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배웅하고 요나단이 들어오자 니고데모가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은 창립 회의니 만큼 가말리엘 선생님의 말씀만 듣고, 정식 토론은 다음 회의부터 하고 바로 만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회장을 수락하셔서 우리 클럽이 모양과 중심이 잡히고 안나스 제사장님도 오셔서 축사를 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의 박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박수가 길게 울리고 가말리엘 선생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로고스라는 말은 진리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우리는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종교인들은 늘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생각하여, 스스로 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변화되기 가장 힘든 집단이 종교인들입니다.
물론 저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들을 준비와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상대방의 중요한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로고스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대화를 하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세계를 재편할 수 있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좁고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신앙은 오직 고난과 거듭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넓히고 밝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원합니다.”
모두 귀를 기울이며 진지한 태도였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가말리엘 선생이 좌우를 다시 한번 보며 말했다.
“로고스 클럽이 앞으로 회의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택하기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손뼉을 쳤다. 니고데모가 일어나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식당으로 옮겨서 대화를 나누며 만찬을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식당으로 이동했고 마침 마늘 빵 굽는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요나단이 니고데모에게 조용히 양해를 구했다.
“너무 죄송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만찬은 참석을 못 하겠습니다.
가말리엘 선생님께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산헤드린 의회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요?
가야바 대제사장도 못 오신 걸 보니….”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곧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요나단이 서둘러 집을 나갔고 식당에서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타나에게 요나단이 곧 온다는 말을 들은 루브리아는 식당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청동거울에 비친 얼굴은 볼살이 빠지긴 했지만, 화장을 정성스레 하니까 환자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목이 말라 보여 왕비님이 준 진주 목걸이를 했다가 너무 화려한 것 같아서 다시 풀었다.
“말씀 나누시면서 식사도 좀 많이 하세요.
빨리 원기를 회복하셔야 베다니에도 가시지요.”
루브리아에게 금술이 화려하게 달린 겉옷을 입혀 주며 유타나가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배가 고프기도 하네.
탈레스 선생님 모시고 유타나도 식당에서 식사해.”
“네, 저도 사실은 배가 많이 고파요. 호호.”
종업원이 올라와 식당에 요나단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식당으로 걸어 내려가는데 흑진주 반지가 헐렁하게 느껴졌다.
넷째 손가락에서 쉽게 돌아가서 셋째 손가락에 바꿔 끼었다.
요나단이 들어오는 루브리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나단 님.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루브리아 님이 부르시면 자다가도 얼른 일어나 와야지요. 하하.”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고 바로 종업원이 식사 주문을 받았다.
“양파 수프 냄새가 좋은데 수프는 그걸로 줘요.”
요나단이 먼저 주문을 했고 식당 저쪽 구석에 탈레스 선생과 유타나가 앉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루브리아 님이 바뀌신 게 있네요.”
“네, 제가 살이 좀 빠졌지요. 그동안 식사를 잘 못했어요.”
“아, 그보다도 지난번에 뵐 때는 루브리아 님이 약혼자가 있는 줄 알았어요.”
“어머, 왜요?”
“반지를 끼신 손가락이 오늘은 바뀌었네요.”
“아, 네. 그냥 맞는 손가락에 끼는 거예요.
관찰력이 대단하시네요.”
“루브리아 님을 보는 사람들은 다 그럴 겁니다. 하하.”
생각해 보니 약혼자가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생사가 며칠 안에 결판이 나는 처지에 있지만….
“요나단 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릴 게 있어요.”
루브리아가 바라바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하고 구출 방법이 없겠는지 물었다.
“이번에 루브리아 님도 큰일 날 뻔하셨지요.
바라바는 이제 산헤드린에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꼭 구해주시려면 빌라도 총독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만....”
그녀의 고개가 숙어졌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요나단이 화제를 돌렸다.
“루브리아 님은 여기에 며칠이나 더 계실 건가요?”
그녀가 이번 수요일 예수 선생에게 가서 눈 치료를 받을 계획을 말했다.
요나단의 머릿속에 조금 전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수요일이면 너무 늦을 텐데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루브리아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