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라교의 새신자 교육은 며칠 전 누보 일행이 피를 섞어 성수에 타서 마신 방에서 거행되었다.
‘제62회 새신자 교육’ 이라고 크게 쓴 글씨가 벽 정면에 붙어 있었다.
오반은 안 나오겠지만, 누보는 수염을 붙였고 유리는 얇은 면사포를 썼다.
앞자리에 네다섯 명의 여자 신도만 긴 의자에 앉아서 교육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모습으로 봐서 비교적 젊은 여자들 같았다.
사벳의 말대로 남자는 없었다.
카잔과 여로암도 조용히 누보 옆에 앉았다.
앞 테이블 위에 큰 물병이 또 하나 있었다.
곧 중앙 강당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부교주 이세벨이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
그녀의 파란 눈이 새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역시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오늘 제62회 새신자 교육에 오신 분들께 미트라신의 축복이 임하십니다.”
앞에 앉은 여자들이 박수를 쳤고 누보도 살짝 손바닥을 부딪쳤다.
“지금 모이신 분들은 얼마 전 등록을 하셔서 제가 얼굴이 대개 기억납니다.
모두 더 건강해 보이시고 밝아지셨어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별 대답이 없자 그녀가 계속 말했다.
“우리 모두 성수에 피를 섞어 마셔서 그런 겁니다.
제 피를 여러분이 마셨고 저도 여러분의 피를 마셨지요.
거룩한 미트라신의 피가 우리 몸속에 흐르게 된 것입니다.”
앞에 앉은 여자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러한 미트라신이 누구인가.
우리는 먼저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트라신은 신들의 왕입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우리는 다른 종교처럼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이세벨이 앞에 놓인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물 색깔이 약간 파란 듯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로마지요.
이 로마를 실제로 통일하고 번영시켜 오늘의 제국을 만든 분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갑자기 웬 역사 얘기를 하나 싶었는데 앞에 앉은 머리 긴 여자가 번쩍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황제 이름은 가이사 아닌가요?”
이세벨이 살짝 웃은 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가이사’라는 장군이 있었지요.
‘케사르’ 또는 ‘시저’라고도 했어요.
이 사람이 무력으로 로마 원로원을 해체하려 하자 그의 심복이었던 장군들이 음모를 꾸며 그를 살해했지요.
아우구스투스는 가이사의 양아들이었는데 당시 불과 19살이었어요.
바로 이 사람이 몇년 후 양아버지의 원수들과 전쟁을 하여 승리한 후 초대 황제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가이사’는 장군이었는데 초대 황제는 아니지요.
질문을 한 여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아우구스투스는 양아버지를 살해한 부르투스라는 장군과 그리스의 필리피라는 곳에서 운명을 건 전투를 벌였지요.
처음에는 아우구스투스가 패했고, 그는 늪지대로 도망가 3일이나 숨어 있었어요.
사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은 황제가 된 후 새로 지은 이름이고 당시 그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였지요.”
그녀가 좌중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조금 높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옥타비아누스가 도망 다니며 꿈을 꾸었는데 미트라신이 나타나서 그를 축복하고 황소 뿔처럼 생긴 창과 황소 뿔이 그려진 방패를 주면서 이제 곧 그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고 했어요.”
앞에 앉은 여자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음 날부터 옥타비아누스는 병사들의 모든 방패에 황소 뿔을 그려 넣었고 얼마 후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지요.
전쟁이 이렇게 끝나면서 미트라신의 위대함이 증명되었어요.”
카잔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리피 전투가 끝난 후 군인들을 중심으로 로마에 미트라교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일입니다.
이미 로마에서는 제우스신보다 미트라신이 더 위대한 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원로원 의원들도 상당수가 우리 신도예요.”
이세벨이 물 한 모금을 얼른 삼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로마와 갈리아를 거쳐 유대 땅으로 왔는데 이제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바로 이곳 사마리아일까요?
그것은 미트라신께서 가장 고난받고 버림받은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구원의 놀라운 역사와 종교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로마제국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듯 우리도 여호와신이나 제우스신의 좋은 점을 흡수하며 발전합니다.
로마 올림포스 신전과 사마리아 그리심 신전, 그리고 페르시아 조로아스터 신전이 통합되고 그 중심에 우리 그리심 신전이 미트라교의 최고 성지가 됩니다.
수백만 미트라교 신도가 이곳을 성지 순례할 것이며, 예루살렘 신전은 곧 그 빛을 잃게 됩니다.”
앞에 앉은 여신도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만족한 듯한 미소를 띠고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여러분, 이렇게 엄청난 역사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선지자로 오신 분이 누구실까요?
바로 우리의 교주 시몬님이십니다.
일요일, 태양의 날, 여러분은 우리 교주님을 대성전에서 뵙고 그 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태양신도 우리와 연합하여 함께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시몬 교주님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시고, 신탁을 받아 미래를 그대로 예측하십니다.
앞으로 유대인의 침공은 물론 로마군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의 파란 눈이 가끔 위를 보며 깜빡거렸다.
“지난 겨울, 비가 오지 않아서 농민들이 고통 받을 때 교주님께서 오래전 이 땅에서 숭배받았던 ‘다곤’신을 불러내어 비를 내리도록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흡족한 양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해갈은 되었지요.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교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약수를 만들어 주셨는데 바로 제 앞에 있는 이 물입니다.”
그녀가 파란 물통을 위로 들어서 보여 주었다.
“저도 늘 마시는 이 물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몸이 좀 쑤시고 아프거나 피곤할 때 한 잔만 마시면 힘이 솟아납니다.
웬만한 상처는 이 물로 씻으면 곧 낫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파란 약수를 ‘청약수’라 부릅니다.”
이세벨이 좌중을 한번 훓어보았다.
“오늘 62회 교육생 중 누가 연세가 제일 많으신가….
음, 뒤에 콧수염 기르신 분 이리 나오셔서 청약수 한 잔 마셔 보세요.”
카잔이 머뭇거리자 그녀가 채근했다.
“빨리 나오세요. 마시고 나면 감사하다고 할 거예요.”
카잔이 할 수 없이 앞으로 나와서 그녀가 주는 잔을 한 모금 마셨다.
달착지근하면서 향긋한 느낌이 들었다.
“맛이 어때요?”
“네, 좋습니다.”
“다 마시세요.”
카잔이 잔을 비우고 들어오면서 앞좌석에 앉은 여자들을 보았다.
여자들도 카잔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이 낯익었다.
“이 청약수를 마시면 머리도 좋아집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미트라교의 주요 교리에 대해 말씀 드리겠어요.”
자리에 돌아와 앉은 카잔이 방금 본 여자 얼굴을 생각했다.
분명히 본 얼굴인데 누구였더라….
잠시 후 카잔의 ‘아!’ 하는 소리에 누보가 얼굴을 돌렸다.
“그놈이야. 처음 누보의 집에 갔을 때 여자하고 자고 있던 시카리 놈.
여장을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