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유월절은 아무래도 백만 명은 넘을 것 같지요?”
니고데모가 요셉의 별장에 초대받아 점심을 먹으며 말했다.
“네, 성전 외벽 공사도 마무리되고 성공적인 축제가 될 겁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의 콧대가 더 높아지겠어요.”
“지난번 우리 로고스 회의 때 참석하지않아 알아봤더니 성전 경비대장과 치안 문제로 회의를 했다더군요.”
“빌라도가 와 있으니 특히 신경이 쓰이겠지요.”
“그보다도 저는 걱정이 좀 되네요.
예수 선생을 잡으려는 계획이 있는 듯해요.
선생이 며칠 전 성전에서 돈을 바꿔주는환전상들과 제물을 파는 상인들의 의자를 뒤엎고 큰 소란을 일으켰는데 경비대원들이 그냥 보고만 있었다네요.”
니고데모의 말이었다.
“그래요? 선생이 왜 그런 일을 갑자기 했을까요?”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 경비대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상해요.”
“선생의 주위에 따르는 무리가 많았으니까 그랬겠지요.”
요셉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지난 회의는 처음 모임치고 아주 잘된 듯싶습니다.
니고데모 님이 신경 많이 쓰시고 저녁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모두 우리 로고스 클럽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셨어요.”
포도나무 덩굴아래 시원한 그늘에 마련된 식탁은 쾌적했다.
하얀 옷을 위아래로 입은 하녀가 기름기가 흐르는 양갈비를 니고데모의 접시 중앙에 먼저 올려놓았다.
오른쪽에는 초록색 민트를 한 숟갈 떠 놓았다.
“맛있게 많이 드세요. 우리 별장에 오랜만에 오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는 언제 와봐도 참 좋습니다.”
“네, 오래전 우리 할아버지께서 조상들의 무덤을 한 곳에 만들 겸 땅을 넓게 잘 사셨어요.”
“네, 지금은 예루살렘 근처에 이런 장소를 구하기 어렵지요. 선견지명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작은 양갈비 하나를 맛있게 먹은 후 요셉이 말했다.
“그날 회의 때 역시 사울 님이 자기주장이 강했지요?”
“네. 뭐 농담 같이 들렸지만, 안식일에 틀니를 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말했지요.”
“농담이 아닐 텐데요.
안식일은 짐을 옮기면 안 되는데 틀니를 하고 다니면 짐을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설명까지 했어요.”
“네. 사람들이 웃고 넘겼지만, 가말리엘 선생님이 틀니를 하고 계셨기에 듣기 거북했어요.”
“네, 공부를 많이 하고 참 총명한 사람인데 성격이 너무 강해요.
제가 처음에 걱정을 좀 했는데 앞으로 신경이 꽤 쓰이겠어요.”
하녀가 무화과 씨를 꿀에 버무린 빨간색 디저트를 내왔다.
작은 새들이 포도 넝쿨 위에서 짹짹거리며 날아다녔고 산들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왔다.
별장은 약간 구릉 지역에 있어서 시원한 편이었다.
동쪽으로 조금 더 오르면 돌산이 나왔는데,큰 바위로 막아 놓지 않은 빈 무덤도 몇 개 있었다.
요셉이 일어나 위로 손을 뻗으니 시커먼 알갱이가 듬뿍 달린 포도 한 송이를 잡을 수 있었다.
“이 포도 먼저 드시고 디저트를 드세요. 우리 집 포도가 아주 맛있습니다.”
테이블에는 벌써 유리그릇에 포도 씻을 물과 하얀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네. 포도는 역시 갈릴리 지역보다 비가 적게오는 여기가 더 달아요.
저의 아버지도 갈릴리 출신이라 늘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내일쯤에는예수 선생의 성전 집회에 나가볼까 하는데 같이 가실까요?”
니고데모가 요셉에게 물었다.
“내일이 수요일이지요? 요안나 님께 들었는데 내일은 아마 성전에 오르실 것 같지 않다고 해요.”
“아, 그런가요? 지난번 로고스 회의에 요안나 님이 참석해서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요셉 님이 추천을 잘해주셨습니다.”
“네. 어떤 사람들은 요안나 님이 남편을 무시하고 바깥 활동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던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네, 그럼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런 분이 선생 곁에 있는 것이 사람들이 볼 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요셉 님과 저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요셉이 포도씨를 뱉으면서 니고데모에게 물었다.
“예수 선생이 강조하시는 말씀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다 보니까 부자들이나 상류층 사람들은 은근히 반감을 품을 수 있거든요.
실제로 부자들에게 경고의 말씀도 여러 번 하셨고요.
하지만 제 생각에 선생은 부자들, 세상 쾌락에 빠져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대단히 가엾게 여기실 거예요.
그들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기에 너무 많은 장애 요인을 가지고 있거든요.
부드러운 옷을 입고 화려한 집에 노예를 거느리고 있어도 그들의 마음이 탐욕과 증오에 빠져 있는 것은 대단한 비극이지요.
어쩌면 선생은 속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가난한 사람보다 더 불쌍하게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아, 그러니까 요안나나 우리 같은 사람도 선생의 주위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선생의 지지층이 넓어 보이겠네요.”
“네, 여하튼 우리가 선생의 말씀 안에 진리를 더욱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니고데모가 굵은 포도알 하나를 맛있게 먹었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저도 별것 아닌 재산과 명예를 지키느라 자유와 평안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온전히 부자들의 영혼을 위해 하신 말씀이네요.”
“네, 저에게도 예전에 거듭나라고 하셨는데 이제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직은 드러내 놓고 여러 사람에게 제가 선생을 존경하고 선생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은 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아마 지난 회의에서 그렇게 말했다면 당장 사울 님이 가만있지 않았겠지요.”
“나중에 기회를 봐서 조금씩 언급하기로 해요.”
“어제 선생의 제자 요한이 유월절에 모일만한 장소를 좀 알아봐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목요일 저녁에 여러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어야 하는데 산헤드린 성전 경비대가 선생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은밀히 모일 것 같아요.
요셉 님도 시간 되시면 참석해 보세요.”
새들이 포도 껍질 냄새를 맡고 더 모여드는 성싶었다.
포도 넝쿨의 그늘 밖에는 어느새 제법 따가워진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