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자 환영 다과회에는 사마리아 땅벌 꿀로 버무린 과자와 오렌지, 포도 등이 나왔다.
식탁 위에 청약수도 있는데 ‘한사람이 두 잔씩만’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여자들이 한가득씩 두 잔을 채워서 마시고 있었다.
오반이 카잔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눈웃음을 쳤다.
그의 눈길을 얼른 피하며 혹시라도 눈치를 챘나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유리가 점을 보는 집에서 누보가 묶여 나왔을 때, 그를 도망치게 하느라 황소 같은 놈과 싸웠고 그때는 이미 오반은 도망가는 누보를 쫓아가고 있었다.
다시 그를 쳐다보니 여장이 꽤 잘 어울렸다.
갸르스름한 얼굴에 보라색 눈화장을 진하게 했고 보석이 박힌 화려한 귀걸이도 매달았다.
그새 누보네 집에서 가져간 돈으로 산 것인 성싶었다.
그녀가, 아니 그가 카잔을 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이번에는 카잔도 눈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과자 좀 드세요. 맛있어요.”
오반의 목소리는 높고 가늘어서 모르는 사람은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네. 먹었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나요?”
오반의 손에 청약수 한 컵이 들려있었다.
“저는 원래 세겜이 고향입니다.”
“그러시군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콧수염도 멋있고 너무 인상이 좋으세요.”
카잔은 그제야 오반이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인 것을 눈치챘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어깨까지 내려온 갈색 머리가 가발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카잔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한 오반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갈릴리가 고향인데 사촌 동생을 따라서 여기 오게 되었어요.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호호.”
그가 여자처럼 웃었다.
“네. 그러지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어머, 남자분이 먼저 말씀을 해주셔야 예의지요. 호호.”
“아, 네. 저는 카잔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멋지시네요. 저는 미리암이에요.”
카잔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필이면 미리암이라니, 순간 어린 딸의 모습이 스쳤다.
“왜요. 미리암이라는 여자 친구라도 있으신가요?”
오반의 눈치가 빨랐다.
“아니요. 나중에 애를 낳으면 지으려고 한 이름이라서요.”
“어머, 그럼 아직 미혼이세요?”
“네”
“세겜 여자들이 문제가 많네요.
이런 분이 아직도 총각이시라니. 호호.”
청약수를 맛있게 한 모금 꿀꺽 삼킨 후 그가 계속 말했다.
“그럼 이렇게 새 신도 모임에서 만난 기념으로 제가 오늘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이 되시나요?”
카잔을 바라보는 오반의 눈이 묘하게 이글거렸다.
“네, 좋습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제가 여기 아는 곳이 없어요. 카잔 님이 편하신 대로 정해주세요.”
“음, 그럼 샤론 여관 1층에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뵐까요?”
“네, 샤론 여관, 저도 며칠 전까지 있었어요.”
목소리에 즐거움이 배어있었다.
며칠만 일찍 왔어도 오반을 거기서 딱 만날 뻔 했다.
“네, 그럼 저녁 7시에 거기서 만나지요.
근데 사촌 동생은 같이 안 오나요?”
“네, 걔는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있을 거예요.”
오반이 테이블 위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키 큰 여자에게 윙크를 슬쩍하며 말했다.
누보 집에서 자다가 묶인 사내였다.
일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하는데 오반이 물었다.
“카잔 님은 샤론 여관에 계신가요?”
“아니요. 저는 시내에 집이 있고 지금 여관에 제 사촌 동생이 와 있어요.”
“아, 그럼 우리 먼저 만나고 나중에 또 동생끼리 소개해주면 되겠어요. 호호.”
여로암이 청약수를 한잔 따라서 카잔에게 가져다 주었다.
“이분이 동생인가요?”
“아니에요. 이 사람은 제 친구 동생이에요.”
오반이 여로암에게 고개를 까닥 숙이며 인사를 했고 금귀걸이가 찰랑거렸다.
“청약수가 좋다고 해서 석 잔을 마셨더니 좀 졸리네요. 하하.”
여로암의 유쾌한 웃음이 기분 좋게 들렸다.
샤론 여관 마당은 햇빛이 잘 들고 높은 야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같이 다니며 안면을 익힌 누보의 엄마와 레나가 같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거리며 불어왔다.
“레나 님이 보시기에 우리 누보가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나요?”
그녀가 점성술을 한다는 말을 듣고 넌지시 물은 것이다.
“누보의 별자리와 그 변화를 아직 안 봤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대답이 너무 직선적이라 생각했는지 레나가 덧붙였다.
“대개 별자리가 좋은 사람은 부모님께 잘하는데 누보도 그러니까 앞으로 잘 될 것 같아요.”
금방 얼굴이 밝아진 누보 엄마가 계속 말했다.
“누보가 효자이긴 하지요. 그런데 별자리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럼요. 하늘의 운행은 4계절 내내 일정하고, 어떤 별은 태어났다가 곧 사라지기도 하고, 또 불꽃을 일으키며 몇십 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별도 있답니다.”
“아, 그럼 그런 별이 보일 때마다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나요?”
“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요.
위대한 장군이나 왕이 태어나기도 하니까요.
약 30년 전에 밤하늘의 별 중 일정한 궤도의 목성과 토성이 놀랍게도 거의 부딪칠 뻔 가까이 접근했었는데 이때 위대한 인물이 태어났을 거예요.”
“30년 전이면 헤롯왕은 아니고 누굴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레나의 말이 끝나자 누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계셨군요.”
드디어 누보가 오반을 찾았고 그가 여장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카잔 님이 조심해야겠구나.”
레나가 카잔을 걱정하자 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벌써 카잔 님을 챙기고 있네. 호호.”
레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엄마, 그러고 보니 오반이 좀 이상하긴 했어요.
마나헴 때문이라 생각했었는데, 같이 지내면서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안 하고 별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음, 맞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 사촌이라는 사람은 아마 남자, 여자 모두 좋아할 수 있을 거고…. 요즘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하더라.”
“네. 특히 로마에는 귀족이나 장군들 가운데도 그런 소문이 많아요.
심지어 시저 장군도 젊었을때 소아시아의 비티네아 왕과 그런 관계가 있어서 ‘비티네아 왕비’ 라고 원로원 위원들이 뒤에서 놀렸다고 해요. 호호.”
“여하튼 오반을 드디어 찾았으니 여기까지 쫓아온 보람이 있네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은전을 되찾아 새로운 시작을 해야지요.”
“그래야지요. 카잔 님이 그놈의 거처를 알아 가지고 오실 거예요.”
누보와 유리가 서로 쳐다보며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