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다소는 욥바보다 훨씬 더 큰 항구이고 주위 여러 나라와 무역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항구를 접한 넓은 평야 뒤로는 높은 산들이 풍부한 나무를 제공했고, 양과 염소들이 많아서 질 좋은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했다.
다소는 소아시아 지역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고, 우수한 대학들과 학자들이 모여든 교육도시로도 명성이 높았다.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다소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세금도 대폭 감면해 주었다.
사울의 아버지는 벤야민 지파 후손으로서 로마시민권을 소유한 독실한 바리새인이었다.
사울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대 가정교육을 받으며 선지자들의 말씀과 율법을 공부했다.
그는 인물이나 풍채가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울은 누가 봐도 부족함이 없는 행복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신학 공부를 계속하며 철이 들수록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천하를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면서 점점 신의 반열에 올라 사람들의 경배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다스림을 신격화하는 사상은 젊고 패기에 찬 사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달리 유대 사람들은 개종하지 않고, 야훼를 계속 유일신으로 섬기도록 허락되었으나, 황제의 신격숭배는 점점 대중들 사이에서 보편화 되고 있었다.
20년이 넘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제국을 통일하고 더 이상 여러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할 필요가 없는 평화의 시대를 정착시킨 그의 공로는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이런 강대한 로마를 통한 평화의 시대가 50년이 넘게 유지되고 있었다.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제우스나 아폴로와 같은 높은 지위의 신은 아니나 어느덧 인간에서 확실히 신의 반열로 승격된 것이다.
독실한 바리새인 사울은 율법과 유대전통이 연결되는 다윗 왕조를 신봉했고, 야훼 하나님은 다윗왕의 수호신으로서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돌보신다고 믿었다.
선지자들의 글에 나오듯, 때가 이르면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왕조를 회복시키고 시몬 산을 모든 산맥 위에 치솟게 하실 것이리라.
그동안 유대민족은 강대한 제국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에 억압받고 살아왔으나, 때가 되면 야훼 하나님이 직접 역사에 개입하시어 악한 나라들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다윗 왕조를 세워 주실 것이다.
사울은 유대교의 교리를 더욱 깊이 공부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그의 본격적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도 사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말리엘 선생의 아들과 더불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여러 사람의 주목과 기대를 받았다.
일부 학생들은 그를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사울의 완벽주의,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율법을 지키며 산다는 그의 강한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사울은 여러 존경받는 바리새인들처럼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때맞추어 금식했으며 온 힘을 다하여 전도했다.
그의 마음은 언젠가는 로마를 거쳐 이 세상의 끝까지 가서 야훼의 말씀을 전하리라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울이 지금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예루살렘 남쪽 빈민촌에 들어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임시천막을 만들어주며 전도하는 일이었다.
또 그는 안식일에 고통받는 가축들도 잘 돌보았다.
모두 율법에 나와 있는 일이다.
사울은 경건한 바리새인들의 진실된 행동을 함부로 비난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사두개파 사람들도 은근히 그런 경향이 있지만, 최근 나사렛 예수라는 엉터리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나타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가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다.
사울은 슬슬 화가 났다.
친구 요나단 제사장과 상의를 하고 싶었다.
바라바 오빠를 누보와 만나게 해 준 사라는 더 이상 사마리아에서 할 일이 없었다.
더구나 누보 일행이 이미 미트라교의 동태를 거의 다 파악하여 바라바 오빠와 요남은 곧 카멜 수용소로 가서 그곳에 있는 요남의 약혼자를 만날 계획이다.
거기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자칫 위험하기도 하고 명분도 없었다.
한때 바라바 오빠를 완전히 포기하고 미사엘 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언약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바뀌고 바라바 오빠와 같이 여행을 하다 보니 그녀의 마음은 계속 흔들렸다.
세겜 시내에 나란히 서 있는 키 큰 야자나무를 볼 때면 미사엘 님과 사라의 이름이 새겨있는 벤치 뒤의 나무가 눈에 어른거렸다.
사라는 자기가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미사엘 님과 나병 환자들을 위한 전문병원을 만들기로 했었으나 그것도 마음에서 멀어졌다.
막대한 자금을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환자들을 돌보다가 나병 환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사엘 님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의 앞문에 늘 앉아있는 모녀도 그래서 같이 걸린 것이리라.
사라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두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 님, 아래 식당에서 바라바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알았어요. 곧 내려갈게요.”
그녀는 서둘러 얼굴을 청동거울로 확인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당 한구석에 바라바 오빠가 요남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남은 벌써 포도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셨는지 얼굴이 약간 불콰해 있었다.
“사라 님, 제가 먼저 한잔했습니다. 몇 년 만에 마시니까 참 좋습니다.”
두스가 사라의 앞에도 포도주잔을 갖다 놓았고 요남이 얼른 가득 따랐다.
술잔을 들고 다 같이 살짝 부딪친 후 사라도 한 모금 했다.
또 당분간 헤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일 카멜 수용소로 갈 거니까 사라는 갈릴리에 가서 나발을 좀 만나봐.
내가 늦어도 1주일 내에 갈 거라고 전해줘.
그동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사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군중시위를 하고 남은 돈을 나발이 아셀 단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아직 많이 있는 바라바 오빠가 지금 그것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악명 높은 카멜 수용소를 요남의 약혼녀를 만나기 위해 간다는 바라바 오빠가 걱정스러웠다.
마음이 편치 못한 그녀가 술잔을 들었는데 식당 입구로 들어오는 여로암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사라를 보고 반갑게 다가왔다.
“사라 님, 카잔 님 여기 안 계신가요?”
“네, 이모님 집에 가셨다고 들었어요.”
“음, 그럼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네요.
내일 점심에 사벳이 미리암을 데리고 오기로 했어요.
카잔 님이 무척 좋아하실 거에요.”
“아, 잘 되었네요. 여기 앉아서 같이 한잔하세요.”
사라가 그를 바라바와 요남에게 소개하는데 여로암이 요남을 알아보았다.
서로 못 본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어릴 때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