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예수 선생이 성전에 들어가지 않고 예루살렘 한 회당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어제 성전에서 있었던 일은 벌써 입소문으로 많은 순례객이 알게 되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하루하루 더 복잡하고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서 그리스어, 아람어, 이집트어, 히브리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그 사이사이에 양들의 우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제 3일만 있으면 양들은 모두 잘 드는 칼에 목이 잘려 죽을 것이고, 그 피가 제사장들의 하얀 옷을 벌겋게 적실 것이다.
순례객 중에 그리스에서 온 몇 사람들도 선생의 제자에게 안내를 받아 회당에 찾아왔다.
예수 선생의 명성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다.
선생은 그의 시간이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암시하듯 이렇게 말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또 그를 따르는 사람은 그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도 선생이 있는 곳에 있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선생을 따르는 사람에게 선생과 같은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 선생이 군중들에게 다시 자기의 죽음을 내비치니 놀라고 맥이 빠진 사람들은 성경에 그리스도는 영원히 산다고 들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선생은 대답 대신 또 비유로 말하기를 ‘아직 잠시 동안 빛이 여러분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십시오.
어둠 속을 다니는 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직 빛이 있을 동안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됩니다.“라고 했다.
요한이 기억하기로는이것이 선생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세 번째 가르침이었다.
사람들이 조그만 목소리로 ‘저 사람은 왜 알아듣기 어렵게 비유로 말하고 밝고 희망찬 약속 대신 곧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말만 계속 하느냐?’라고 투덜거렸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그때를 노린 듯 어떤 나이 많은 바리새인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모두 너무 막연한 얘기에요.
밀알이 썩든 빛이 없어지든 우리는 관심 없어요.
그런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기적을 보여줘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만들어 주고 나병 환자를 고치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봐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거침이 없었다.
“당신은 늘 ‘하늘나라’니 ‘진리’니, 뭐 이런 보이지 않는 얘기만 하고 있어요.
내가 알기로 당신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제대로 공부를 한 적도 없지요.
우리가 믿게 하려면 당장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요.
기적을 행해 봐요.
그러지 못할 거면 더 이상 여기 나타나지 말아요.”
멍하니 서 있는 유다의 팔을 요한이 건드렸다.
“선생님 가시는데 왜 그냥 서 있어요?”
유다는잠깐 환상을 본 듯했다.
아니면 유다 자신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요즘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이 일부러 끝까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엄청난 기적을 행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선지자의 예언을 실현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왕국도 건설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유다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그를 바라보는 선생의 눈은 하루하루 더 절실해 보였고, 어떤 때는 선생이 그에게 하는말을 이상하게도 다른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선생의 계획을 결정적으로 도와줄 사람은 유다 본인으로 결정된 듯싶었다.
그의 이름이 선지자의 글에 아직은 안 나오지만, 앞으로는 나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다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일행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곧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출발한 마차는 사람이 여덟 명이나 타고 있어서 속도가 늦었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저녁 미갈이 가지고 온 독수리 깃발은 옆으로 길게 마차 바닥에 뉘어놓고 긴 담요로 덮었다.
바라바 오빠의 목숨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수놓인 독수리가 살아 있는 듯 보였다.
혹시라도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로벤이 네리와 마차를 모는 앞좌석에 같이 타서, 마차 안에는 6명이 앉게 되었다.
그래도 4명이 여자였기에 좌석이 좁아서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카잔과 레나는 마차가 가는 방향으로 앉았고, 사라도 그 옆에 자리했다.
맞은편에는 누보와 누보의 어머니그리고 유리가 나란히 앉았다.
마차는 막달라를 지나 티베리아를 우회하여 가나로 향하고 있었다.
이따금 오르막 경사가 나왔지만, 말들은 별 무리 없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사라는 어젯밤 미사엘과 늦은 시간까지 같이 지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행복에 겨운 미사엘의 얼굴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확실한 언약은 안 했지만 이번에 돌아오면 결혼식을 치르게 될 것이다.
바라바 오빠가 나오면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 줄 것이고, 그의 축하를 받고 나면 루브리아 언니에게도 알려야 할 것이다.
“색시는 어젯밤 무슨 좋은 일이 있었수?”
누보 어머니의 목소리가 사라의 귀에 들렸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그럼 내 앞에 색시가 하나밖에 더 있수?
곧 시집갈 색시처럼 싱글벙글이네.”
사라가 대답 없이 누보를 보고 웃었다.
“어머니, 지금 사라 님이 얼마나 마음이 초조하실 텐데 그런 얘기를 하세요.
아, 그리고 이번에 나발은 안 만나셨지요?”
“다음주쯤 미사엘 님이 만나시고 편지도 전해 주실 거예요.”
“저도 사마리아로 떠나면서 얼굴도 못 보고 왔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네요.”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사라는 나발에 대해 지금 생각하기가 싫었다.
마차는 나사렛 외곽 언덕을 지나서 점점 내리막길을 따라가다가 에스드랄론 평야에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칼멜산을 지나면 곧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샤론 여관이 사마리아에서 제일 큰 여관인가요?”
누보가 카잔에게 물었다.
“응, 그럴 거야. 우선 거기 며칠 있으면서 다음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고.
사라 님도 좀 쉴 겸 점심을 여관에서 하고 가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늦을 거 같아서요.”
“말도 좀 쉬게 해야지요.
이제 우리 5명이 여기서 내리면 속도를 낼 수 있어요.”
사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