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고발을 당했소?”
대답이 없는 예수에게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면, 유대인들이 바라는 다윗 왕국의 재건이나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겠지.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이오?”
예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높이 앉아 있는 빌라도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투명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시달리고 여기저기 옷도 찢긴 상태였지만, 예수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진리가 무엇이오?”
총독의 목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의 대답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빌라도도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속으로 생각했다.
‘힘이 바로 진리다.
진리는 과거의 힘이었고 힘은 현재의 진리가 되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예수가 대답을 않자 총독이 다시 말했다.
“진리는 변하는 거요.
저 밖에 당신을 고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의 힘이 대단해 보이지만, 내가 그것을 막아주면 내 말이 진리가 되오.
당신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진리가 아니오?”
칼로스가 옆에 서서 예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빌라도 총독이 이 죄인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의 그윽한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칼로스가 총독의 마음을 읽고, 일단 예수를 매질하여 징벌한 후 다시 사람들 앞에 세워서 그들의 마음을 돌려 보자고 건의했다.
빌라도가 고개를 끄떡였고 칼로스가 죄인을 데리고 나갔다.
잠시 후 채찍으로 체형을 당하여 등짝에 피가 흐르고 머리가 헝크러진 예수를 데리고 총독이 다시 정문 앞으로 나갔다.
그동안 갑자기 사람들이 2~3백 명은 늘어난 듯 보였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죄인 예수는 내가 채찍으로 이미 징벌을 내렸소.
내가 알기로 유월절에는 죄인 한 사람을 특별 사면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 정도에서 나사렛 예수를 사면해 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지만, 내가 조사해 보니 그건 근거 없는 말이었고, 어떠한 반정부 선동이나 무기 탈취 계획도 없었소.”
갑작스런 빌라도의 제안에 모여 있던 군중은 술렁거렸다.
비아냥과 너그러움이 섞여 있는 말투에 그의 노회함이 묻어 있었다.
군중 사이에서 의외의 외침이 나올 때까지 총독의 작전은 성공한 듯했다.
“바라바를 사면해 주시오.”
곰같이 생긴 어떤 사내가 큰소리로 외치자 갑자기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이 한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바라바를 사면하시오.”
군중 속에는 바라바의 사형 집행이 시작되면 여기서부터 형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고 있던 아몬과 헤스론이 열성당원 백여 명을 이끌고 조금 전부터 섞여 있었다.
며칠간 예수에게 환멸을 느낀 엘리아셀과 젊은이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신적인 메시아가 강도 두목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느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도 합세하여 외치기 시작했다.
“바라바를 풀어 주시오.”
군중의 열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빌라도의 안색이 변하며 칼로스에게 물었다.
“바라바가 누군가?”
독수리 깃발을 탈취했던 강도 두목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군중의 외침도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무력한 정신적 왕보다 무기를 든 힘있는 바라바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를 살려주려다가 엉뚱한 사태로 일이 전개되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유월절 특별 사면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었다.
군중의 함성은 점점 커졌고 자칫 큰 소요가 일어날 성싶었다.
빌라도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 바라바에 대해 내가 좀 알아보고 곧 다시 나오겠소.”
빌라도가 핑계를 대고 얼른 안으로 들어왔지만 사태를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풀어 주시오!”
그들의 함성이 총독의 등을 따라 들어왔다.
집무실 소파에 몸을 기댄 빌라도는 매고 있던 금 목걸이를 무심결에 오른손으로 만졌다.
긴 목걸이 아래에는 초승달 같은 장식이 달려 있었는데 날카롭기가 면도날 같았다.
오래 전부터 전장에서 적의 포로가 되거나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스스로 손목의 핏줄을 끊기 위해 지니고 다니던 것이었다.
경직된 얼굴의 총독에게 칼로스가 말했다.
“바라바는 20대 중반이고 갈릴리 태생입니다.
본명은 예수인데 오늘 사형이 집행될 예정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과 고향이 같네. 허허.”
빌라도가 헛웃음으로 긴장을 풀려 했다.
“네, 성격은 비교적 온순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입니다.
살려줘도 우리에게 큰 해를 끼치지는 않을 듯합니다.
지난 번 각하께 보낸 청원서도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성전세 인하와 여행 자유화 문제?”
“네, 그렇습니다. 얼마 전 로마 원로원으로 보냈습니다.”
“원로원에서 결론 나려면 아직 멀었겠구먼.
그런데 바라바라는 예수의 대중적 인기가 상당하네.”
“네, 실은 이번에 체포할 때도 군중의 소요가 약간 있었습니다.”
“음, 혹시 지금 저 군중 속에도 그 일당이 있는 거 아닐까?”
“그럴 수 있습니다만 지금 그들을 골라내 잡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일단 군중을 진정시키고 해산하지 않으면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축제 기간에 일어날 수 있다.
밖에서 그들의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메시아라는 예수를 데리고 들어와 다시 한 번 매질하시오.”
빌라도는 그래도 한 번 더 군중을 설득해 보고 싶었다.
말이 없는 예수의 얼굴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유다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후 사라의 손에는 그의 편지가 쥐어 있었다.
서신은 봉해지지 않았으나 읽어 보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예수 선생을 만나면 그대로 직접 전달할 것이다.
네리가 삶은 달걀과 빵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루브리아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벌써 다녀오셨어요?”
“아니, 조금 가다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다시 들어왔어.
곧 빌라도 총독이 유월절 특사로 바라바 님을 풀어 줄 거라고 하네.
왕비님이 애를 많이 쓰셨나봐.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
“어머, 그래요. 정말 잘 됐네요.”
사라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응, 그래. 근데 누가 왔었나?
웬 포도주 잔이 있네.”
“네, 예수 선생님의 제자 한 사람이 잠깐 들렀다 금방 나갔어요.”
“아, 선생님이 어젯밤 체포돼서 제자들이 정신이 없겠네.”
루브리아가 사라 앞에 있는 빵 접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옆자리에 바리새인 복장의 젊은 남자 세 명이 앉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지금 곧 빌라도 관저 앞에서 나사렛 예수가 사형장으로 끌려갈 거란 말이지?”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바라바는?”
“아직 결정이 안 되었어. 어쩌면 같이 끌려갈지 모르지.”
루브리아의 목에서 빵이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말이 다르니 아무래도 총독 관저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빵을 입에 문 채로 다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