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예배가 끝나고 누보 일행은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식당에 모였다.
요즘 갑자기 팁을 후하게 주는 유리에게 두스가 더욱 친절하게 주문을 받았다.
카잔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로암에게 유리가 눈짓으로 일어나라는 시늉을 했고, 2층에서 식당으로 막 들어오는 레나에게 그 자리를 권했다.
“시몬이라는 교주가 카잔 님이 생각하던 그 사람이었나요?”
레나가 자리에 앉자마자 카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엄청나게 발전했더군요.
연설할 때도 설득력과 카리스마가 대단했어요.”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누보가 얼른 덧붙였다.
“저도 설교를 들어보니 미트라교에 금방 빠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황금 성배를 보았는데 멀리서지만 정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했어요.”
“아, 다음에 나도 같이 가서 봐야되겠네.”
두스가 따끈한 빵을 큰 바구니로 가득 가지고 나왔다.
“이 빵은 누룩을 조금 넣어서 만들었어요.
제가 특별히 주방장에게 부탁했지요. 누룩을 안 넣은 무교병은 너무 팍팍해요.”
그가 빵을 3개씩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유리 옆에 와서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제가 다시 알아봤는데 이세벨 부교주는 이 식당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어요.
그녀의 딸은 두세 번 왔었다고 하네요. 이름이 미리암이라던가….”
유리의 눈동자가 앞에 앉은 카잔의 눈동자와 부딪쳤다.
“그녀가 여기 혼자 왔나요?”
유리의 목소리가 커졌고 덩달아 두스도 크게 대답했다.
“사벳이라는 가정교사와 같이 왔었다고 해요.”
“미리암이 어떻게 생겼나?”
카잔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두스가 얼른 대답을 못 했다.
“여기 왔었으면 자네가 얼굴을 보았을 것 아닌가?”
“저는 꼬마라 별 신경을 안 써서 기억이 안 나는데 제 동생 마르스가 여관 입구에서 들어오는 그녀를 봐서 기억하더라고요.”
카잔의 추궁하는 듯한 질문에 두스가 야단맞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제 동생이 마침 주방에 와 있는데 잠깐 나오라고 할까요?”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스가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10년 전 아기 때 모습을 지금 알 수 있을까요?”
유리가 카잔에게 속삭였다.
카잔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붉어진 채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여로암이 유리에게 말했다.
“가정교사가 사벳이라면 제가 아는 여자 같은데요….
지난번 잠깐 여기도 왔었지요. 미트라교 성전 경호원으로도 일하고…”
“그래, 그 여자가 사벳이었어요. 나도 기억나요. 이쁘장한 여자.”
누보가 말을 마치고 유리를 바라보는데 두스가 동생 마르스를 앞세우고 주방에서 나왔다.
마르스는 입안 가득 빵을 우물우물 먹으면서 카잔에게 다가왔다.
“미리암이라는 여자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 좀 해줄래?”
유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음, 눈은 크고 까만색이고, 피부가 우유처럼 뽀얗고, 볼살이 통통해서 아주 깜찍하고 똘똘하게 생겼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빵을 꿀꺽 삼킨 후 그의 눈이 계속 식탁 위의 빵을 향해 있었다.
“그렇구나. 얼굴에 무슨 특징은 생각나는 게 없니?”
마르스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 콧잔등에 작은 까만 점이 하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카잔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유리가 식탁에 놓인 빵 두 개를 마르스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르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돌아가려다 유리에게 한 마디 더했다.
“혹시 미리암을 만나셔서 파란 나비 모양의 머리띠를 그녀가 찾으면, 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두스가 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가볍게 날렸다.
“그건 내가 훔친 게 아냐.
마차에서 그녀가 떨어뜨리고 간 거야.”
마르스가 형을 올려다보며 억울한 듯 말했다.
두스가 또 한 대 때리려다 말고 동생의 손을 끌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유리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카잔에게 물었다.
“미리암이 코에 까만 점이 있었나요?”
“응, 저 아이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나는데 코에 아주 작은 점이 있었어.
크면서 그 점이 더 또렸해졌나 봐….”
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녀가 바로 카잔의 딸 미리암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미리암 엄마의 피부가 그렇게 뽀얀 우윳빛이었지.”
“음, 그렇지만 코에 점이 있다고 반드시 그 미리암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요.
자기 딸이 어려서부터 코에 점이 있었다고 우기면 그만이니까요.”
누보가 신중하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그래도 이름이 같고 코에 점이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건데….
여하튼 그 아이를 한번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유리의 말에 여로암이 곧 바로 대답했다.
“제가 사벳을 만나서 언제 여기 식사하러 올 계획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아니, 곧 한번 데리고 오라고 할게요. 미리암을….”
“아,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네.”
카잔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카잔 님. 이제 따님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어요.”
레나가 옆에서 자신있게 말했다.
모두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우리 인간은 모두 저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예요.
상징적인 말이 아니고 실지로 인간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것, 바위, 금, 구리, 청동, 수은까지 모두 별의 성분과 같아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이 이 땅에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거지요.
그래서 부모 자식간에는 서로 끌리게 되어 있어요.
같은 별에서 나온 같은 성분이니까요.
미리암을 만나시면 분명히 서로 끌리는 강한 느낌을 받으실 거고 그건 미리암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밤 하늘의 은하와 인간은 모두 고향이 같아요.
우리는 모두 별들의 자손이지요.”
레나의 미소가 밝게 빛나면서 카잔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