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호텔로 돌아와 루브리아를 안심시켰다.
예수 선생을 만났고 그와 마음이 통한 것을 느꼈으며, 그분이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같이 바라바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 말했다.
이렇게 말해야 자신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루브리아는 눈 상태가 조금 더 나빠졌는지 유타나가 계속 더운 수건을 대 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신 포도주 한 잔에 사라의 머리도 흔들렸다.
자기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그녀는 눈을 감자 환상인지 꿈인지 모를 장면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침부터 바람이 부는 스산한 바위 언덕 위에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갈릴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구경하러 가자고 했지만 사라는 가 보기가 무서웠다.
옆에서 요한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언덕위로 이끌었다.
조금 가까이 가 보니 십자가 몇 개가 서 있는데 왼편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여자 같았다.
여자는 등을 보이게 매달았고 그래서 그녀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요한에게 저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십자가 위에 처형된 사람의 죄명이 쓰여 있으니 그걸 보라고 했다.
뒷모습이 눈에 익은 듯한 그녀의 머리 위로 죄명이 상수리 나무판에 길게 적혀 있었다.
<빨래를 잘못해 독수리 깃발의 눈을 지우고, 바라바를 죽게 한 죄인>
사라는 그 글을 읽고 그녀가 자기라는 것을 알고,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바라바 오빠일 것이다.
사라는 몇 발짝 옆에 있는 십자가를 쳐다보기가 두려웠다.
그때 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여기 계셨네요.’
고개를 살며시 들어 보니 조금 전 다락방에서 내려오던 그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저분은 메시아 예수 선생이군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될 수가 있나요?”
바라바 오빠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요한이 대답을 못 하는데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바라바를 대신해서 달려 있는 거란다, 사라야.”
돌아보니 아버지가 편안히 웃으시며 서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옆에 서 있는 사라를 대신해서 달려 있을 수도 있나요?”
“그럼, 문제없지. 지금이라도 그렇게 부탁하자.”
“사라가 잘못한 게 많은데요. 그게 될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지.” 아버지가 자신 있게 말했다.
고개를 돌려 사라가 옆 십자가에 달린 사라의 뒷모습을 보았다.
생각보다 살이 찐 자기의 뒷모습이 점차 사라지며 서서히 예수 선생으로 변했다.
“역시 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근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우리 대신 저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그냥 모두 용서해주면 될 텐데….”
사라가 어릴 때의 소녀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물어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직접 당하고 겪어야 인간의 동반자가 되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나도 너의 고통을 알고 너보다 더 슬프다’라고 말할 수 있지.
우리 눈을 밝혀 뜨면 십자가에 달린 그런 예수 선생을 볼 수 있단다.
지금처럼….”
“아, 그런가요….
그래도 하나님이 좀 더 멋지게 하실 수 없나요?
열성당처럼 나쁜 사람들을 혼내 주고 억울한 사람을 구해 줄 수 있잖아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사라의 어깨를 두 손으로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사라야,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힘이 없고 연약하시다.
그래서 바로 그런 방법으로 인간의 동반자가 되시지.
우리를 돕기 위해 그분이 하시는 유일한 방식이란다.”
사라의 방 작은 창으로 별빛이 포근히 들어와 침대 위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예수를 체포한 경비대는 신속히 감람산을 내려가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잠시 후 예루살렘 시내 가야바의 저택에 도착했다.
기습 체포 작전은 싱겁게 끝났고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변변한 저항은 커녕 모두 잽싸게 도망갔다.
도중에 어떤 젊은 청년이 살살 가까이 따라오다가 붙잡힐 뻔했는데 경비대 손에 잡힌 세마포 옷을 벗어 던지고 달아났다.
대제사장의 저택에는 서기관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곧 날이 밝으면 속히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서 비상소집을 한 것이다.
예수를 먼저 맞이한 사람은 성전의 실권자인 안나스였다.
기름진 얼굴에 노회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질문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소?”
“어찌하여 나에게 묻나요.
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대로 말할 거예요.”
갑자기 옆에 서 있던 하인 하나가 손으로 예수의 뺨을 세게 갈겼다.
“대제사장님께 감히 그걸 대답이라고 하느냐?”
목소리는 여자 같은데 생김새나 덩치가 남자 같았다.
남편 말고가 귀를 다쳐 와서 화가 난 그의 아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예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안나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를 가야바에게 보냈다.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으니 죄명만 찾으면 될 텐데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베드로는 감람산 나무 수풀 뒤에 일단 숨었다가 체포된 선생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왔다.
가야바의 집은 모여드는 사람들로 대문이 열려 있었고 어둠을 틈타 슬며시 들어올 수 있었다.
새벽 찬 공기에 몸을 웅크리며 사람들이 마당에 지펴 놓은 장작불을 쬐는 모습이 보였다.
베드로가 그들의 일행처럼 다가가 얼굴을 숙이고 불빛에 손을 대고 섰으나 온통 신경은 위 마당에 붙잡혀 간 선생에게 가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처음 보는 사람 같은데, 혹시 잡혀 온 예수라는 사람과 한패 아닌가요?”
지나가던 뚱뚱한 하녀 한 사람이 그를 보고 물었다.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네.”
베드로가 한마디 하고 하녀의 얼굴을 안 보며 자리를 피하는데 그녀가 옆 사람들에게 다시 크게 말했다.
“저 사람은 예수 일행이 틀림없어요. 지난번 시내에서 그가 예수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베드로는 두려워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맹세컨대 난 그 사람을 몰라요.”
장작 불빛이 그의 얼굴을 붉게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을 밀치고 베드로는 대문 쪽으로 향했다.
“이 사람 말투가 완전히 갈릴리 사람이네.
당신 예수와 한패지?”
“아니라니까. 난 그 사람 전혀 몰라!”
이때 마당에서 수탉이 울었고 베드로는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을 헤치고 문밖으로 나온 그는 몇 걸음 못 가고 땅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