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몬을 잘 아는 간수가 식구통으로 작고 하얀 단지를 넣어주며 목소리를 낮추어 무슨 말인가를 했다.
단지 뚜껑을 열어보니 달짝지근한 선인장 꿀 냄새가 침침한 감방을 휘감았다.
“와, 이거 지네에 찍어 먹으면 좋겠다.”
요남이 재빨리 손가락 하나를 단지 속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살몬이 얼른 단지 입구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요남아, 너 버릇없이 또 그러네! 손가락을 콱~ ”
“죄송해요. 냄새가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요남이 두 손을 깍지 끼었다.
살몬이 나무 스푼으로 넓적한 무교병 위에 한 사람씩 꿀을 떠 주었다.
부드러운 선인장 꿀이 딱딱한 빵과 잘 어울렸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다.
지금쯤 로벤이 나발을 만나 잘 진행이 되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바라바는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살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당 간수가 지금 알려줬는데 같이 잡힌 사람들은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네요.
사람이 많아서 증인 작업이 며칠 더 걸리나 봐요.”
바라바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삭이 넌지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바라바 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유가 무엇일까요?”
“마지막 자유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야말로 그 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지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판사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판결에 대한 나의 마음과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네, 바로 그렇지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네, 지금 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데 역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음, 마지막 자유가 이성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신앙의 힘을 빌려 보세요.
인간의 한계로 안 되고 부딪칠 때, 바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유한한 능력이 무한한 능력의 도움을 받는 거지요.”
요남이 옆에서 듣다가 얼른 한마디 했다.
“마치 무교병 빵에다 꿀을 바르는 것과 마찬가지인가요?”
“하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삭의 대답에 바라바는 먹고 있는 빵의 꿀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데 살몬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매일 변해요.
지난번 말씀드린 일을 당하고서도 저는 그때뿐이에요.
그녀... 마리아는 예수 선생을 만나서 변했을지 모르지만.”
이삭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몬에게 말했다.
“무신론자로 평생 머물기 쉽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늘 느끼고 경외하며 사는 것도 어렵지요.
그저 순간순간 깨닫고 기도할 뿐이에요.”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여호와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며 영적인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그런 경지에 근접하지 못하는데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나를 용납하시는 것을 내가 용납해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좀 어려운 말인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조차도 하나님의 뜻이지만요.”
바라바는 뭔가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지금쯤 루브리아의 눈이 완전히 나았을 거로 생각하며 그녀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다.
이삭이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우리 유대교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 없는 유대교인이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회당을 그냥 편의상 다니는 거지요.
주로 사교나 취미 활동하러 다니는데 잘못되었다는 의식도 없어요.
회당 다녀왔으니 그 후에는 옆집 사람이 아프거나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들의 신앙은 끊임없는 현실도피, 즉 자기기만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의 이웃을 형성하며, 물질 위주의 삶을 서로 정당화해 주고 때로는 경쟁하는 겁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으며 자기희생이나 남을 위한 봉사는 평생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회당 다니는 사람과 하나님 믿는 사람은 생각보다 잘 구별됩니다.”
요남이 얼른 받아서 말했다.
“네, 이삭 선생님 말씀에 참 공감이 돼요.
저는 회당에 오래 다니지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누가 돈 좀 많이 벌면 서로 칭찬하지요.
신앙이 그렇게 좋으니 복 많이 받았다고요.
‘여호와’의 뜻이 혹시 ‘돈의 신’ 이라는 의미는 아니지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구나.
‘여호와’는 어느 신의 이름이 아니고 모세가 만난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설명한 방법이지.”
“아, 그런가요?”
요남이 눈을 반짝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자로서, 나는 나이다’라고 대답하셨는데 ‘나는 나이다’를 히브리어로 ‘여호와’라고 해.
출애굽 당시 그들은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했고,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주실 절대자로 인식했지.”
“그렇지요. 미래를 이끌어 주실… 바라바 님은 이번에 풀려나시면 뭐 하실 거예요?
열성당을 계속하실 거지요?”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네….”
바라바가 말꼬리를 흐렸고 살몬이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우선 아버님께 가서 안심부터 시켜 드려야겠지요.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 말을 들으니 로벤을 보낼 때 아버지께 연락드린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마음이 쓰려왔다. 만약 일이 잘못돼 사형 집행을 당한다면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열성당의 바라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했나요? 그러지 않아도 힘든 사람에게….”
“아닙니다. 그동안 불효만 하고 이렇게 된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네요.
다 제 잘못이지요….”
바라바의 말이 끝나자 요남이 얼른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관상을 잘 보는데 바라바 님은 반드시 특사로 나가시게 돼요.
나중에 저도 열성당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바라바가 그를 보고 입술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