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헴 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상상이 되지요?
오죽하면 저하고 결혼식도 연기하고 오반을 잡아 오라고 했겠어요.”
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에 오반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누보의 집 마당과 마나헴 님 책상 밑 금고에서 가져간 돈은 지금 어디 있나요?”
대답을 머뭇거리는 그에게 여로암이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목에다 바짝 들이대었다.
“마나헴 님 금고 돈은 내가 가지고 가지 않았어요.
아마 누보가 가져갔을 거예요.”
오반이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말했다.
“그럼 누보 집 마당 돈은?”
유리가 무화과 디저트를 맛있게 먹으며 물었다.
그가 얼른 대답을 안 하자 카잔이 물었다.
“지금 있는 집에 숨겨 놨겠지. 아닌가?”
여로암이 다시 그의 목에 단도를 대니 오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 어디에 숨겨 놓았나?”
오반이 대답을 하지 않고 몸통을 뒤틀며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유리가 급하게 물었다.
혹시 목에서 피가 났나 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묶인 줄을 좀 풀어주세요. 가슴이….”
“심장이 답답한가?”
오반이 충격으로 쓰러질까 봐 걱정되는 카잔의 목소리였다.
“그게 아니고 가슴에 넣은게 있는데 너무 세게 묶어서….”
여로암이 밧줄을 푼 후 그의 옷 속에 손을 넣어 나무 조각을 두 개 꺼냈다.
원뿔 모양이었다.
유리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계속 물었다,
“은전은 어디 있나요?”
“내 방 침대 밑에 넣어 놨어요.”
오반이 체념한 듯 대답했다.
“지금 그 방에 사촌 동생이 있나요?”
“아니요. 오늘은 밤늦게 들어 오라고 했어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아마 식사가 끝나면 오반이 집으로 카잔을 데려가려고 그랬을 것이다.
일이 편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유리가 계속 말했다.
“음, 은전은 우리가 계속 찾아보면 사실인지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오반 씨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좀 안 좋네요.
우리가 그래도 같이 지낸 시간이 짧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에 오반의 고개가 더 숙어졌다.
“오반 씨는 제가 생각하기에 선량하고 성실한 분인데 순간적으로 욕심이 눈을 가려서 이런 엄청난 일을 한 거 같아요.”
카잔이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도 오늘 잠깐 대화를 해보니까 정의감도 꽤 있는 사람이던데….”
오반이 고개를 들고 유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근데 제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호호, 그게 뭐가 궁금해요.
우리 엄마가 점성술을 하시잖아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오반에게 유리가 얼른 물었다.
“지금 있는 집이 어디예요?”
그가 주소를 말했고 여로암이 여기서 5분도 안 되는 거리라고 했다.
유리가 주소를 적은 쪽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오반에게 말했다.
“은전만 찾으면 마나헴 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요.”
그녀가 나가자 오반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유리 엄마가 점성술이 그렇게 대단한데 내가 있는 집은 왜 모를까’
카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어차피 먹으려고 가져 왔으니 무화과 디저트를 먹어야지.
여로암도 이제 옆에 앉아 같이 해.
오반 손은 풀어주고.”
손이 풀린 오반이 손을 움직이지 않자 여로암이 무화과를 한 쪽 집어주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은 진짜 여자인 줄 알겠소.
잠시나마 카잔 님이 부러웠지. 하하.”
오반이 긴장이 풀리는지 천천히 말했다.
“아까 새 신도 교육받을 때 청약수를 많이 마셔서 그런 거예요.
그거 마시면 여자가 이뻐 보여요.”
“맞다. 그거 서너 잔 마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물인가?”
카잔이 오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심 산 계곡 밑에서 나는 파란 약초를 땅꿀을 푼 물에다 끓여 달구어 만든 거래요.
한 잔 마시면 마음이 편해지고 두 잔 마시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마시다 안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고 불안해지나 봐요.
어떤 사람은 귀신 들려서 바알 신과 대화도 한대요.”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잘 아시오?”
오반의 말에 여로암이 되물었다.
“제 사촌이 알려주었어요.
근데 두 분은 ‘식카리’에서 온 분들인가요?
아까 제 목을 겨누던 단도는 아닌 것 같던데…”
“음, 우리는 그들과 관계없네.
당신 사촌이 식카리 아닌가?”
“네, 그것까지 알고 오셨군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거기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남자 3명이 무화과 디저트를 금방 다 먹었다.
카잔이 다시 물었다.
“실지로 미트라교에 돈을 내놓으려고 했었나?
아까 나에게 말한 대로?”
“네. 다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미트라교가 좋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목적이 있겠지?”
카잔이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오반이 또 순순히 말했다.
“네, 실은 돈을 내고 미트라교의 내부 실세에 접근해서 황금 성배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황금 성배를 청약수를 만드는 성배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럼 뭔가?”
“황금 성배의 어디엔가 쿰란 동굴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보물 지도가 표시되어 있대요.
원래 성배가 에세네파의 물건이니까 아마 그들의 보물이겠지요.”
오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리가 싱글벙글 들어오며 말했다.
“은전을 찾았어요.
이제 고생 끝이에요. 카잔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