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 총독이 예수에 대한 신병처리를 거부하고 헤롯왕에게 보낸 것은 귀찮은 일에 말려 들기도 싫었지만, 나사렛 사람 예수에게서 로마에 반대하는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대 종교적으로는 이 사람이 제사장들보다 한 수 위라서, 유월절 질투의 희생양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예수를 앞세운 가야바 일행은 감람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뒤로 하고 성전 벽을 거쳐 예루살렘 서부 고급 주택가를 지났다.
이른 아침이라 순례자들은 별로 없었고, 평화로운 길거리 저택 안에는 즐거운 축제 준비가 한창이라 하인들의 분주한 모습이 간혹 보였다.
어젯밤 예수가 만찬을 한 2층 저택을 지나서 북쪽으로 올라가 헤롯왕의 궁궐에 도착했다.
헤롯왕은 가야바가 예수를 끌고 왔다는 보고를 받고 기뻐했다.
은근히 걱정했던 세례요한의 환생이라는 자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그가 잡혔으니 안심도 되었다.
헤롯은 하지만 예수를 직접 보니 그가 요한이 살아난 것은 아닌 듯했다.
세례요한의 기백이나 당당한 위엄은 찾을 수 없었고, 온순해 보이고 심지어는 불쌍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포박된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늦잠을 자다가 밖이 시끄러워 깬 헤로디아 왕비도 곧 의상을 갖추고 나가 보았다.
헤롯왕이 나사렛 예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세례요한의 환생이요?”
예수가 아무 대답을 않자 옆에서 가야바가 말했다.
“전하, 이자는 그런 말을 직접 한 적도 없고 그럴 리도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런 소문이 들렸나요?”
“이자가 세례요한의 제자였고, 그와 비슷한 말을 해서 그런 듯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저 사람을 따른다고 하던데요?”
“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세례요한의 제자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가야바의 설명을 들은 헤롯이 예수에게 다시 얼굴을 돌렸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에서는 어떤 침묵의 깊이가 느껴졌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산헤드린 의원들까지 한 목소리로 예수를 고발하고 있다.
그래도 이 사람에게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데, 그럼 내 앞에서 어떤 증거를 보여 줄 수 있겠소?
가령 하늘에 구름을 불러 모은다거나….”
이 말을 듣고 헤로디아가 깔깔 웃었고 예수는 계속 침묵했다.
헤롯이 잠시 기다린 후 하늘을 보았으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아침이었다
“빌라도가 이 사람을 내게 보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헤롯왕이 작은 목소리로 왕비의 귀에 대고 물었다.
“빌라도가 힘이 많이 빠졌네요.
갈릴리 지역 핑계를 대고 전하에게 보냈겠지요.
제 생각에는 우리도 다시 총독에게 보내서 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하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형 집행은 그 사람 소관이니까요.”
역시 헤로디아의 판단은 정확하다.
헤롯왕은 즉시 가야바에게 말했다.
“이 죄인은 대제사장께서 다시 총독 각하께 데리고 가시오.
비록 갈릴리가 내 구역이긴 하지만 지금 여기는 예루살렘이고 유대 땅 전체를 관장하는 분은 총독이시니 나는 그분이 결정하시는 대로 따를 것이라고 전해 주시오.”
헤로디아가 옆에서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헤롯왕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는 것은 산헤드린 공회의 사형 언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제 예수는 지역 왕에게서도 사형을 확정받게 되었다.
예수를 욕하며 계속 따라다니던 제사장 한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는 겉옷을 죄인 예수의 어깨에 걸쳐주며 비아냥거렸다.
“예수 전하 납시오.”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옷의 색깔은 자주색, 곧 왕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네리는 아몬 일행보다 일찍 감람산을 내려와 시온 호텔로 왔다.
사라에게 어젯밤 예수선생이 체포된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식당에 있었다.
소식을 들은 루브리아와 사라는 크게 놀랐다.
“그분이 무슨 잘못을 했나요?” 사라가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난 일요일 성전에서 선생이 장사치들을 채찍으로 쫓아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래서 그랬는지….”
“음, 그게 사실이라면 그럴 수 있지요.
그들에게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수입이 줄어드니까...
또 그 장소가 성전이라면 신성 모독죄에 걸리고….”
탈레스 선생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요한님은 무사한가요?” 사라가 다시 네리에게 물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선생 일행이 어젯밤 감람산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요한님이 나가기 전에 말해 줘서 알긴 했었지만….”
“내부에서 배신자가 있었나 봐요.
저녁 먹을 때 사람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음, 그렇긴 했지만 대부분 실망해서 일찍 나갔었는데…”
순간 사라의 머리에 유다의 얼굴이 떠올랐다.
식사 중간에 갑자기 내려와 나간 후 돌아오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선생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닌가.
사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별말 없이 듣고 있던 루브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왕비님께 다시 가 봐야겠어.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에게 탈레스 선생이 말했다.
“오늘 오전에 눈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요.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 참. 그렇군요. 금방 다녀와서 오후에 받을게요.
햇볕만 밝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니까 괜찮겠지요.”
탈레스 선생이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루브리아가 먼저 나가자 탈레스 선생도 준비할 게 있다며 올라갔다.
네리가 선생의 앞에 있던 무교병 빵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며 사라에게 말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일이 있었네요.
어제 선생님이 체포될 때 어두워서 얼굴들은 잘 안보였지만 누가 선생에게 인사를 했는데 만찬장에서 들어 본 목소리 같았어요.”
“남자 목소리였나요?”
“네, 물론이지요. 부드러운 느낌이었는데….”
“음, 누굴까….”
그가 기억할 만한 목소리라면 엘르아셀일 수도 있다.
불만을 품고 식사 도중 여러 사람을 선동하며 나갔으니까..
아니, 혹시 그 전에 다락방에서 내려 온 유다님인가….
그녀의 머리가 다시 복잡해지는데 뒤에서 누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님”
돌아보니 밤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유다가 서 있었다.
사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리도 그의 목소리가 다시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