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 요새 지하 감옥에 있는 바라바의 귀에도 찬미가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게 된 것을 축하해주는 감미로운 합창이었다.
아침부터 ‘바라바’라는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몇 번 크게 들리더니 간수 하나가 살몬에게 와서 기쁜 소식을 알렸다.
가슴이 환희의 물결로 가득찼고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틀림없이 루브리아가 뒤에서 힘을 썼을 것이다.
그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가 떠오르며 그녀를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유월절은 공식적으로는 오늘 저녁 해가 떨어지는 시간부터 시작이지만, 죄수들의 석방은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시행합니다.”
살몬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
“사형수 특사는 물론이고 형기가 끝나는 일반 죄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야 밤에 나가서 바로 술을 마시거나 어두운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지요.
사실 당장 나가서 갈 곳이 없는 죄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바라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구통이 열리고 유월절 특식이 들어왔다.
감방 안이 더욱 밝아졌고, 돌아다니던 간수들도 덩달아 웃으며 다녔다.
“바라바님은 나가시면 어디로 가실건가요?”
요남이 물었다.
“음, 여기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고향으로 가야지…. 아버지가 기다리시니까…”
그러고 보니 또 한동안 아버지 생각을 전혀 못했다.
“좋으시겠어요. 아버지가 기다리시는 집이 있으시니….”
그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이삭이 주머니에서 며칠 전 받은 목걸이와 서신을 다시 꺼내었다.
“자,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이제 돌려줍니다.
고향에 가기 전에 니고데모님은 만나보세요.
서신 받으면 반가워 할 거예요.”
바라바가 서신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은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거니 곧 나가는 것이 더욱 실감났다.
요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바라바님이 나가시니 저도 빨리 나가고 싶네요.
바라바님은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느닷없는 질문에 얼른 대답을 못하자 요남이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법을 정의하자면 한마디로 뭐지요?
살몬님이 법을 집행하셨으니 잘 아시겠네요. ”
살몬이 특식으로 들어 온 양의 정강이 뼈를 맛있게 먹다가 대답했다.
“음, 글쎄. 법을 정의해 보면, 법은 ‘정의’지.
단 힘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만든.”
요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 같네요.
이삭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산헤드린 의원이셨는데.”
“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법은 율법에 기초해 있으니까 한마디로 ‘믿음’이라고 할까?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에 대한 믿음.”
요남이 바라바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 생각에 법은 ‘약속’ 같은데, 같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키기로 정한 중요한 약속.”
“그렇지요. 다 그럴듯한 말씀이네요.”
“요남아, 갑자기 웬 법 타령이니?
네 생각은 뭐냐?”
살몬이 화살을 요남에게 돌렸다.
“밖에서 누가 저에게 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법은 정의도 믿음도 약속도 아닌 순 엉터리’라고 말하겠어요.”
그의 파격적인 대답에 모두 요남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언제 나가느냐 아닙니까?”
요남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계속 말했다.
“법이 정한 가석방 규정을 보면 형기의 3분의 1을 지낸 사람은 가석방으로 나갈 수 있다고 되어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3분의 1은커녕 2분의 1에도 나간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90퍼센트 이상 채워야 나갑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데 법이 어떻게 약속이 됩니까.
‘약속’이라면 지키지 않는 약속이고, ‘믿음’이라면 헛된 믿음이지요.”
“응, 그래. 요남아, 그 규정에 대해서는 네 말이 맞다.
전혀 시행하지 않는 법이라면 없애든지 아니면 2분의 1로 바꾸어서 우수한 수형자에게 적용을 시키든지 해야지.
나도 밖에서 수형자를 지도하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못 했는데 들어와 보니 실감이 나네.”
“네, 그러니까 그런 기본이 되고, 수형자에게 도움이 되는 법은 전혀 안 지켜지고, 징계하고 처벌하는 법은 사정없이 지켜지는, 이런 법은 ‘엉터리’ 예요.”
이삭이 가만히 듣다가 한마디했다.
“그건 앞으로 개선돼야 하겠네.
형벌로 사람의 행동을 제재할 수는 있지만 더 나은 사람을 만들 수는 없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죄송해요. 바라바님이 내일 아침에 나가신다니까 저도 나가고 싶어서 평소에 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을 털어 놓았나 봐요.
근데 살몬님, 지난번에 여기서 탈주할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요남의 눈에서 강력한 의지가 엿보였다.
“음, 그렇긴 한데 대단히 위험해.
시간도 걸리고 성공해도 평생을 도망 다니며 그늘에서 살아야 해.
여기서 사면을 기다리는 게 좋아.
가야바만 대제사장 자리에서 내려오면 대대적인 사면령이 떨어질 거야.”
“가야바는 언제 바뀌는데요?”
“지금 대제사장을 맡은지 15년이 지났는데, 끝날 때가 되었어.
안나스가 아들 요나단을 자리에 앉히고 싶을 테니까….”
“그래도 저는 하루라도 빨리 탈주하고 싶어요.
나가서 도망자로 사는 것은 어차피 열성단 일을 할 거니까 마찬가지에요.
이제 지네를 구워 먹는 것도 질렸어요.”
성전에서 들려오는 찬미가 소리가 멈추었고 요남의 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저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고향 애인을 카멜 강제 수용소에서 빨리 구해 줘야 해요.”
그의 목소리가 절실했다.
“자네 애인 이름이 뭐지?”
바라바가 넌지시 물었다.
“나오미예요. 세겜이 고향인 나오미.”
“음, 내가 나가서 카멜 수용소에 있는 나오미를 만나 자네 안부를 전해 줄게.
그러면 힘이 나서 잘 기다릴 수 있을 거야.”
요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 그래주시면 너무 고맙지요.
제가 곧 간다고 해주세요.”
“그래. 그 대신 탈주는 위험하니까 사면을 기다리게. 아마 곧 있을 거야.”
“네. 그리고 나오미의 친척 언니가 세겜에 사는데 세겜 촌장님이 아실 거예요.
그 언니가 나오미의 면회를 가끔 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음, 그래. 여하튼 마음 편하게 먹고 있게.
우선 안부 잘 전하고 나오미가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볼 테니까.”
“네,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 내 생명이 연장되면 카멜 수용소에 간다고 말했었잖나.
우선 내가 먼저 갈 테니까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요남이 바라바의 오른 손을 두손으로 꼭 잡았다.
바라바는 고향에 가서 아버지를 뵙고 카멜 수용소에 다녀 온 후 루브리아와 카프리섬으로 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