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호텔로 돌아온 루브리아의 왼눈을 탈레스 선생이 들여다 보았다.
“바늘 같은 가시 한 개가 눈동자에 박혀 있네요.”
“네, 이마에도 몇 개 있었는데 제가 떼어냈어요.
갑자기 가시가 바람에 날아왔어요.”
“갑자기 바람이 불었나요?” 선생이 놀란 듯이 물었다.
“네. 골고다 언덕은 작은 가시나무만 듬성듬성 나 있어서 황량해요.”
사라의 설명을 듣고도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빼낼 수 없나요?”
루브리아가 걱정하며 물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선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방에 가더니 곧 제일 큰 돋보기와 핀셋 등을 가지고 왔다.
그런 다음 창가의 밝은 곳에 루브리아를 누인 후 머리를 베개로 고정했다.
햇빛이 환히 잘 들어와 그녀의 눈을 비쳐주고 있었다.
탈레스 선생이 핀셋으로 조심스레 가시를 뽑아내었다.
“아프지 않으셨지요?”
“네, 전혀 안 아팠어요.”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처음 박힐 때는 따끔했는데 집에 오는 동안 뭔가 시원한 기분이 들었어요.”
선생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인 후 다시 루브리아의 눈을 돋보기로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음, 놀라운 일입니다.
눈에서 바다 색깔이 없어졌어요.”
“어머, 그럼 눈이 나은 거예요?”
루브리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전처럼 좋아지기는 어렵지만 이제 실명은 안 됩니다.”
“실명만 안 되면 아무 걱정이 없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루브리아가 상체를 일으키며 선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감사는 제가 이 가시에게 해야지요.
제가 오늘 하려던 수술이 바로 이거였어요.
한번 보시지요.”
그가 아주 작고 날카로운 바늘을 루브리아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뭐예요?”
“마지막 방법으로 이 바늘로 눈동자 중앙을 찌르는 수술을 하려고 오늘 아침부터 바늘 끝을 가늘게 갈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면 가시나무 바늘이 그 작용을 했네요.”
“네, 제가 만든 바늘보다 훨씬 가늘어서 더 잘 되었습니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시술을 하면 열 명 중 서너 명의 눈에서 바다 색깔이 없어지는데 아마 눈 속에 있는 나쁜 액체가 빠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의 말이 귓전을 스치며 루브리아는 예수 선생의 가시관을 쓴 피 흘린 얼굴이, 그녀를 바라보던 그윽한 눈길이 크게 떠올랐다.
가슴이 저려왔다.
잠시 후 루브리아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혹시 예수 선생님이 고쳐 주신건가요?
당신은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리면서…”
그녀의 양쪽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사라도 눈이 벌개지며 탈레스 선생을 바라보았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어느 날 일어나는 우연에 의해 그의 존재함을 인간에게 알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선생의 말이 끝나자 한낮에 이상하게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여하튼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푹 좀 쉬세요.”
탈레스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루브리아의 눈에 박혔던 가시를 다시 살펴보았다.
가시에 무언가 살짝 묻어 있는 게 있었다.
돋보기를 대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붉은 색깔이 사람의 피인 듯했다.
누보가 귓속말로 카잔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오른 쪽에 앉아 있는 여자가 오반이 변장한 것 같아요.
저 놈들이 카잔님의 얼굴을 모르지요?”
“그럼, 오반은 마주친 적이 없고, 사촌은 복면을 쓰고 들어가 잡았으니까.”
이세벨이 미트라교의 주요 교리에 대해 계속 말했다.
미트라신이 신 중의 신이고, 제우스신과 여호와신도 그 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신도가 미트라신의 은혜로 한 가족이 되어 아버지가 여럿이 되고 자식도 여럿이 됨으로써 모계 사회를 중심으로 온전한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는 이론이 줄줄 읊어졌다.
“그러니까 여러분,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는 어릴 때 노는 것부터 다릅니다.
여자는 인형을 가지고 예뻐하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놀이를 하는데, 남자는 전쟁놀이, 땅따먹기, 막대기로 나무 치기 등 싸우는 놀이만 합니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나 한 동네를 이루고, 그게 점점 커져 결국 세계 가족이 되면 어떻게 서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
오늘 여기도 남자 세 분이 와 계시지만 제 말에 동의하시지요?”
이세벨의 말에 앞에 앉아 있던 여자들이 슬쩍 뒤를 돌아 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오른 쪽 여자가 오반이 틀림없었다.
누보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반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오늘 교육이 끝나면 간단한 다과회가 있습니다.
62회 새신도 여러분이 함께 친목을 도모하고, 미트라신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청약수도 큰 통으로 있으니 한 사람이 두 잔까지는 마셔도 됩니다.”
유리가 누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과회에서 우리 두 사람은 빠지는 게 좋겠어요.
변장을 했지만 만나서 말을 섞다 보면 곧 들통날 거예요.”
누보가 고개를 끄떡이고 카잔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리고 모레 일요일 대강당에서 열리는 시몬 교주님의 집회에 반드시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은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집회를 마칠까 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아까 로마 황제의 이름을 물었던 여자가 또 손을 들었다.
“무슨 질문이든 해도 되나요?”
“네, 그럼요”
이세벨이 미소로 답했다.
“교주님 이름이 시몬이라면 남자분 같은데 미트라교의 여성 중심 교리에 어긋나는 건 아닌가요? “
그녀의 질문에 분위기가 돌연 긴장되었다.
“시몬님은 모세의 황금 성배를 찾으시고, 오늘날 이 땅에 미트라교를 세우신 분입니다.
하지만 평생 교주로 있지는 않으실 겁니다.
이미 후계자로 따님을 키우고 계시는데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다음 교주는 여성이 맡게 될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오늘 교육을 끝내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이세벨이 건장한 남자 신도의 호위를 받으며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