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제자들과 선생을 따르던 몇 사람이 두려움과 충격 속에서 베다니에 모여 있었다.
베드로에게 예수 선생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을 아침에 처음 들었을 때는, 누가 시신을 가져갔는지만 생각했는데, 잠시 후 막달라 마리아가 와서 살아나신 선생님을 동굴 무덤에서 만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선생님의 시신을 어디 옮겼으면 알려 달라고 했으나 그가 ‘마리아’라고 부르셔서 예수 선생님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경악과 혼돈 속에 빠졌으나 몇몇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선생님이 며칠 전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여러분은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고 모두 나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먼저 갈 거예요.’
요한의 입에서 이 말이 술술 흘러나오자 마태가 바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요. 나도 그 말씀을 들었어요.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며 하신 말씀이에요.”
모인 사람들은 다시 한번 심한 수치심과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생전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피곤하고 지쳐서 쑥 들어간 눈매에 슬픔의 빛이 어렸다.
자신들의 비겁한 배신에 노여움을 품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베드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다른 제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정말로 선생님이 살아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보이셨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느 제자보다도 더 그분의 말씀과 뜻을 깊이 알고 있었고, 어렸을때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여성으로서 당신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한때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이 그녀의 마음에 크게 작용하여 선생이 살아났다는 환상을 본 것은 아닐까.
요한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모여 있는 방문이 열리면서 누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혹시 성전 경비대가 아직도 그들을 추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두 바짝 긴장하며 그쪽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램프가 그늘이 져서 그의 얼굴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요한 형님, 저 네리에요.”
아침에 엠마오로 갔던 네리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어, 네리구나. 웬일이야?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방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은 후 침착하게 말했다.
“예수 선생님을 만났어요.”
놀라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네리는 글로버 선생과 함께 엠마오라는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오늘 아침에 무덤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 또 이제 앞으로 예수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걱정하며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따스했지만 건조한 모래바람이 약간 불고 있었다.
풀도 거의 없고 바위만 듬성듬성 있는 시골길을 옆에서 걷던 행인 한 사람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두 분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며 걸으십니까?”
“예루살렘에서 오시는 분 같은데 요즘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모르시나 봐요.”
글로버 선생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사렛 예수라는 선지자를 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을 판결하여 며칠 전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오늘 새벽 무덤에 갔더니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엄청난 일들을 말해 주었다.
그 행인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놀라기는커녕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요.
여러 선지자의 글에 이미 나와 있고 예수도 살아 있을 때 자기는 그런 고난을 받고 영광의 길에 들어간다고 여러 번 말 했으니까요.”
그 행인은 선지자들의 글도 훤히 알고 있고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성싶었다.
나사렛 예수가 갈릴리에 곧 나타날 것이고 그의 제자들도 거기서 그를 만나 회개와 구원을 온 천하게 선포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런 대화를 하며 엠마오에 거의 다 이르렀으나 그 행인은 발길을 멈추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범상치 않은 행인의 말도 더 듣고 싶고, 해도 기울어가고 있어 그들은 행인에게 하룻밤 같이 지내자고 강력히 권했다.
시내 여관에 들어가서도 글로버와 네리는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나사렛 예수의 말씀은 선택된 백성만 구원받는다는 유대교의 선민사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앞으로 그의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퍼지게 되며, 이는 마치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네리가 그에게 넌지시 말해보았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선생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의리도 없고 용기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새 부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이미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나사렛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예수가 죽기 전 그들에게 한 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의 제자 중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가야바의 관저에서 심문받고 있을 때 그 집에 있었고 밖으로 끌려 나온 후에도 나무 뒤에서 선생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며 제자들은 이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네리의 말을 들은 베드로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그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나무 뒤에서 선생님을 몰래 본 것은 아무도 모르는데….”
이렇게 말한 후 베드로는 그때 선생의 눈동자와 순간적으로 마주친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네리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데 그분이 빵을 떼어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제야 우리의 눈이 밝아져 그 행인이 바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선생님인 줄 알았지요.
그러자 그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다시 한번 놀라며 그분을 길에서 만났을 때부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과 그분, 아니 예수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지요.
그래서 당장 여관을 나와서 이리로 온 거예요.
나사렛 예수가 분명히 살아나셨고, 우리가 그분을 만났다는 말씀을 하려고요.”
네리의 말이 끝나자 베드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선생님이 틀림없네.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신 후 거기로 가셨구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베드로와 네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