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소가 시장통 입구에 손님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마차꾼들을 모두 만나는 데는 이틀이 꼬박 걸렸다.
열흘 전쯤에 옷가지 등을 잔뜩 들고 있는 여자 두 사람을 태웠다는 마차꾼은 아무도 없었다.
두 여자는 모녀지간이고, 어쩌면 얼굴이 세모꼴인 바짝 마른 남자까지 일행이 세 사람일 수도 있다고 했으나 역시 본 사람이 없었다.
우르소는 곰 같은 놈에게 다친 목은 거의 다 나았으나, 그 후에 왼팔이 저리고 아픈 증상이 생겼다.
갈릴리에 오자마자 휴가를 내어 카이사레아의 뜨거운 온천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슬슬 짜증이 나는데 마차꾼들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들 중 나이 좀 먹은 놈이 엉뚱한 말을 한 것이다.
“그 여자들도 혹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살아나서 갈릴리로 왔나?”
주위에 마차꾼들이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우르소가 아무 말 없이 그 마차꾼의 마차 뒤로 가서 마차 밑에 손을 넣고 무릎을 반쯤 구부리고 앉았다.
왜 그러나 하는데 끙 소리와 함께 마차가 무릎 위까지 들리더니 옆으로 회까닥 뒤집혔다.
마차 바퀴가 뒤집힌 거북이의 발처럼 움직였고 말들이 놀라 히힝거렸다.
그의 괴력에 놀란 마차꾼들은 항의도 못 하고 입을 벌린 채 우르소를 쳐다보았다.
“이놈들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함부로 까불고 있어!”
우르소는 손의 먼지를 털고 주위를 한번 무섭게 노려본 후 시장통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왼팔은 더욱 저려왔다.
마나헴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고 앞으로 야단맞을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유리와 같이 젊고 이쁜 여자가 마나헴과 결혼하기 싫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마 오반과 눈이 맞아서 같이 도주한 것이리라.
유리의 얼굴을 떠올리다 우르소가 ‘아’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발길을 시장통으로 돌렸다.
이런 때는 자기의 머리가 참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금방 다시 돌아온 우르소를 보고 마차꾼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 여자들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인도 여자들인데, 이래도 본 사람 없나?”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자 우르소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어 말해보았다.
“실은 그 여자들을 찾으면 큰 포상금을 받게 되는데 여러분 중 도움을 주는 사람은 나중에 크게 보상할 것이오.
나는 헤롯 왕의 비밀 경호원이오.”
역시 아무 반응이 없어 우르소가 돌아서려는 순간 구석에 있던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만 40대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혹시 얼굴이 좀 통통하고 귀엽게 생겼나요?”
“바로 그렇소. 그 여자를 태워 주었나요?
이름은 유리라고 하는데….”
키 작은 남자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안 했다.
우르소가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름은 모르겠고 제가 본 여자가 인도 여자는 확실했어요.
내 마차를 예약했는데 다음 날 나타나질 않아서 바람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게 벌써 한 보름은 된 것 같은데….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어디로 간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오?”
“아, 자기네가 옷들이 많아서 큰 마차를 준비해 달라는 말도 했어요.”
“옳지, 그 여자가 틀림없군.
빨리 생각해 보시오.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음, 조금 먼 곳 같았는데…. 생각날 듯하다가 안 나네요.”
우르소가 화를 참으며 주머니에서 은전 하나를 꺼내 주었다.
마차꾼이 까만 얼굴에 하얀 눈알을 굴리며 생각난 듯 말했다.
“사마리아에 간다고 한 것 같은데….”
“사마리아? 사마리아 어디로?”
“세겜이라는 도시의 무슨 여관이라고 했는데….”
“무슨 여관인지 생각 안 나요?”
우르소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저 마차가 뒤집혀서 고치려면 수리비가 좀 들 텐데….”
그가 턱으로 우르소가 뒤집어 놓은 마차를 가리켰다.
얼굴이 벌게진 우르소가 은전을 하나 더 꺼내 주었다.
“음, 세겜의 샤론 여관이라고 했….”
마차꾼은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우르소가 그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린 후 주머니에서 은전을 다시 빼어갔기 때문이다.
봄에는 남풍이 불어서 배의 속도가 두 배 이상 빠른 데다가 바닥에는 건장한 노예들이 발목을 쇠사슬에 묶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노를 젓고 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일주일 후에는 카프리 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이 솟아 바람을 받는 하얗고 집채만 한 돛이 즐거운 듯 흔들리고 있었고 푸른 바다에는 가끔 큰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타나가 아침 식사를 들고 루브리아의 선실로 들어왔다.
“왕비님은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많이 드시더니…”
“탈레스 선생님과 맥슨 님은 아침 드셨나?”
“네, 두 분은 벌써 드셨어요.
맥슨 님이 보기와 달리 뱃멀미를 하셔서 식사를 많이 못 하시네요.
자기는 배를 타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해요. 호호.”
“어머, 그런 분이 왜 나를 경호한다고 따라오셨을까.”
말을 하고 보니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집안으로 보나 인물로 보나 훌륭한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었고, 그의 아버지 맥슨 의원에게 인사드리라는 아빠의 말씀은 은근히 두 사람의 관계를 염두에 두신 듯싶었다.
하지만 루브리아는 맥슨 백부장에게 이성으로 끌리는 바가 별로 없었고 더구나 이번 여행을 계획한 왕비의 목적을 생각할 때 더욱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아가씨, 오늘 점심은 맥슨 백부장과 두 분이 드시면 어떨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는데 위로도 해 주실 겸 해서요.”
왕비의 생각을 모르는 유타나가 은근히 맥슨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음, 뱃멀미도 하는 분인데 뭐.
식사보다는 나중에 차나 한 잔 같이 하지.”
루브리아는 왕비의 속셈을 사라에게만 알렸는데, 그것은 같은 여자로서 사라의 바라바 님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대강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하늘이 파란 아침, 안토니아 요새의 정문으로 출소하던 바라바 님의 모습이 나날이 선명하게 보였다.
왕비와 같이 있어서 작별 인사도 못 했지만 바라바 님은 자기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으리라.
달려가서 허그를 하는 사라가 너무나 부러웠다.
이제는 내 서신을 읽고 그날 멀찌감치에서 자신이 나오는 모습을 루브리아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이 배를 타고 가는 왕비와 자신에게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바라바의 자유를 위해 이렇게 떠나기로 한 결정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조용히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소유하는 사랑보다 더 귀한 사랑이리라.
루브리아의 눈치를 살피던 유타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그러면 내일이라도 맥슨 님과 두 분이 차라도 한잔하세요.
제가 맥슨 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아직 일주일은 더 가야 하는데 뭐.
왕비님이 언제 부르실지도 모르고…”
루브리아가 흔쾌히 대답을 안 하자 유타나가 투정 부리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이번에는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안 들어 주시고…”
“지난번에 무슨 일이었나?”
루브리아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 번개 가오리, 제가 그렇게 요리해서 먹자고 했는데 기어이 욥바 바다에 다시 풀어주셨잖아요!”
루브리아가 큰소리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