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함이 누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근에 미트라교에 들어온 사람들 명단에는 '오반'이라는 이름이 없어요.
가명을 썼을 테니까 누보 씨도 미트라교에 입교해서 같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찾아보는 게 제일 빠를 거예요.”
“입교를 꼭 해야 하나요?”
“네, 외부 사람은 엄격히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요.
피를 나누는 의식을 거행해야 해요.”
“네? 어떻게 피를 나누나요?”
누보가 얼른 물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미트라신 앞에 놓여 있는 항아리에 넷째 손가락을 칼로 베어 피를 세 방울 이상 떨어뜨리고 그 핏물을 같이 마시는 게 하나고….”
“또 하나는요?”
“양 5마리를 가지고 미트라 여신도와 결혼하면 돼요.”
“나는 결혼은 안…”
누보가 막 입을 여는데, 마차로 과일을 가지러 갔던 로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깃발이 없어졌어요!”
“네? 깃발이요?”
사라가 놀라 일어나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마차 안을 살펴봤다.
깃발이 길게 누워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혼자서 날아가 버린 듯했다.
위에 덮어 놓았던 누런 담요도 없어졌다.
가슴이 쿵쿵 뛰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았다.
깃발을 안 챙긴 것이 큰 실수였다.
“아까 마차 구경하러 왔던 어린아이들 짓 같아요.
바닥에 흙이 묻어 있네.
애들은 신발을 안 신으니까….”
누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차에 남아서 깃발을 지켰어야 했는데….”
로벤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동네 아이들이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로벤이 다시 샤론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 여관 앞에서 늘 노는 애들이 어디 사는 애들인지 알지요?”
여관 데스크에 있는 종업원에게 급히 물었다.
“잘은 모르고 그중 한 아이가 우리 식당 종업원의 동생일 거예요.”
“그 종업원이 누구예요?”
“두스인데 지금 일하고 있어요.”
식당에서 그를 찾으니 아까 로벤이 말을 건 사내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지금 주방장이 맛있게 요리하고 있어요.”
“그게 아니고 지금 당장 당신 동생을 찾아야 해요.”
“제 동생요?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쳤나요?”
“우리 마차에서 아주 귀한 물건을 가지고 갔어요.”
“그게 뭔데요?”
“깃발이에요. 독수리 깃발.”
“깃발? 난 또 무슨 진주나 보석이 없어진 줄 알았네.
식사 끝나실 때쯤 아마 도로 갖다 놓을 거예요.
팔 수도 없는 물건인데….”
두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로벤이 당장 그의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 동생을 찾아내.
아니면 이 여관을 불질러버릴 거야.”
두스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이 사람이 미쳤나… 보아하니 갈릴리에서 온 사람 같은데 어디서 행패를 부려.”
여로함이 급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잠시 후 두스를 앞세우고 몇 사람이 여관 문을 나섰다.
“요 녀석이 여기서 놀다가 집에 가는 골목길에서 또 놀다가 그러는데, 오늘도 거기 있을지 모르겠네요.”
두스가 상냥한 목소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 카잔이 그에게 슬며시 은전을 건네주는 것을 사라는 보았다.
두스의 발걸음이 샤론 여관 앞의 큰 도로를 지나 왼쪽 골목으로 옮겨갔다.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서민들의 흙담집은 창문도 거의 없었고, 집 안에 있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간혹 들렸다.
진창길 골목을 한참 지나가니 다시 조금 넓은 공터로 나왔다.
중간에 작은 회당 건물이 있는데 지붕이 반은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다.
“요 녀석이 여기 어디 있어야 하는데…”
두스가 혼잣말을 하면서 회당 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독수리 대장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당 뒤 공터에 아이들이 서너 명 놀고 있는데 한 녀석이 독수리 깃발을 어깨에 메고 아이들에게 대장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마르스야, 그 깃발 당장 가지고 와.”
아이들은 호통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에 놀랐다.
“어, 형. 왜 그래? 이거 좀 가지고 놀다가 팔려고 했는데….”
아까 마차에서 내릴 때 본 듯한 눈이 둥그런 아이가 마지못해 깃발을 가지고 형에게 건네주었다.
사라가 얼른 받아보니 깃발 끝이 진흙투성이였다.
“너 손님 마차에서 이런 짓 하면 안 된다고 몇 번 얘기했니?”
“이게 너무 커서 금방 들켰네.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형.”
앞뒤가 안 맞는 형제의 대화였다.
사라는 잠깐 지옥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자, 이제 되었으니 빨리 돌아가요.
깃발을 잘 빨아야 하니까 시간이 없어요.”
로벤이 깃발을 받아서 땅에 끌리지 않게 옆으로 들고 일행은 왔던 길로 거의 뛰다시피 돌아왔다.
“지금쯤은 식사가 나왔을 거예요.
제가 우리 세탁부에게 부탁해서 잘 빨아 드릴게요.”
두스의 말에 사라가 단호했다.
“아니에요. 내가 직접 할 거예요.”
식당에 들어가니 이제 막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깃발을 들고 오는 로벤을 보며 누보가 말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나도 저 독수리와 눈이 마주치면 기분이 이상해요.
다시는 다른 데로 날아가지 마라. 독수리야!’”
“미안해요. 내가 정신이 나갔었어요. 이걸 마차에 두고 내리다니….
어서들 식사하세요. 저는 깃발 좀 빨아 가지고 올게요.”
사라가 깃발만 막대기에서 조심스럽게 뺀 후 두스의 안내로 여관 뒤 빨래터로 갔다.
“사라 님 얼굴이 그새 반쪽이 되었네.”
누보가 옥수수 수프를 한 입 떠먹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