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어둠이 깃들었고 집집마다 유월절 만찬이 시작되었다.
안토니아탑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도 양고기와 쓴나물이 특식으로 나왔다.
“이왕이면 계란과 소금물도 주면 좋은데…. 살몬님이 빨리 나가셔야 그렇게 되겠지요.”
요남이 양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말했다.
“음, 그래야지.
근데 여기 있어 보니까 평소에 수용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과일이나 채소야.
그런 게 부족해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빨이 흔들려서 빠지는 것 같아.
여기 2~3년 있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이빨이 나빠지는데 눈은 감옥 안이 늘 어두워서 그럴 것이고, 이빨은 밖에서 먹다가 못 먹는 것이 싱싱한 과일과 야채니까 그걸 못 먹어서 그런 것 같아.”
이삭이 말없이 식사하는 바라바에게 물었다.
“바라바 님은 이제 나가면 열성단 활동을 계속할 거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더라도 오래는 안 할 생각입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모두 바라바를 바라보았다.
“동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열성단을 이끌어 갈 후임을 선정한 후 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음, 평범한 삶이라면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하루하루를 즐겁고 편안히 지낸다는 뜻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바라바의 대답이 선선했다.
“장래를 약속한 상대는 있나요?”
“네, 있기는 있는데 저와 환경이 많이 틀린 사람이라…. “
요남이 얼른 물었다.
“환경이 틀리다니 사마리아 여자인가요? 아니면… 혹시 로마여자?”
바라바가 싱긋 웃고 대답을 안 하자 이삭이 다른 질문을 했다.
“지난번 들은 바로는 바라바, 아니 ‘예수 바라바’의 이름으로 로마 황제에게 청원서가 들어갔는데 그 문제는 어찌 되나요?”
“아, 그 일은 제가 끝까지 개입해야겠지요.”
“음, 그 문제는 이 땅의 유대인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나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과도 직결된 일이라 세계적으로 대표사절단을 구성해서 가는 게 좋을 거요.”
“네, 성전세 인하와 여행 자유화는 오히려 외국의 유대인들이 더 관심이 있겠네요.”
“지금 알렉산드리아에 유대인 백만이 사는데 단일도시로는 예루살렘보다 훨씬 더 많은 거지요.
거기에 필로 선생이 계시는데 그분이 로마에 같이 가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그분 말씀을 몇 번 들었어요.
유대의 ‘플라톤’이라는 분이지요.”
“맞아요. 그리고 유대 율법 선생 중 글로버라고, 필로 선생에게 직접 배운 제자가 있어요.
니고데모 님이 글로버 선생을 아니까 소개해 달라고 해요.”
“글로버 선생님은 제가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더 잘 되었네.
그를 만나서 필로 선생의 도움을 요청해 봐요.”
바라바는 루브리아를 처음 만나고 얼마 후 글로버 선생을 모시고 맛있는 생선요리와 포도주를 먹던 기억이 났다.
참 희망이 가득 찼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네, 나가서 곧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삭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말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 아무쪼록 생각대로 잘 되기 바라요.”
“네, 고맙습니다. 이번에 여기서 이삭 님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천만에요. 그리 생각해 주니 내가 고맙지요. 허허.”
“살몬 님도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바라바의 인사에 살몬이 대답을 하려는데 식구 통으로 간수 한 사람이 살몬을 급히 찾았다.
간수가 살몬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이는데 살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내용인지 보통 때보다 간수의 말이 길었고 은근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눈썹을 찌푸리며 살몬이 자리로 돌아와 천천히 입을 뗐다.
“누가 조금 전 바라바 님을 또 고발해서 내일 석방은 보류되었다고 하네요.”
감방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고 바라바의 얼굴이 횃불 속에서 흔들렸다.
“누가 무슨 건으로 고발했나요?”
요남이 물었다.
“누군지는 모르고 고발내용은 ‘폭행상해’라는데 피해자가 목을 다쳤다고 하네.
내용 자체는 별 게 아니지만, 내일 못 나가게 되어서….”
바라바는 집히는 데가 있었다.
헤스론과 싸우다 다친 황소 같은 놈의 고발일 거고 분명히 또 마나헴의 농간이리라.
순간적으로 그를 당장 죽이고 싶은 살의가 솟구쳤다.
“너무 낙심하지 마시오. 그 정도라면 여하튼 곧 나가게 될 거요.
실망이 크겠지만 오늘 아침만 해도 특사가 안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이삭이 위안의 말을 했다.
그의 말이 일리 있었지만,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다.
다음에는 반드시 마나헴을 없애버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라바가 아무 말 없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살몬이 다시 말했다.
“또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은, 오늘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당했어요.
어젯밤 감람산에서 기도하다가 체포당했나 봐요.”
“나사렛 예수라면 살몬 님이 작년에 봤던, 그 간음한 여인을 구해주었던 사람 아닌가요?”
요남이 얼른 그 일을 기억했다.
살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은 성싶었다.
“음, 아까운 젊은이가 또 광신도들에게 희생되었네.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를 잘 알지도 못할 텐데….”
이삭이 애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빌라도는 처음에 살려주려고 했나 봐요.”
“그런데?”
“그런데 예수 대신 바라바를 살리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처형지시를 했다네요.
그러니까 바라바 님 대신 그렇게….”
“아,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바라바를 연호하는 소리가 났었구나.”
요남의 목소리가 바라바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사렛 예수가 오늘 아침 자기 대신 십자가에 달렸다.
그분은 루브리아의 눈도 얼마 전 고쳐주었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세상에는 끝까지 나를 쫓아다니며 해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아무 대가 없이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살몬의 굵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처형장에 예수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네.
비겁한 놈들… 내가 밖에 있었으면 끝까지 그 옆에 있었을 텐데… “
분노에 찬 살몬의 얼굴이 어슴푸레한 횃불에 잠겨 더욱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