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 아가씨, 선생님 오셨어요.”
그녀의 방문 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알았어요. 곧 갈게요.”
그녀는 안식일에도 공부를 하라는 엄마가 못마땅했지만, 오늘은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미리암은 과일 접시에 무화과와 포도를 담아서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선생은 30대 초반의 얼굴이 조금 가무잡잡한 여자인데 웃을 때 보조개가 이쁘게 생겼다.
그녀는 보기와 달리 미트라교에서 경호업무도 맡고 있다고 들었는데, 올해 초부터 미리암의 가정교사로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 과일 좀 먼저 드세요.”
그녀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래, 미리암도 좀 많이 먹어.
오늘 보니까 살이 꽤 빠진 것 같아.
내가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어서 그런가? 호호.”
“아니에요. 요즘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좀 못했어요.”
대답하는 미리암의 얼굴이 까칠했고 통통하던 볼살이 쏙 들어갔다.
길고 까만 머리에 나비 모양의 노란 리본이 달린 그녀는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지난주에 공부한 사람들 이름은 다 기억하겠지?
위대한 철학자 중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람들.”
“네, 대강 외었어요.”
미리암의 대답이 힘이 없었다.
“내가 다시 정리해서 말해 줄 테니까 미리암은 들으면서 과일 좀 먹어.”
선생이 포도를 한 알 더 껍질째 씹어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리스 문명이 발생하면서 그 기초를 닦은 분들인데 대개 600년 전부터 400년 전에 사신 분들이지.”
미리암의 손이 무화과 열매로 향한 후 천천히 작은 것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시대별로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렇게 네 분의 이름을 알아야 하고 이들 중 한 사람의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는데도 대단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을 매달려도 제대로 알기 어렵지.
그중 세상의 근본은 ‘숫자’다 라고 주장하며 수학과 철학은 물론 음악의 기초를 이룩한 분은 피타고라스 선생인데, 이분은 젊었을 때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노예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그들의 문명을 배웠어요.”
가정교사의 말은 계속되었고 미리암은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다.
선생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알아듣기 쉬웠으나 그렇게 훌륭한 철학자들과 미리암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는 성싶었다.
한참을 더 자세히 설명을 하고 선생이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들은 것은 다 잘 이해하겠지?”
미리암이 입안의 과일을 삼킨 후 말했다.
“네, 선생님. 그런데 그런 훌륭한 분들도 미트라 신을 우리처럼 믿었나요?”
“음, 그렇지는 않았어. 그때는 아직 미트라교가 들어오기 전이니까…”
"아, 네….”
그녀가 약간 실망한 듯했다.
“약 100년 전에 로마가 페르시아를 침공했는데 의외로 큰 참패를 겪었지.
그래서 당시 페르시아의 미트라 신이 제우스 신을 이겼다고 생각해서 그 후부터 로마 군인들을 중심으로 미트라교가 은밀히 퍼지기 시작했어.
옛날 다윗왕이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것을 여호와 신이 바알 신을 이겼다고 생각했듯이.”
“로마가 전쟁에서 그렇게 진 적도 있었나요?”
“응, 당시에 로마는 삼두정치라고 해서 세 사람이 공동으로 수뇌부를 형성해서 통치했어요.
시저와 폼페이우스 그리고 크라수스였는데 이중 크라수스는 로마에서 제일 부자였고 전투에도 능한 장군이였어.
그 당시 스파르타쿠스라는 검투사 출신 노예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기세가 1년간 로마의 남부 여러 도시를 점령할 정도였는데, 이를 무참히 진압한 사람이 바로 크라수스였지.
이삼 만의 반란군은 대부분 가난한 농민이나 노예였는데 이들을 대부분 죽이고, 생포한 나머지 삼 천명을 모두 십자가 처형을 했어.
그 십자가들이 전장에서 로마로 가는 큰길 양쪽에 까마귀나 들개의 먹이가 되어 끝도 없이 늘어섰었지.”
“그 장군이 너무 잔인하네요. 삼천 명이나….”
미리암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응, 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거야.
그 후 크라수스는 페르시아를 침공하여 큰 전공을 세움으로써,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유일한 로마의 지배자가 되려고 했지.
오 만의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떠났지만, 결국 페르시아군의 전략에 말려서 목숨을 잃게 되고 말았어.
로마군 이만 명 이상이 죽었고 적군은 크라수스의 입안으로 뜨거운 쇳물을 부은 후 그의 머리를 잘랐어.
로마의 건국 이래 가장 큰 패배를 당한 전투였지.”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그 장군이 노예 반란을 너무 잔인하게 진압해서 그런 패배를 한 건 아닐까요?”
“글쎄,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
이후 시저가 정권을 잡았으나 심복에게 암살당한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이어 티베리우스 황제의 시대인 지금까지, 로마는 페르시아와 상호불가침 조약을 유지하고 있어.”
선생이 말을 마친 후 포도 한 알을 다시 입안에 집어넣었다.
미리암이 선생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사벳 선생님,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머리 색깔도 노란 사람이 많고 눈 색깔도 파란 사람이 있는데 대부분 엄마의 눈 색깔을 닮나요?”
“음, 엄마 아니면 아빠의 색깔을 닮는데…. 왜?”
“아니요. 그냥 물어봤어요.”
미리암은 궁금했던 것이 확인이 되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숨기며 가볍게 대답했다.
엄마 이세벨의 눈은 파란색이고 아빠의 눈은 갈색이다.
까만색의 눈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리암이 얼른 다른 질문을 했다.
“사벳 선생님은 미트라교에 언제 들어오셨나요?”
“응, 나는 한 삼 년 되었어.”
“아, 네. 혹시 신도 중에 한 십 년 전부터 있던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질문을 하는 미리암의 가슴이 콩캉거렸다.
“거의 없을걸. 그때는 막 시작할 때니까 탄압도 많이 받고 비밀리에 가정집에서 모였을 거야.
어떤 종교든 시작할 때는 기존 세력으로부터 이단이라고 배척당해요.
미트라교도 처음 여기에 뿌리를 내릴 때는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졌겠지.”
미리암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