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남은 그리심산 산적 출신답게 바라바와 사라가 탄 마차를 반나절 만에 세겜시 샤론 여관에 도착시켰다.
그의 마음은 벌써 카멜 수용소로 달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빨리 일이 끝나는 대로 수용소에 갇혀 있는 약혼녀 나오미를 만나야 한다.
한 달의 기간은 어찌 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라바와 사라가 마차에서 내려 여관 정문으로 향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금방 또 오셨네요.”
마르스가 꼬마 친구들과 싱글거리며 다가왔다.
“아, 그래. 마르스구나. 잘 있었니?”
사라의 머릿속에 독수리 깃발이 스쳐 지나갔다.
“이분이 아줌마 남편이신가 봐요. 미남이시네요.”
“아니야 얘, 이분은 아는 오빠야.”
사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옆에 있던 꼬마 친구들이 슬슬 마차로 접근하는 것을 본 마르스가 외쳤다.
“얘들아, 이 마차는 건드리지 마.
내가 잘 아는 분이야.”
사라는 바라바 오빠를 남편으로 생각한 마르스가 갑자기 이뻐 보였다.
어린아이들의 눈에도 자신과 바라바 오빠를 어울리는 한 쌍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바라바가 맹랑한 꼬마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 여기서 일하는 것 같은데 아직 결혼 안 한 처녀에게 아줌마라고 하면 싫어한다.”
“그래, 요놈아. 나도 이 형님도 모두 총각이시다.” 요남이 옆에서 거들었다.
마르스가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나는 여기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차를 닦아주고 돈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과 두 총각은 사마리아에 처녀와 과부들이 많으니 오신 김에 만나고 가는 것도 좋다는 의견을 말했다.
참고로 자기 형이 이 여관에서 일하는데 그런 일을 주선해 주고 일이 성사되면 손님들이 성의껏 주는 사례를 받기도 한다고 알려주었다.
사라가 동전을 한 개 꺼내 주며 마차를 청소해 달라고 한 후 여관으로 앞장서 들어갔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두스가 사라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번 같이 있던 손님들이 아직도 다 계신 데, 그중 몇 사람은 자기가 소개하는 민박집으로 곧 옮길 예정이라고 알려주며, 사라 일행도 처음부터 좋은 민박집으로 가는 것이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우선 며칠은 여기 있을 거예요.
미안하지만 누보 씨 좀 불러 줄 수 있나요?”
두스는 사라가 자기의 제안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 실망했지만, 누보가 있는 2층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잠시 후 누보가 유리와 같이 내려오는데 그들의 모습이 얼마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하얀 고급 면으로 만든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도 훤해 보였다.
“사라 님, 아, 바라바 형님도 같이 오셨군요.”
누보의 목소리가 여유 있게 느껴졌다.
두스가 주방에서 무화과 한 접시를 가지고 나왔다.
“이건 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요남의 손이 얼른 무화과로 향하며 한마디 했다.
“포도는 없나요? 제가 포도 맛을 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포도는 서비스가 안 되는데요.”
두스의 목소리가 무뚝뚝했다.
조금 당황한 얼굴의 요남이 낡은 상의 주머니로 손이 들어갔다.
“그럼 이거 받으시고 좀 주시면 좋겠는데요.”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했고 두스가 약간 겸연쩍어하며 요남의 내민 손을 잡았다.
“억, 이게 뭐야.”
기겁을 한 두스가 아래로 던져버린 물건이 바닥에서 슬금슬금 움직였다.
새끼손가락만큼 길고 통통한 지네였다.
사라와 유리가 기겁을 하는데 요남이 얼른 일어나 다시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해요. 이 친구가 그동안 먹던 음식이라 포도와 바꾸려 했나 봐요.
우선 포도주 먼저 한 병 가져오세요.
진짜 먹고 싶은 것은 포도주일 테니까….”
바라바가 나서서 설명을 하고 사태를 수습했다.
두스가 요남을 한 번 노려본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포도주는 얼마든지 드세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바라바 형님.”
누보가 상냥하게 계속 말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바라바 형님까지.”
사라가 그들이 온 목적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아, 그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미트라교는 저희가 잘 알아요.”
누보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사라와 바라바에게 말했고 중간중간 유리도 거들었다.
“우리 대신 숙제를 미리 다 해 놓으셨네요. 고맙습니다.”
요남이 누보와 유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어갔다,
“저도 여기 출신이지만 미트라교가 몇 년 사이에 그렇게 교세를 키울지는 몰랐어요.
이세벨이라는 부 교주의 이름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시몬 교주의 부인인데 눈 색깔이 파랗고 아주 이쁘게 생겼어요.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이고 우리와는 피를 나눈 사이지요. 하하.”
유리가 좀 더 설명을 하는데 두스가 포도주를 큰 병으로 가지고 왔다.
요남이 재빨리 한 잔씩 가득 따라 돌렸다.
“바라바 형님, 자유인이 되신 걸 축하드리고 앞으로 큰일 하시게 될 겁니다.”
누보가 잔을 들고 말했다.
“큰일은 무슨…. 나 때문에 고생하는 동료들도 아직 많은데 혼자만 나와서 미안할 뿐이지.”
바라바가 한 잔 마시고 유리를 향해 물었다,
“나발도 잘 있나 모르겠네요.”
광장호텔 로비에서 나발과 같이 있었던 유리를 기억하고 한 말이었다.
유리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힘없이 대답했다.
“저도 그 후에 못 만났어요.”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지자 사라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럼요. 잘 있겠지요. 여기 일 끝나면 곧 가서 만나야지요.
누보 씨는 앞으로 여기 계속 있을 건가요?”
누보가 유리를 한번 쳐다본 후 그의 계획을 말했다.
자기는 앞으로 세겜에 살면서 열성당을 재건하여 바라바 단장님을 모시고 유대 독립운동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네.”
요남이 하얀 포도주를 한 잔 더 따라 마시며 계속 말했다.
“나는 여기 일을 마치고 카멜 수용소에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다녀올 겁니다.
앞으로 큰 도움이 될 테니 내 자리는 비워 놓으세요. 하하.”
누보가 얼른 대답하지 않고 유리와 바라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보 씨의 생각은 알겠는데 조직을 만들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 텐데….”
사라의 걱정에 누보가 얼마 전 드디어 은전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곧 거처를 마련하여 유리와 같이 가정을 꾸릴 계획까지 말했다.
이것은 조금 전 바라바의 입에서 나발의 이름이 거론되자 나름대로 유리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리기 위한 발언이었다.
“아, 그랬구나! 어쩐지….
축하해요. 누보 씨와 유리 씨.”
사라가 포도주잔을 들어 두 사람을 위한 건배를 제의했고 누보는 단숨에 한 잔을 다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