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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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280화 ★ 오반의 어린 시절 꿈

wy 0 2024.04.17

 야곱 여관 식당은 오늘따라 저녁 손님이 좀 있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이고 내일은 안식일이라 그럴 것이다.

 

카잔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식당 구석 자리에 앉아 오반을 기다렸다.

 

오늘은 왜 혼자 오셨어요?”

 

종업원 두스가 옆에 와서 말을 걸었다.

 

, 따로 만날 사람이 좀 있어서.”

 

, 그러시군요

 

그런데 카잔 님, 앞으로 세겜에 얼마나 더 계실 건가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

 

두스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기 하루 방값이 너무 비싸요.

 

제가 잘 아는 민박집이 있는데 방도 넓고 가격도 반값이에요.

 

집주인 여자가 과부인데 참 친절하고 이뻐요.”

 

고마운 말인데 여기 며칠은 더 있을 거야.”

 

, 언제든지 옮기실 때 말씀해 주세요.”

 

카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은 오랜만에 분주했고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오반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놈이 혹시 눈치를 챘나 하고 불안해지는데 오반이 식당 입구로 들어왔다.

 

카잔이 손을 들어 흔들었고 오반이 반가운 걸음으로 단숨에 자리에 와 앞에 앉았다.

 

카잔 님, 오래 기다리셨나요?

 

예쁘게 하고 나오느라고 조금 늦었어요. 호호.”

 

그녀는, 아니 그는 눈과 입술에 더 진한 화장을 했고 새끼손톱만 한 빨간 루비가 박혀 있는 귀걸이를 했다.

 

그동안 벌써 은전을 꽤 많이 쓰고 다닌 성싶었다.

 

가슴에도 무엇을 넣었는지 상당히 크게 부풀려 놓았다.

 

카잔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카잔 님, 얼굴이 아까보다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으셨나요?”

 

그럼요. 이렇게 미리암 님을 만나는 게 재미있는 일이지요.”

 

호호, 미리암도 카잔 님을 딱 뵈었을 때부터 완전히 제 이상형이라 생각했어요.”

오반 카잔 collage.png

 

두스가 가까이 오더니 미리암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미리암 님.

 

오늘도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숭어 드릴까요?”

 

미리암은 오늘 카잔 님이 드시고 싶으신 거 먹을 거예요.

 

카잔 님, 여기서 제일 맛있고 비싼 음식으로 시키세요.

 

계산은 제가 할 거니까요.

 

, 그리고 포도주도 좋은 거로 한 병 먼저 가져오세요.”

 

카잔이 몇 가지 주문을 했고 두스가 바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고향이 혹시 갈릴리 쪽인가요?”

 

카잔이 슬쩍 물었다.

 

미리암은 고향이 가버나움이에요.

 

거기서 자라며 갈릴리 호수의 숭어를 많이 먹었어요.”

 

오반은 자신을 미리암이라고 부르면서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일부러 자기가 여자라는 최면을 거는 건지, 아니면 오반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실제로 미리암에 가까운 듯했다.

 

, 저도 사촌 동생이 가버나움에 살아서 예전에 가끔 갔었습니다.

 

작지만 호숫가도 아름답고 주민들도 친절하더군요.”

 

, 맞아요. 어부들이 고기를 그물이 찢어질 듯 담아 올리며 즐거워하는 마을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답니다.”

 

두스가 노란빛이 감도는 백포도주 한 병을 가지고 와 큰 잔에 가득 따라 주었다.

 

은은한 박하꽃 향기가 퍼져 나왔고 한 입 마셔보니 생각보다 달지는 않았다.

 

호수에서 고기가 덜 잡혀서 그런가요?”

 

카잔이 궁금한 듯 물었다.

 

, 그것보다 여러 가지 세금이 문제에요.

 

특히 제사장들에게 내는 종교세와 예루살렘 성전세는 엄청나게 올랐어요.

 

카잔 님, 미리암의 어렸을 때 꿈이 뭔지 아세요?”

 

오반이 포도주 한 잔을 벌써 비우며 물었다.

 

내가 네 어렸을 때 꿈을 어떻게 알겠니?’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오반의 말이 이어졌다.

 

미리암은 유대교 서기관이 되고 싶었답니다.”

 

, 서기관이라면 유대 율법을 공부하고 해석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인데 여자가 할 수 있나요?”

 

카잔의 질문에 오반이 곧 말을 바꾸었다.

 

, 그러니까요. 시험을 보려고 공부했는데 여자라 안 되더군요.

 

미리암이 남자라면 참 좋았을 텐데. 호호.”

 

마침 두스가 기름진 꿩 요리와 향신료를 많이 넣은 숭어요리를 가지고 오며 말했다.

 

그리심 산에서 잡은 꿩이라네요

 

남자에게 참 좋다는데 많이 드세요."

 

오반이 눈웃음을 살짝 치면서 꿩 요리 접시를 카잔 앞으로 밀어 놓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여자 손 같았고 길게 기른 새끼손톱에는 까만색을 칠했다.

 

꿩고기는 보기보다 맛이 없었다.

 

음식을 먹느라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미리암 님은 어떻게 미트라교에 들어오게 되었나요?”

 

숭어 생선 가시를 양손으로 발라내며 열심히 먹던 오반이 입가를 수건으로 얌전하게 닦았다.

 

어려서부터 믿었던 유대교에 환멸을 느껴서 오게 되었어요.”

 

그가 포도주를 한 모금 꿀꺽 삼키고 카잔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오늘 저녁이 유월절이라고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는데 카잔 님은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아세요?”

,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여호와 신을 모신 성전이 있는 곳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곳은 불쌍한 짐승들이 대량 도살되고 그 피와 배설물이 넘쳐 흐르는 잔혹하고 더러운 도시에요

 

순례객들은 1년에 한 번 비둘기나 양 한 마리 죽이고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착각에 빠져 기뻐하지요.

 

이들을 속이고 그런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은 사기꾼 집단이고요

 

그 위에는 폭력과 뇌물로 권력을 잡은 대제사장과 헤롯왕이 버티고 있지요.”

 

갑자기 생긴 것과 다르게 강경한 발언을 하는 오반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 아니 미리암 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의 입에서 오반이라는 말이 거의 튀어나올 뻔했다.

 

미리암이 이래 봬도 대제사장의 갈릴리 지역 경호실에 근무했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행태를 옆에서 늘 보니까 잘 알지요.”

 

, 그러셨군요.”

 

카잔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더욱 신이 났다.

 

. 한동안 멋도 모르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죄 없는 사람들도 여럿 체포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을 도와줘야 했는데 오히려 괴롭혔어요.

 

적어도 미리암이 공부한 율법에는 그렇게 되어있어요.”

 

오반의 새로운 면모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나요?”

 

. 대부분 글을 못 읽으니까요.”

 

그래도 그런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단한 용기 같습니다.”

 

, 그동안 미리암이 모은 돈도 몽땅 미트라교의 발전을 위해 쓰려고 해요.”

 

카잔의 가슴이 덜컹했다.

 

두스가 사마리아 땅꿀로 버무린 무화과 디저트를 상 위에 놓으며 물었다.

 

포도주 한 병 더 가져올까요?”

 

아니, 오늘은 그만해야지. 벌써 취하네.”

 

두스가 물러난 후 생선을 먹고 있는 오반에게 카잔이 넌지시 말했다.

 

미리암 님, 이 디저트는 제 사촌 동생이 있는 방에 가져가서 먹을까요?”

 

오반이 생선을 얼른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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