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 안토니아 요새 정문 근처에 몇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바라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라와 네리가 차가운 새벽공기에 몸을 움추리며 서 있었고, 아몬과 헤스론은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요새의 정문이 열리기를 눈이 빠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저녁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집집마다 유월절 만찬이 있었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해가 늦게 뜨는 성싶었다.
하루종일 성전의 대량도살로 흘린 동물의 피가 아직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듯했고, 어디선가 아침을 재촉하는 참새 소리가 요란했다.
잠시 후 어둠이 조금씩 가시더니 감람산 오른쪽으로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라는 바라바의 상아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가 나오면 바로 건네주고 시온 호텔로 같이 가서 루브리아 언니와 만날 것이다.
하지만 바라바 오빠는 그녀가 곧바로 왕비와 함께 떠나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것을 알고 놀란 후 사라도 미사엘과 장래를 같이 할 거라는 말을 들으면 오빠의 심경이 어떨까….
처음부터 사라를 택해야 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데 드디어 육중한 안토니아 요새 정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갑옷을 입은 로마 경비병들이 양쪽으로 긴 창을 들고 서 있고 그 가운데로 피골이 상접한 노인 몇 명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반기는 가족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 뒤로 나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네리가 경비병에게 물었다.
지금 가석방으로 나온 사람이 전부고 오늘 석방은 끝났다고 한다.
무언가 또 잘못된 것이다.
해는 감람산 위로 동그란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니, 이게 또 어떻게 된 거야?
저 문을 확 때려 부숴야 하는데…”
헤스론이 사라에게 다가와 물었다.
“글쎄 말에요. 빨리 돌아가서 맥슨 백부장에게 알아보라고 해야겠어요.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네리를 통해서 연락드릴게요.”
네리는 이제 거의 사라의 비서처럼 같이 다니고 있었다.
시온 호텔에는 바라바가 올 걸로 잔뜩 기대했던 루브리아가 맥이 또 빠졌고 여행 준비를 하던 맥슨 백부장이 급히 안토니아 요새로 달려갔다.
“바라바 님이 나오는 것을 보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거야.”
루브리아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유타나가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별일 아닐 거예요. 너무 걱정마세요. 아가씨.
또 눈에 안좋은 영향이 올 수 있어요.”
“눈이 이제 확실히 예전과 느낌이 달라. 더는 나빠지지 않을 거야.”
“네. 그래야지요. 여하튼 오늘은 떠나셔야 해요.
로무스 대장님도 얼마나 걱정을 하고 계시겠어요.”
그 사이 사라가 식당에 내려가 아침 빵과 과일을 들고 올라왔다.
새벽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더니 시장기가 돌았다.
“맥슨 백부장이 곧 알아보고 올 테니 아침 좀 드세요.
아마 가야바 대제사장 밑에 있는 사람들의 장난일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루브리아가 유타나에게 마차를 준비시키며 말했다.
“음, 그렇다면 왕비님이 쉽게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거야.”
밀전병은 어제 만든 것인 듯 별로 맛이 없었다.
잠시 후 맥슨이 돌아와서 목을 다친 성전 경비대원의 고발이 있었는데 가야바의 묵인이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사라의 추측대로였다.
루브리아가 즉시 일어나 왕궁으로 향했다.
헤로디아 왕비의 시녀 장이 너무 일찍 온 루브리아를 보고 놀랐다.
“어머, 제가 시간을 잘못 말씀드렸나 봐요.
10시까지 오시면 되는데….”
“아니에요. 왕비님께 급히 말씀 드릴 일이 있어서 왔어요.”
시녀 장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안나스 대제사장님과 말씀 중이신데요. 조금 기다리셔야겠어요.”
“아니요. 당장 만나야 해요.
지금 못 만나면 오늘 나는 여행을 같이 떠날 수 없어요.
어서 들어가서 왕비님께 그렇게 전하세요.”
루브리아의 단호한 태도에 시녀장이 더 말을 못 하고 왕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안나스가 중요한 안건을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황제 폐하를 만나시면 잊지마시고 대제사장의 예복을 우리에게 반환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왕비님”
“그럼요. 그 중요한 일을 어찌 잊을 수 있나요.
가능한 내가 올 때 가지고 오도록 하겠어요.”
왕비가 조용히 들어와 옆에 서있는 시녀장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뭐라고 왕비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대제사장님.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옆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손님 대기실로 와보니 루브리아가 소파에 앉지도 않고 서서 기다렸다.
“무슨 일인데 여행을 못 간다는 거야?”
왕비의 눈썹이 올라갔다.
루브리아가 오늘 바라바가 못 나온 설명을 했고 헤로디아의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음, 알았어. 이왕 도와주는 거 확실히 해야지.
여하튼 떠날 준비하고 10시 조금 전에 이리로 와.
바라바가 나오는 것을 같이 눈으로 보고 출발하도록 하자.”
루브리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헤로디아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왔다.
안나스가 무슨 급한 일인데 왕비의 안색이 굳어 있는지 눈치를 살폈다.
“지금 프로클라 여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어제 빌라도 총독이 사면해준 바라바가 석방되지 않아서 총독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군요.”
눈을 끔벅이며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안나스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했다.
“가야바의 지시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성전 경비대원 한사람이 다시 바라바를 고발했다는데 모양새가 좋지 않아요.”
헤로디아가 계속 붉고 기름진 얼굴의 안나스를 보며 말했다.
“빌라도 충독의 체면도 있고 하니 일단은 석방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왕비님 말씀이 옳습니다.”
안나스가 머리를 숙이며 동의했다.
“내가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말할까요?”
“아닙니다. 제가 즉시 석방시키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10시 정각에 안토니아 요새 정문에서 나오도록 해 주세요.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떠나겠습니다.”
“네, 왕비님.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제가 없는 동안에 헤롯 전하를 잘 보필해 주세요.
티베리우스 황제 폐하를 만나서 로마와 군사 동맹을 다시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하면 나바테아 왕국도 감히 우리를 침략할 생각은 못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이 한 몸 다 바쳐 헤롯 전하를 충실히 모시고 있겠습니다.”
안나스가 일어서며 왕비에게 허리를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