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스는 바라바의 면담 요청을 즉시 받아들였다.
안토니아 탑의 원형 계단을 밧줄에 묶이지 않고 자유인의 몸으로 걸어 올라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칼로스 방 앞에서 알렉스 백부장이 웃는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바, 축하합니다.
앞으로는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합시다.”
바라바도 가볍게 미소로 답하고 칼로스 천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칼로스가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같이 들어온 알렉스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지금 총독 각하를 만나고 계십니다. 곧 오실 겁니다.”
알렉스가 대답하며 바라바에게 손을 위로 올리라는 동작을 했다.
“천부장님을 만나는 외부 사람은 몸 수색을 해야 합니다.”
그가 건성으로 몸을 한 번 훑은 후 바라바에게 자리를 권했다.
알렉스도 그 옆에 앉으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라바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지 몰랐어요.
아셀 단장보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 산헤드린 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아, 아셀 단장 님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지금 그리스말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한두 달밖에 안 되었지만, 꽤 많이 늘었다고 해요.”
알렉스의 회색 눈동자가 조롱의 빛을 띠었다.
아셀 단장은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칼로스가 들어왔다.
바라바와 알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부장이 다가와 바라바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를 찾아올 줄 알고 있었소.
자유인이 돼서 그런지 벌써 얼굴이 환하네.”
“우여곡절이 몇 번 있어서 그런지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음, 그랬지…. 독수리 깃발의 눈동자가 실수로 지워진 적도 있었고…
나도 더 도와줄 수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
칼로스가 평소와 다르게 말을 많이 하며 바라바를 반겼다.
“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좀 급히 만나 뵈려고 한 것은 저의 동료들 문제 때문입니다.”
칼로스가 바라바의 말을 중간에 끊고 알렉스에게 말했다.
“이제 바라바가 죄수 신분이 아닌데 차라도 한잔 가지고 오는 게 어떤가.”
알렉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천부장이 바라바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눈 없는 독수리 깃발을 가지고 온 로벤과 그 동료들은 유월절이 끝나면 모두 무기 징역이 선고될 텐데 그들의 선처를 부탁하러 왔지요?”
칼로스는 바라바가 온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로벤의 이름까지 기억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풀려났는데 그들만 중형을 받는다는 것은 법의 형평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나요.
모두 제 지시로 일어난 일인데요.”
“특사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오.
여러 사람 중 한 사람만 특별히 사면을 해주는 것이니까.”
바라바가 아무 말도 못하자 천부장이 슬며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수집해 오면 그들을 선처하도록 하겠소.
무기 징역이 선고되어도 재심을 청구하여 1년 이내의 유기로 만들고, 일반 사면을 받아 반년 이내에 모두 석방되도록 하겠소.”
바라바가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당신도 알겠지만 지금 우리 로마가 이 땅을 평화롭게 법으로 통치하고 있는데 사마리아 지역만 치외법권 같은 지역으로 남아 있어요.
그들은 유대인과도 원수처럼 지내지만, 몇 년 전 우리 군병들이 그리심 산의 산적들을 소탕하느라 몇백 명의 사마리아인들을 잡아 가두었는데, 그 후 우리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소.”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였고 천부장의 말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미트라교가 그 지역에 침투하여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조직적으로 우리 로마에 반항하기 위해 군사력을 기른다는 소문도 있어요.
바라바가 알아낼 정보는 이들의 조직과 인원이 얼마나 되며 과연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오.
할 수 있겠소?”
“네, 해야지요. 할 수 있습니다.
음, 그리고 죄수 한 사람을 이번에 저와 같이 사마리아에 갈 수 있도록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같은 감방에 있던 요남이라는 젊은이인데 고향이 세겜이라 같이 가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단 정보를 알아 온 후 다시 수감되는 조건이오.”
“알겠습니다. 곧 풀어주실 수 있는지요?”
바라바의 질문은 이런 일들을 천부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당신이 이 일로 올 줄 알고 조금 전 총독님께 보고드렸소.
이 정도의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지.
오늘 서류 절차를 시작하여 내일 해뜨기 전 석방시키겠소.”
칼로스가 시원하게 말했다.
요남이 놀라고 좋아할 생각을 하니 바라바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알렉스가 직접 차를 들고 들어왔고 계피 향이 진동했다.
저절로 루브리아의 크고 까만 눈동자가 떠오르며 바라바에게 미소지었다.
어떤 운명이 서로의 앞날을 장식할지는 몰라도, 나중에 그녀를 만나면 반드시 미소지으리라는 생각을 하는데 칼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바라바는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완전히 잊어버린 사실에 놀랐다,
“아, 네. 계피차 냄새가 참 향긋하네요.”
칼로스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기간은 앞으로 한 달이오.
빠를수록 동료들의 석방도 앞당겨질 거요.
어쩌면 우리가 다시 토벌대를 조직하여 그들의 뿌리를 뽑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세력이 너무 강해지기 전에 결정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오.”
“네, 알겠습니다. 모레라도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우리도 곧 카에사리아로 돌아갈 거니까 다음에는 거기서 만납시다.
아, 그리고 총독 각하께서 당신을 만나면 전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소.
지난번 로마에 보낸 청원서가 원로원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었다는군요.
빠르면 2~3달 안에 토의가 시작될 겁니다.”
“아, 네. 잘 되었네요. 그럼 이제 저는 동료들 면회를 좀 가봐야겠습니다.”
바라바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고 칼로스 천부장이 그 손을 세게 잡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