 비판하시다가, 또 알 수 없는 비유를 들며 곧 어디로 가신다고 하니 모인 군중이 실망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선생에게 부은 후부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며칠간 집안에서 조용히 일만 하고 있었다.
특히 선생의 하얀 원통형 속옷 튜닉은 흙먼지가 많이 묻어 있어 성전을 다녀오시면 매일 깨끗이 세탁해 드렸다.
얼마 전 선생의 어머니가 가지고 온 옷이다.
“요안나 언니가 오셨어요. 나와서 과일 좀 먹으며 쉬어요.”
막달라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요안나 님이 과일을 또 몇 상자 마차에 싣고 오셨다.
얼른 내리고 마당 식탁에 둘러앉았다.
“올해는 이상하게 무화과가 별로 없네.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그 대신 대추야자가 맛있네요. 언니 덕분에 잘 먹어요. 호호.”
수산나가 복스러운 볼 안에 붉은 대추를 넣으며 말했다.
“그래, 수고들 많지요. 많이 먹어요.
오늘 선생님은 성전에 잘 다녀오셨나요?”
마리아가 요한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요한님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걱정이 많이 되네요. 왜 계속 그러시나….
첫날 성전에 입성하실 때는 군중의 환호가 대단했다는데.”
“저는 아무래도 선생님이 우리 곁을 곧 떠나실 것 같아요.
며칠 전 제가 향유를 부어 드렸을 때도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당신의 장례를 미리 치르는 중이라고….”
마리아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래요? 니고데모 님과 요셉 님은 그런 말은 전혀 안 하시던데….”
“여기 제자분들도 거의 그런 생각을 못 하는 듯해요.
아니 안 하는 것 같아요.”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수산나가 과일을 깎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리아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요즘 혼자서 기도를 많이 하시는데 얼굴이 힘들어 보이실 때가 많아요.
제가 늦게까지 선생님과 가까이 있을 때 들은 기도를 요한 님께도 말씀드렸어요.”
“무슨 기도를 하시는데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영화로움’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세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시는데 잘 이해가 안 돼요.
하지만 며칠 내에 선생님의 말씀대로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 같아요.”
“예루살렘 성전에 나가실 때 성전 경비대나 로마 군인들과 충돌이 없도록 베드로 님이나 요한 님과 상의를 좀 해서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네, 요한님께 또 말씀드릴게요.
여하튼 내일은 성전에 안 나가신다니 마음이 좀 놓여요.”
“올 유월절만 잘 넘기면 주위에 선생님을 따르는 니고데모 같은 분들도 여러모로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분이 로고스 클럽이라는 것도 만들었어요.
적절한 시기에 선생님을 소개하고 같이 회의에 참석하시게 되면 많은 오해가 풀릴 거예요.”
“로고스 클럽이 어떤 클럽인가요?”
마르다가 물었다.
“유대교의 3대 종파가 모여서 신앙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서로 이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 만든 모임인데, 니고데모 님이 주관하세요.”
요안나의 설명이 끝나자 마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로고스는 진리라는 뜻인데 신앙이 진리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럼 또 무엇이 필요할까?”
마르다가 물었다.
“저는 ‘미토스’ 즉 ‘신비’가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마리아가 언니를 보며 대답했다.
요안나가 잠시 머리를 끄덕이더니 마리아에게 말했다.
“그래요. 사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하지만 여러 자연 현상이나 마음의 작용을 신비주의로만 생각하면 자칫하면 진리에서 멀어질 수도 있어요.”
“네, 그렇긴 하지요. 여하튼 눈에 안 보이는 신비한 요소가 신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혀 없으면 철학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런 면에서 신비한 진리도 진리에 포함될 수 있겠지. 호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추야자가 사과만큼 맛있어요.
제가 혼자 다 먹기 전에 좀 드세요. 호호.”
수산나가 대추야자를 한 움큼씩 나눠주었다.
요안나가 사과의 반만 한 빨간 대추야자를 크게 한입 깨물었다.
“정말 속살이 파랗고 연한 게 상당히 다네.
다른 상자들은 유다 님께 드려요.
요즘 과일 살 예산도 거의 없을 텐데…”
“네, 그래야지요.
그래서 그런지 유다 님이 요새 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아요.”
수산나가 걱정스레 계속 말했다.
“거의 말이 없으시고 제자분들과도 사이가 별로 안 좋은 듯해요.”
“지금 일년 중 제일 일이 많을 때니까 그렇겠지.
그나저나 선생님의 가족 분들도 아직 계시지?”
요안나가 화제를 바꾸었다.
“네, 어머니 마리아 님은 유월절 축제만 시작되면 다음 날로 갈릴리에 다 같이 돌아가려 하세요.
선생님이 어렸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을 안 따라와서 놀란 이야기를 지금도 가끔 하세요. 호호.
동생 야고보 님은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같이 좀 지내보니까 아주 검소하고 반듯한 분이더군요.
역시 선생님 동생다워요.”
“수산나가 야고보 님께 은근히 반했나 보네. 호호.”
“네, 호호. 얼굴도 남자답게 잘생기셨잖아요.
지금 우리처럼 선생님을 섬기지는 않지만 한번 마음을 정하면 여느 제자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따르실 분이에요.”
“음, 그렇게 되면 참 좋겠네.
그럼 내일은 선생님이 하루 쉬실 것 같으니 모레쯤 또 올게요.
마르다, 마리아 자매가 음식이며 빨래까지 다 해 주니까 정말 고마워요.”
요안나가 두 자매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요. 저희가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요….”
“네, 여하튼 앞으로 3일만 있으면 갈릴리로 올라가실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 잘 부탁해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막달라 마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비쳤다.
그녀의 얼굴이 신비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